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5월 충남 아산의 자동차부품업체 유성기업에서 벌어진 용역경비들의 조합원 폭력사태는 1년 뒤인 올해 7월 SJM에서 그대로 재연됐다. ‘밤에는 잠 좀 자자’는 노동자들의 요구로 유성기업 노사는 2010년 12월부터 주간연속 2교대제와 월급제 시행을 위한 교섭을 시작했다.

회사는 시기상조와 생산량 문제를 거론하며 교섭을 지연했다. 지난해 5월 18일 금속노조 유성기업지회는 찬반투표 가결한다. 당일 아산공장 정문에는 직장폐쇄 공고가 붙는다. 바로 용역경비가 배치됐다.

같은 날 밤 용역경비에 의한 ‘차량 테러’가 발생했다. 이후 27일, 6월 15일·18일·22일 용역경비에 의한 폭력사태가 벌어졌다. 이것은 ‘노조 파괴’의 신호탄이었다. 회사의 공격적 직장폐쇄는 용역깡패 투입, 어용노조 설립, 민주노조 파괴로 이어졌다. 어용노조 설립 과정에서 창조컨설팅이 개입한 정황도 드러났다.

지난 4일에는 1년 넘게 우울증을 앓던 아산공장 노동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벌어졌다. 유아무개씨는 지난 4일 오후 평택 집에서 목을 매 숨졌다. 지난해 파업과 직장폐쇄 이후 공장에 먼저 복귀한 유씨는 노조가 직장폐쇄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이는 동안 퇴근도 못한 채 하루 평균 12시간 넘게 일한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회사쪽 요구로 노조원들과 맞서는 구사대로 나서도록 내몰린 것으로 전해졌다. 유씨는 공장 복귀 두 달 뒤 적응장애 우울증 진단을 받았다. 유씨의 부인은 남편의 산재 신청을 받아들여달라며 서울 유성기업 본사에서 1인 시위를 벌였고 8월 초 산재 승인을 받아내기도 했다.

홍종인 금속노조 유성기업 아산지회장은 지난 10월 21일부터 아산공장 앞 7m 높이의 굴다리에서 △노조파괴를 주도한 사쪽 책임자 처벌 △노사교섭 성사 △해고자 복직과 어용노조 해산을 요구하며 천막농성을 벌이고 있다.

   
지난 8일 오전 홍종인 금속노조 유성기업 아산지회장이 굴다리에 매달려 있는 천막에서 농성을 벌이고 있다. ⓒ조현미 기자
   
▲ 지난 8일 오전 충남 아산 유성기업 농성장에서 열린 금속노조 결의대회에 참석한 조합원들. ⓒ조현미 기자

지난 8일 오전 찾아간 농성장에서는 ‘노조파괴공작 국정조사실시, 노동부규탄 책임자처벌, 피해사업장 원상회복’을 위한 금속노조 결의대회가 열렸다. 농성장 주변은 금속노조 조합원과 유성기업 조합원들로 모처럼 활기가 넘쳤다.

홍 지회장은 ‘까치집’에 가까운 천막을 얼기설기 지어서 굴다리 한 쪽 구석에 매달려 있었다. 천막 옆에는 ‘지배개입 노조파괴 즉각 중단하라 창조노조 해체하라’는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창조노조는 창조컨설팅이 개입해서 만든 ‘어용노조’를 가리키는 것이다. 

홍 지회장은 목에 밧줄을 매고 있었다. 민주노조를 지키겠다는 마지막 ‘끈’인 듯 했다. 천막은 다리를 뻗을 수도, 그렇다고 일어설 수도 없을 만큼 비좁았다. 홍 지회장은 앉아서 동료들이 집회를 하는 모습을 내려다봤다.

김기덕 금속노조 대전충북지부장은 “유성기업 투쟁은 야간에 잠 좀 자자는 소박한 요구의 투쟁이었다”며 “퇴근하다 버스에서 죽지 말자는 주간 연속 2교대제 투쟁이었는데 정권과 자본이 합작해서 민주노조를 깨려 공모했다”고 비판했다.

