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엔 영광, 땅 위엔 기쁨.

기독교인이 아니더라도 누구나 축제의 기분을 즐기는 성탄절을 하루 앞둔 지난 24일, 금속노조 한진중공업 지회 집행부는 조남호 한진중공업 회장으로부터 크리스마스 카드가 아닌 경찰 조사요구서를 전해 받았다. 지난 21일 18대 대통령선거 결과에 비관해 한진중공업의 민주노조 탄압을 규탄하며 목숨을 끊은 故 최강서 조직차장의 장례식장(부산 영도구민 장례식장)을 지키고 있는 그들에게 영도경찰서가 보낸 출석요구서의 내용은 SNS 등을 통한 허위사실 적시와, 업무방해 혐의 등이다.

이날 출석요구서를 받은 금속노조 한진중공업지회 문영복 수석부지회장은 ‘열사 추모일정으로 바쁜 와중에 한진중공업은 노조 집행부와 그 가족들에게 고소고발의 압박을 주면서 조합원의 죽음에 대한 반성은 없고, 전혀 책임을 못 느끼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 한진중공업의 고발로 인해 부산 영도경찰서에서 24일 한진중공업 노조 집행부들에게 보낸 조사요구서
이치열 기자 truth710@

 

문 수석부지회장은 ‘최강서 조직차장이 목숨을 던진 지난 21일 하루 동안은 모든 조합원들이 제 정신이 아니었다. 간부들조차 통제하기 힘든 상태였다. 하루가 지나고 나서야 죽음에 대해 조금씩 인정을 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최강서 차장의 죽음의 이유는 유서에서 드러나듯 박근혜 후보의 당선도 상당부분 작용을 했다고 말했다. 회사가 노조를 상대로 158억의 손해배상을 청구했는데 그 선고일인 2013년 1월 18일이 다가옴에도 회사는 소취하의 의지가 없고, 정권교체에 실낱 같은 희망을 갖고 있었지만 친 재벌, 친 기득권 정책을 펼 것으로 예상되는 박근혜 후보으로 이명박 정권에 이어 또 5년을 더 탄압받을 것이 예상되자 증폭된 불안감과 허탈감이 극단적인 선택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민주노총 금속노조 소속이던 한진중공업 지회 조합원들의 70%가 회사의 압력으로 회사측에 우호적인 다른 '노조'에 가입했는데, 이번 최강서 조합원의 죽음을 접하고 그들 또한 큰 충격을 받았으며 회사의 눈치를 보던 그들의 조문행렬이 이어지고 있다고 문 수석부지회장은 말했다.

   
▲ 부산 영도구민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 최강서 조합원의 장례식장에서 24일 저녁, 미망인이 제단에 저녁 식사를 올리고 있다.
이치열 기자 truth710@

한진중공업 측으로부터는 3일이 지나도록 아무런 움직임이 없고 24일 오후 부산시 고용정책과장이 장례식장에 와 ‘한진중공업 노사관계가 장기화되는 것이 안타깝다. 시가 나서서 대화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 보겠다’고 말하고 조문했다. 문 수석부지회장은 박근혜 당선자는 전반적인 노동정책이 부실해서 걱정된다고 말했다. 새 정부가 출범하면 현장에서 노동자들이 겪고 있는 비정규직 차별, 민주노조 탄압 등의 고통을 잘 파악해서 노동자가 맘 편하게 일 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지난 해 대규모 정리해고에 반대하는 크레인 고공농성으로 ‘희망버스’를 견인해 냈던 민주노총 김진숙 지도위원 또한 장례식장 한켠을 무거운 표정으로 지키고 있었다. 김 지도위원은 “정리해고 후 최강서 조합원은 복직을 그 누구보다 기다렸다. 그런데 2년 만에 복직했는데 불과 4시간 만에 회사는 무기한 휴직처분을 내렸고 벼랑 끝에서 풀 한 포기 잡고 버티는 심정이었을 그에게 박근혜 후보의 당선은 그 풀뿌리마저 뽑혀져 나가는 절망감을 줬을 것이다. 박근혜 정부가 진정으로 ‘국민행복의 시작, 100% 국민통합’ 정부가 되려면 한 두명의 자본가를 위해 수백, 수천 명의 노동자들이 길거리로 나앉아야 하는 일이 없어져야 한다. 쌍용자동차, 현대자동차 등 고공농성 중인 현장이 가장 시급하다. 하루하루 엄청난 고통을 견디고 있다. 특히 현대자동차의 경우 대법원의 판결을 기업이 무시하고 있는 데 세계 선진국들 중에 이런 나라가 어디 있겠느냐.”고 말했다.

 

 

 

   
▲ 크리스마스 이브인 24일 저녁 7시 30분, 부산 영도조선소 정문 앞에서 '고 최강서 조합원 추모집회'가 열렸다.
이치열 기자 truth710@
   
▲ 추모집회를 마친 조합원들이 영도조선소 정문 앞에 설치된 노조 천막에서 향후 일정을 논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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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모집회에 참석한 한진중공업 노조 조합원의 얼굴이 어둡다.
이치열 기자 truth710@

부산지역 대책위와 금속노조 한진중공업지회는 매일 저녁 7시 30분 부산 영도조선소 정문앞에서 ‘고 최강서 조합원 추모집회’를 열고 있다. 26일 부산지역 집중집회에 이어, 27일 오후 3시 영남지역 노동자대회가 부산에서 열릴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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