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가 한국 사회 주요 이슈중 하나인 삼성반도체 직업병 문제에 대해 입장과 해결책을 전혀 내놓지 않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문재인·안철수·이정희 등 전현직 대선후보들은 직업병 문제에 대해 노동자 중심의 공통된 입장을 갖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반도체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이하 반올림)은 18대 대통령 선거기간 중 대선후보들에게 삼성 직업병 문제에 대한 입장과 정책 대안에 대해 물었다.

반올림은 △삼성반도체 직업병 발병에 대한 입장과 해결책 △직업병 피해자들에게 산업재해 입증을 요구하는 문제에 대한 입장 △국민의 건강권과 알권리보다 기업의 영업기밀이 우선 할 수 있는지 여부 △삼성의 무노조 경영에 대한 입장을 각각 박근혜 문재인 이정희 김소연 김순자 후보 캠프에 물었다.

그 결과 박근혜 후보 측은 모든 질문에 무응답으로 일관했다. 이번 질의를 준비한 손진우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상임 연구원은 "지난 10월 28일 반도체노동자의 날 행사에서 대선후보에게 의견을 묻겠다고 밝힌 뒤 각 후보들에게 홈페이지 공식이메일을 통해 똑같이 답변을 요청했으나 박 후보만 답이 없었다"고 말했다.

새누리당 홈페이지에 올라와있는 398쪽으로 구성된 제18대 대통령선거 새누리당 정책공약자료집에도 직업병 문제에 대한 입장은 나와 있지 않다. 다만 특수고용직 노동자에 대한 산재보험과 고용보험제도실시가 필요하다는 내용만 있을 뿐이었다. '행복한 일자리를 키워나간다'며 홍보했던 늘·지·오 공약에도 관련 내용은 없었다.

안형환 새누리당 대변인은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관련 입장을 잘 모르겠다고 밝혔으며, 새누리당 정책국은 박근혜 캠프 공보단에 문의하라고 밝혔다. 박근혜 캠프 공보단 관계자는 직업병 관련 공약이 있느냐는 질문에 "확인해보겠다"며 확답을 피했다. 경제민주화를 주요 공약으로 내건 박근혜 후보 측이 모든 노동자들에게 발생할 수 있는 직업병 문제에 대해선 확인된 입장이 없는 상황이다.

   
▲ 2011년 3월 31일 삼성 본관에서 고 박지연씨의 1주기 추모 기자회견이 열린 모습. ⓒ이치열 기자

반면 다른 후보 측은 삼성반도체 직업병 문제에 대한 명확한 입장을 갖고 있었다. 민주통합당 전순옥 선대위원장은 문재인 후보를 대표해 반올림과의 간담회를 요청했으며 그 자리에서 "어린 사람들이 죽어 가는데 민주당이 무엇을 했는지 부끄럽다", "더 이상 죽어가는 사람이 나오지 않도록 사람이 먼저라는 철학으로 무엇이든 하겠다"고 말했다.

민주통합당은 직업병 문제와 관련, 산업재해 발생 시 근로자의 입증책임을 완화하고 근로복지공단의 책임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또 법개정을 통해 국민의 알 권리와 건강권이 기업의 영업기밀보다 우선될 수 있게 하겠으며, 이를 통해 직업병 여부를 객관적으로 증명할 수 있게 하겠다고 공약했다. 삼성의 무노조 경영에 대해서는 “지금 시대에 노조가 없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삼성에 일찍이 노조가 있었다면 이 문제도 해결됐을 것”이라는 의견을 전했다.

이정희 후보는 삼성반도체 직업병 문제 해결에 더욱 적극적이었다. 통합진보당 측은 삼성노동자들의 희귀암 발병을 두고 △산재보험 선 보장 사후평가제도 실시 △산재보험 적용 확대 △산재치료 후 원 직장 복귀 의무화 △산재보험 국고지원 △기업살인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제정을 공약했다.

무소속 김소연 후보와 김순자 후보 또한 삼성노동자에게서 발생한 희귀병이 직업병이 확실하다고 강조한뒤 산재당사자의 입증책임이 사업주와 정부에게 있도록 전환돼야 하며 건강권과 알권리가 영업기밀보다 우선한다고 입을 모았다.

   
▲ 2010년 4월 2일 삼성 본관 앞에서 한 시민이 백혈병으로 숨진 고 박지연씨를 추모하는 피케팅 모습. ⓒ이치열 기자

안철수 전 대선 후보 역시 지난 11월 15일 녹색병원을 방문해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다 뇌종양에 걸려 치료 중인 한혜경씨를 만났으며 이 자리에서 "노동자가 직업병의 입증 책임을 져야 한다고 하는데 큰 병에 걸린 분이 어떻게 증명해내겠느냐"며 "근로복지공단에서 산업현장과 직업병 간의 관련성 입증을 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이렇듯 박 후보를 제외한 대선후보 대부분이 삼성 직업병 문제에 대한 공통된 문제의식을 갖고 있는 것이 확인됐다.

손진우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연구원은 "차기 정부는 기업의 영업기밀보다 국민의 건강권이 중요하다는 점을 인지하고 산업재해에 대한 입증책임을 노동자에게 일방적으로 전가하는 현실을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재까지 반올림 추산 삼성 직업병 피해자는 150여명에 달하며 사망자는 58명이다. 산업재해 인정기준을 완화하는 산재법 개정안이 현 정부에서 제출된 바 있으나 새누리당의 반대로 통과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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