필자는 2012년 올해 대통령선거에서 새정치위원회 간사로서 문재인 캠프에 참여했다. 그래서인지 대선 패배에 대한 충격이 매우 컸다. 더구나 개표 직전만 하더라도 70% 중반에 달했던 높은 투표율은 문재인 후보의 승리를 확실하게 보장하는 듯했다. 그러나 당황스럽게도 출구조사는 박근혜 후보의 승리를 예고했고, 결국 그것은 기정의 사실이 됐다.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대선 패배에 대한 면밀한 검토는 일단 뒤로 미루자. 이른바 ‘멘붕’(멘탈 붕괴)의 상태가 아직 가시지 않은 지금 대선 패배에 대한 진지한 검토에 나설 마음은 아니기 때문이다. 대신 예상치 못한 대선 패배에 즈음하여 이번 대선에 대해 필자가 느낀 직감적인 소회를 몇 마디 적어보고자 한다.

무엇보다도 이번 대선은 변화에 대한 요구가 크게 분출했던 선거였다. 대선 막판에 네거티브가 기승을 부리는 듯했지만, 사실 이번 대선에서는 정책선거가 광범위하게 이루어졌고, 새정치와 정치쇄신에 대한 강력한 요구가 분출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에 부응하여 복지와 경제 민주화 그리고 일자리 등 사회경제적 민주화에 대한 공약들이 광범위하게 제시되었고, 기득권 내려놓기를 비롯하여 수많은 정치쇄신안들이 쏟아졌다.    

대선 열기 또한 보수 대 민주진보의 양자 대결로 좁혀지면서 그 어느 때보다 뜨거웠다. 우선 대선 승리를 위해 보수진영은 박근혜 후보 쪽으로 총집결했고, 민주진보진영 쪽에서는 문재인 후보의 당선을 위해 안철수 후보, 진보정의당의 심상정 후보, 그리고 통합진보당의 이정희 후보가 줄줄이 사퇴했다. 양 진영의 지지자들이 최대한으로 동원되고 결집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 때문이었다.

지난 2007년 17대 대선 투표율이 63%에 불과했던 데에 비해 2012년 이번 대선의 투표율이 75.8%로 상승한 것, 즉 약 13%의 투표율 상승은 바로 그 결과다. 이렇듯 변화에 대한 요구가 분출하고 보수와 민주진보의 양자 대결이 뜨거워진 상황은 결코 민주진보진영에게 불리한 것이 아니다. 과거에 민주진보진영의 승리는 통상 ‘바람’ 선거에 의존해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변화의 바람이 뜨거웠음에도 불구하고 민주진보진영은 결국 패배했다. 주요한 이유 중의 하나는 이번 대선에서 민주진보진영이 충분히 준비되지 않았다는 점일 것이다. 즉 대선 이전 민주진보진영은 분산 또는 분열된 상태였고, 따라서 대선 과정은 그 힘들을 모아내는 과정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쉽지 않았고, 더구나 그 중심이 되었어야 할 민주통합당은  주도력을 상실한 채 전면에 나서지도 못했다. 결국 대선 막바지에 새정치국민연대가 등장하기는 했지만, 그것은 급조된 것 이상은 아니었다.   

민주진보진영의 과신 역시 대선 패배의 또 다른 원인을 제공했던 것으로 보인다. 돌이켜보면 민주화 이후 민주진보진영이 독자적인 힘으로 이긴 적은 없었다. 그럼에도 민주진보진영은 2010년 6.2지방선거 이후, 특히 작년 4.11 총선에서 패배했음에도 불구하고 과도한 낙관론에 휩싸여 있었다. 아마도 이에는 이명박정부 실정에 대한 과도한 반사이익 기대 그리고 젊은층의 정치 참여 증대에 따른 들뜬 분위기 등이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그러나 드러난 바와 같이 대선 결과는 민주진보진영의 과도한 낙관론에 찬물을 끼얹졌다. 민주진보진영에서 예상치도 못했던 50대가 투표장에 쏟아져 나왔고, 그 결과 민주진보진영은 그 지지자들의 총동원에도 불구하고 2% 부족한 패배를 감수하지 않으면 안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민주진보진영이 결집시킨 48%의 지지도 작은 것은 아니다. 아니, 그것은 지금까지 민주진보진영이 독자적으로 얻은 최대의 지지다. 그런 점에서 어쩌면 지금이 새로운 출발인지도 모른다. 올해의 대선 패배를 안고서 말이다. 민주진보 진영에 대한 48%의 지지, 그리고 젊은층의 동참은 우리의 미래를 어둡게만 만드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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