   
▲ 홍종인 지회장이 집회를 열고 있는 금속노조 조합원들을 내려다 보고 있다. ⓒ조현미 기자

홍종인 지회장은 “노동자를 일회용처럼 쓰고 버리고 생산의 도구로만 사용하는 악질자본에게는 토사구팽이라는 사자성어가 걸맞다”며 “반드시 승리해서 악질자본은 노동자에게 굴복당한다는 것을 보여 주겠다”고 말했다.

금속노조 충남지부와 대전충북지부는 유성기업 사태 해결을 위해 14일 하루 지역 총파업을 벌인다. 김소연 노동자대통령 선거투쟁본부는 지난 10일 기자회견을 열고 국민들에게 울산(현대차)·평택(쌍용차)·아산(유성기업)·전주(전북고속)에서 고공농성을 벌이는 노동자들의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목소리를 각 회사에 항의 전화와 팩스로 전달해달라고 호소했다.

홍종인 지회장은 11일 미디어오늘과 전화통화에서 “대선주자들이 노동 현안을 해결하려면 현실에 대해 정확하게 진단부터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홍 지회장과의 일문일답이다.

- 대선 국면에 유성기업 사태가 묻히는 것을 막기 위해 농성에 돌입한 것으로 알고 있다.
“(굴다리에) 올라온 이유는 두 가지였다. 국정감사가 끝난 이후 대선 국면에서 노조파괴 시나리오가 묻히는 것을 우려했다. 현장에서 조직적인 싸움이 안 되면 몇몇 간부들만 사측하고 싸우는 모양새가 된다. 결국 조합원이 지치고 사측이 원하는 대로 어용노조 쪽이 힘을 얻는다. 현장투쟁을 다시 해보자 해서 농성에 들어갔다.”

- 어제(10일) 대선 후보들의 노동·경제 분야 토론이 있었다. 대선 주자들에게 주문하고 싶은 부분이 있다면.
“휴대전화로 대략 봤다. 노동 현실에 대한 정확한 진단이 부족한 것 같다. 자기들의 정치적 욕심을 가지고 표심을 위한 정치적 공약만 내세우는 것 아닌가 싶다. 진실 되게 대선 주자들이 노동 현안을 해결하려고 한다면 실질적으로 현안이 무엇인지부터 파악해야 한다. 그런데 그게 아니라 너무 큰 틀에서 외부적으로 알려진 것에만 급급해서 공약을 내세우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 노조 탄압이나 부당노동행위가 발생해도 사업주가 제대로 처벌받지 못하는 현실이다. 어떻게 개선돼야 한다고 생각하나.
“어느 대선 주자가 대통령이 될지 모르지만 이후 정치적 방향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현장의 실질적인 목소리를 듣는 자리가 필요하다. 노동현안을 파악하기 위해 주로 노동부가 형식적인 조사를 한다. 실제 탄압받고 정리해고된 노동자, 비정규직 당사자를 직접 불러서 토론회를 갖든지 청와대로 불러 간담회를 하든지 해야 한다. 실질적으로 왜 이렇게까지 투쟁을 하는지 알아야 해결방안이 나올 것 아닌가. 해결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야 5년 후에 여든 야든 지지할 것 아닌가. 매번 대선 때만 되면 노동자 표심을 잡겠다고 공약하는게 아니라 먼저 해놓고 노동자들에게 요구하고 도와달라고 해야 하는 것 아닌가.”

- 사측 책임자 처벌이 가시화되고 해고자 복직, 어용노조 해산요구가 받아들여지면 내려가는 것인가.
“불법을 자행한 사측 처벌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지배개입으로 만들어진 어용노조는 노조로 볼 수 없다. 임의단체다. 해산해야 한다. 전 조합원이 징계 받은 사례도 없을 것이다. 회사는 금속노조를 와해하고 어용노조에 가입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징계를 했다. 부당징계는 철회돼야 한다.”

