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말기 보조금을 많이 줬다는 이유로 통신사들이 영업정지 조치에 과징금을 두둘겨 맞았다. 통신사들은 억울하다며 아우성인데 과연 그럴까. 조선비즈는 “설마하던 통신사 ‘패닉’”이라는 제목을 뽑고 이데일리는 “과열 보조금경쟁 지양하겠지만… 억울해”라는 제목을 내걸었다. ‘철퇴’라는 표현을 쓴 곳도 많다. 하나 같이 방송통신위원회 논리를 그대로 받아쓴 데다 통신사들 엄살을 확대 재생산하는 기사들이다.

방송통신위원회가 KT와 LG유플러스, SK텔레콤 등 통신 3사에 대해 이동통신 단말기 보조금을 초과 지급했다는 이유로 영업정지 조치를 단행했다. 통신 3사는 순차적으로 66일 동안 신규 가입이 금지된다. 방통위는 24일 전체회의를 열고 LG유플러스는 내년 1월7일부터 30일까지 24일 동안, SK텔레콤은 1월31일부터 2월21일까지 22일 동안, KT는 2월22일부터 3월13일까지 20일 동안 순차적으로 영업정지를 시키기고 했다고 밝혔다.

영업정지와 별개로 과징금도 부과됐다. SK텔레콤은 68억9000만원, KT는 28억5000만원, LG유플러스는 21억5000만원씩이다. “이동통신 가입자를 모집하는 과정에서 단말기 보조금을 차별적으로 지급해 이용자를 부당하게 차별했다”는 게 이유다. 영업정지 기간 동안 통신사들은 신규 가입과 번호이동 고객을 모집할 수 없다. 다만 기존 가입자가 기기를 변경하는 것은 가능하다.

방통위는 7월1일부터 12월10일까지 통신 3사의 전체 가입건수(기기 변경 포함) 1062만건 가운데 47만4000건을 분석한 결과 방통위가 정한 상한선 27만원이 넘는 보조금을 지급한 비율이 LG유플러스 45.5%, SK텔레콤 43.9%, KT 42.9%로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번호이동 가입은 27만원 이상 보조금을 지급해 가이드라인을 위반한 비율이 54%였다. 신규 가입자의 경우 위반 비율은 39.8%, 기기 변경은 28.5%로 나타났다.

기종 별로는 LG전자 옵티머스테그 구입자의 70.1%가 27만원 이상의 보조금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팬택 베가레이서2가 64.7%, 삼성전자 갤럭시S3 41%, 애플 아이폰5는 3.9%로 단말기 제조사의 브랜드 인지도에 따라 보조금 지급 정도가 다른 것으로 나타났다. 통신사 별로는 번호이동은 SK텔레콤과 KT가 위반 비율이 높고, 신규 가입은 SK텔레콤과 LG유플러스가, 기기변경은 LG유플러스의 위반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게 나타났다.

전기통신사업법 52조는 위반 행위가 3회 이상 반복되면 3개월 이내의 영업정지 조치를 내릴 수 있다는 규정이 있다. 이른바 삼진아웃제 제도인데 방통위는 2010년에 이어 지난해 9월에 통신 3사에 과당 보조금을 문제 삼아 과징금 137억원을 부과한 바 있다. 조경식 방통위 대변인은 “세 차례 위반이 적발돼 영업정지를 경고했으나 LTE(롱텀에볼루션) 서비스가 시작되면서 보조금 경쟁이 가열되고 있어 영업정지가 불가피했다”고 밝혔다.
 

   
 

이날 전체회의에 피심의인으로 출석한 SK텔레콤 하성호 상무는 KT를 겨냥, “과열 경쟁을 촉발시킨 회사를 중심으로 제재하는 게 바람직하다”면서 억울함을 털어놓았고 KT 이석수 상무는 “통신3사 가운데 위법성의 정도가 가장 낮을 뿐 아니라, 조사 기간 중 보조금 인하를 위해 노력해 왔다”고 해명했다. LG유플러스 박형일 상무는 “위반 비율은 높지만 위반 건수는 가장 적다”면서 “시장 점유율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달라”고 호소했다.

