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의 개최와 남북공동선언문 채택 등 한반도는 지난 1주일 동안 세계의 이목이 집중된 가운데 55년 동안 계속돼온 냉전 종식의 첫 발을 내디뎠다.

그렇다면 그 동안 냉전의식을 유지하는데 한몫을 차지했다는 비난을 받아온 우리 나라 언론은 이번 회담의 성사로 이러한 불명예를 완전히 떨쳐버렸는가.

그 대답은 비관적이다. 관망하던 처음의 자세에서 차츰 보수 우익 계층의 입장을 고려한 본격적인 ‘딴죽걸기’에 나섰다는 게 언론계의 목소리다.


이산상봉, 앞뒤 가릴 사안인가

각 언론이 이산상봉과 관련해 가장 큰 문제점으로 거론하고 있는 부분은 이번 정상회담에서 남한이 견지해 왔던 ‘선 이산가족 교환, 후 장기수 송환’ 원칙이 북한이 제시한 ‘인도적 문제 해법(비전향 장기수 송환)’에 밀려버렸다는 것으로 압축된다.

그러나 언론은 정상회담 이전부터 “김 대통령이 자주 말했듯이 만나는 것 자체가 의미가 있으며 이 만남을 통해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지금까지의 대남자세를 긍정적으로 변화시킬 것인지를 알아내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조선일보 6월 13일자 사설)고 강조해 왔다.

하지만 이러한 언론의 태도는 남북공동선언문 발표 뒤 돌변해 “장기수를 송환한다고 하면서 납북자·미귀환 국군포로 귀환은 왜 빠졌는가”(조선일보 6월 19일자 사설)를 추궁하기에 이른다. 결국 언론은 지난 4월 20일 당시 민주당 이재정 정책위의장이 “인도적 차원에서 비전향 장기수들의 북송을 검토 중”이라고 말한 것을 문제삼아 당직을 떠나도록 한 것처럼 처음부터 냉전의식에서 비롯된 ‘상호주의 원칙’에서 한 발자국도 물러서지 않고 있었다는 점을 확인시켜주고 있다.

이산상봉과 관련해 언론이 문제점으로 삼고 있는 또 다른 부분은 ‘규모’와 ‘지속성’이다. 주요 일간지들은 남북공동선언문이 채택됐던 14일 이후 각종 사설과 기사를 통해 ‘8.15에 즈음한 100명 규모의 방북은 123만 명의 이산 1세대를 놓고 볼 때 미미하기 짝이 없다’ ‘자칫 전시적 행사로 흐를 수 있다’는 등의 논평을 내보내기 시작했다.

반면 언론은 이산가족의 방북 자체가 85년 12월 서울에서 열렸던 10차 남북적십자회담의 부활을 의미하고 있다는 점과 지난해 베이징에서 열린 차관급 회담의 연속선상에 있다는 것에 대해서는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작게 처리했다.

결국 언론은 지난해 열린 베이징 회담에서 남북 당국자들이 의견을 좁힌 바 있는 △매월 100명씩 상봉 △월 1회 쌍방 300명씩 생사·주소확인을 위한 명단 교환 △월 2회 우편물 교환 △판문점 상봉 면회소 설치 △쌍방 100명씩 고령이산가족 서울·평양 순차 교환 원칙을 알고 있으면서도 굳이 이를 기사화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던 것이다.


자주성 없는 ‘자주’ 관련 보도

언론은 또 남북정상이 합의한 ‘남북문제는 당사자간에 자주적으로 해결한다’는 첫 조항에서도 의구심을 떨치지 못하고 있다. 언론이 이 부분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유는 이미 널리 알려져 있듯이 북한이 해석하는 ‘자주’라는 단어는 곧 ‘주한미군 철수’를 의미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최근 홀름스 미상원 외교분과위원장이 “주한미군 철수를 고려할 때가 됐다”고 밝혔다는 대목에 이르게 되면 우리 언론의 ‘사대’를 고려해 봐야할 지경에 이르게 된다.