방통위 이용자보호국 정종기 국장은 “KT가 시장 과열을 주도했지만, 위반 비율을 중점으로 고려했기 때문에 영업정지 기간은 LG유플러스가 가장 길다”고 설명했다. “KT가 시장 과열의 원인을 제공한 점을 고려해 가중치를 가장 많이 뒀지만 3사 모두 조사에 적극 협력하고 온라인 불법 마케팅 개선을 위해 노력한 점을 고려해서 결정했다”는 설명이다. 정 국장은 “9월13일 조사이후 통신 3사의 위반비율은 조사 이전보다 19.3% 줄어들었다”고 덧붙였다.

이계철 위원장은 “통신 시장의 과도한 단말기 보조금 경쟁은 이용자 차별을 심화시킨다”면서 “방통위 출범 이후 두 차례에 걸쳐 제재했지만 다시 제재를 하려니 (마음이) 그렇다”고 말했다. 홍성규 부위원장도 “보조금 출혈 경쟁을 주도하는 사업자에 대해서는 중점 처벌이 바람직하다”면서 “가중 처벌하는 데 동의하느냐”고 묻기도 했다. 통신 3사 임원들은 모두 이에 동의했다.

상당수 언론이 이날 “가혹하다”느니 “억울하다”느니 통신사들의 주장을 받아쓰기에 급급한 모습이었지만 실제로 보조금 규제와 영업정지 조치는 오히려 통신사들의 영업이익에 도움이 된다는 지적도 많다. 이트레이드증권은 지난달 보고서에서 “이동통신 가입자는 이미 인구 대비 106%가 넘는 포화상태라서 신규 모집 금지로 보조금 지급이 줄어들면 오히려 영업실적이 회복될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을 내놓은 바 있다.

전응휘 녹색소비자연대 이사도 “단말기 보조금 27만원을 초과하면 안 된다는 규정은 아무런 법적 근거도 없다”면서 “이날 방통위의 징계는 눈가리고 아웅하는 쇼에 가깝다”고 평가절하했다. 전 이사는 “통신사들 이익은 해마다 늘어나는데 방통위는 통신요금을 올려받는 횡포를 방치하면서 마케팅 비용까지 규제하려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마케팅 비용 규제는 소비자 편익이 아니라 통신사들의 안정적인 영업이익을 보장하기 위한 꼼수”라는 이야기다.

전 이사는 LG유플러스가 “3위 업체에 영업정지 부과는 억울하다”고 주장하는 것과 관련해서도 “이미 우리나라 통신시장은 5대 3대 2로 굳어져 있어 마케팅 비용을 써가면서 가입자를 늘리기 보다는 기존 가입자를 지키면서 이익을 늘리는 게 실적에 도움이 된다”고 반박했다. 전 이사는 “방통위가 진정으로 소비자들을 위한다면 보조금 규제가 아니라 통신요금 규제를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2007년 말에 일몰된 단말기 보조금 금지법은 2003년 3월 도입돼 2006년 3월까지 시행하고 사라지는 일몰제 법안었는데 한 차례 연장해 2007년 12월까지 시행되고 소멸됐다. 당초 이 법은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이후 무역수지 적자를 유발하는 휴대폰의 과소비를 막아보자는 차원이었는데 지금은 법적 근거도 없이 통신사들의 과도한 마케팅 경쟁으로 인한 경영 악화를 보호하기 위한 제도로 변질됐다.

시장 반응도 통신사들 엄살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다. 김장원 IBK투자증권 연구원은 24일 보고서에서 “보조금 제재는 마케팅 경쟁을 위축시켜 가입자 수와 가입자당 매출(ARPU)를 유지시키는 반면 비용은 덜 나가 수익성이 개선되는 효과가 예상된다”고 분석했다. 김 연구원은 “상대성이 강하고, 가변적인 마케팅 정책에 정책당국의 지속적인 견제는 마케팅의 안정으로 이어져 수익 안정을 기대할 수 있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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