이와 관련해 동아일보는 “북측이 주장하는 ‘자주’에 함축된 주한미군 철수는 수용할 수 없는 일”(5월 19일자 사설)이라고 아예 선언을 하는가 하면, “남북정상회담 이후 드러난 4강의 입장 차이는 자칫 한반도를 미-일과 중-러 양 진영의 갈등 형태로 굳어지게 할 우려가 있다”(6월 17일자 사설)며 냉전적인 사고의 단편마저 드러내고 있다.

“23일 방한하는 올브라이트 국무장관을 만나는 당국자들은 평양 정상회담과 관련해 미 행정부가 만에 하나 품고 있을지도 모를 의구심을 명백히 풀어주어야 한다. 동맹국들로부터 쓸데없는 의심과 오해를 받아서는 안 된다”고 역설하는 조선일보의 20일자 사설은 과연 자주독립국가의 간판 언론인지를 의심케 하기 충분하다.

결국 우리 언론이 “냉전 사고에 오랫동안 젖어온 우리 외교 마인드와 인력으로 과연 칼날 위의 4강 외교를 무리 없이 해내고, 이번 정상회담에서도 드러났지만 여전히 우리 외교는 대통령과 일부 ‘비선라인’에 크게 의존하고 있고 직업 외교관들은 국가의 중대사 결정 과정에서 자주 소외된다”(동아일보 19일자 보도)고 조언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지 논의해 봐야 할 시점이다.


국가보안법 보도 문제점

국민들은 남북관계 개선에 따른 국가보안법의 개폐 여부에 대해서도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으나 언론은 일부 언론사를 제외하고 아직까지도 분명한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조선일보는 지난 17일자 <보안법 적용 판사의 고뇌> 기사에서 “국가보안법에 대한 구체적인 후속조치가 나오기 전까지는 기존입장을 적용할 수밖에 없다”는 서울고법 오세립 판사의 말을 인용 보도했다. 기사에 따르면 오 부장판사는 정상회담 직후 있었던 민혁당 하영옥 씨에 대한 항소심에서 현행법을 적용, 유죄를 선고했으나 정상회담의 여파가 너무 커 마지막까지 혼란스러웠다고 털어놨다.

동아일보도 같은 날 <“보안법 고쳐야 하는데…” 여론신경>에서 “분단 55년이 낳은 의식적 법적 제도적 갈등의 틀을 한번의 남북 정상 만남으로 일순에 바꾸기 어려운 것도 현실”이라며 법무부 국방부 교육부의 고민을 보도했다.

중앙일보는 20일자 <손봐야할 법률 수백건>에서 “아무 말도 하지 않겠다” “사실상 아노미 상태다”라는 검찰관계자와 판사의 고민을 드러내는 한편 헌법, 남북교류협력법, 국가보안법, 대외무역법 등의 손질이 불가피하다는 법조계 인사들의 지적도 담아 보도했다.

그러나 이 기사는 법률 개폐의 불가피성을 관계자들의 말을 통해 인용하면서도 글 끝에 “북한의 관련법 개정 없이 무턱대고 우리 법조항만 고칠 경우 남한 기업이나 주민이 북한에서 재판을 받게 될 수도 있으므로 남북 관계진척도에 따라 관련 법률을 정비해 나가야 한다”는 결론을 내고 있다.

특히 사설은 더욱 혼란스러움을 가중시킨다. 20일자 동아일보 사설 <너무 서두른다>는 북한이 노동당 규약을 개정하겠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우리도 국가보안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데 한 목소리를 내고 있으나 국민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해 우선순위와 완급을 신중하게 가려야 한다는 식의 원칙론만을 고수하고 있다.

과연 언론이 국가보안법을 계속 신중하고 철저히 여론을 봐가며 부작용 없는 보도를 할지 지켜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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