- 지난달 14일 검찰과 고용노동부는 사건 발생 1년 반 만에 유성기업 사측에 대한 압수수색을 단행했다.
“노동부나 수사기관에 대한 신뢰성은 이미 다 떨어졌다. 노동자 한 명을 처벌하기 위해서는 아주 신속하게 처리한다. 현재도 두 명의 동지가 실형을 살고 있다. 하지만 사측의 부당노동행위가 밝혀져도 늑장대응으로 일관한다. 노동부가 11월 말까지 수사결과를 발표하겠다고 했는데 아직도 안 나왔다. 오늘 노동부에 확인해봤더니 부당노동행위 관련 수사는 마무리했고 검찰에 수사 보고를 했다고 한다. 검찰 의견을 받아서 기소 의견으로 송치할 것이라고 하더라. 하지만 검찰에서 수사를 보강해야 한다고 하면 다시 수사를 해야 한다. 올해도 얼마 남지 않았다. 검찰에서 계속 쥐고 있으면서 시간만 가고 있는 것이다. 대선에서 누가 될지 모르지만 눈치를 보며 시기조절하는 것 아니겠나.”

   
▲ 결의대회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조합원들에게 손을 흔들며 인사하는 홍종인 지회장. ⓒ조현미 기자

- 어용노조에 있던 조합원들이 다시 금속노조로 돌아왔다는 보도도 있었다.
“농성을 시작하고 어용노조에 있던 조합원 9명이 다시 넘어왔다. 그런데 회사에서 다시 그 사람들을 개별 작업해서 1~2명이 다시 어용노조로 넘어갔다. 지금도 다시 오겠다는 사람들이 있지만 불이익을 받을까봐 결정을 못 내리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 지난 4일 아산공장 노동자가 목숨을 끊는 안타까운 일이 벌어졌다. 평소 알고 있던 조합원이었나.
“지난해 유성기업 투쟁 전에 대구공장에 계셨던 분이다. 대구공장에서 외주화 등으로 인해 아산공장으로 올라오신 분인데 얼마 안 있다가 직장폐쇄가 된 것이다. 회사에서는 대구공장에 있을 때부터 개인 질병이 있었다는 식으로 몰고 갔고 (회사에서) 나가라고 하기도 했다. 그 조합원은 어용노조 소속이었는데 형수가 우리 쪽에 도와달라고 연락이 왔었다. 어용노조에서 산재는 자기들 권한이 아니라며 도와주지 않았다는 것이다. 어용노조 직장동료가 개인질병이라는 식으로 진술서를 써서 형수가 깜짝 놀랐다고 한다. 한솥밥을 먹던 사람이었다면서. 형수는 반감금노동을 시키며 열악한 환경에서 일해 줬는데 회사가 토사구팽했다며 1인 시위를 하기도 했다. 저희 쪽 노조에서 노무사를 붙여서 결국 산재 승인이 됐다.”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52일 동안 버팀목이 된 것은 조합원들이다. 출근 퇴근 점심 시간마다 인사해주고 문자를 보내며 격려해준다. 조합원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대선 국면에서 후보들이 노동현안 관련해서 전혀 공식적인 개인 입장을 안 내고 있다. 울산 평택 전주 아산에서 노동자들이 얼마나 자기 목소리가 안 나가면 이렇게까지 외치겠나. 거기에 대해 일언반구도 없다. 한번은 민주통합당에서 도와달라고 전화가 오더라. 문재인 후보가 충청권에서 약하다고 도와달라는 것이다. 유성사태가 먼저 해결돼야 내려가지 않겠나.

이명박 정부에서 노조파괴 시나리오로 수많은 사업장 노조가 깨져 나갔다. 월급 받으며 가족과 먹고 살려는 사람을 길바닥으로 내몰면 나라경제가 운영되나. 자본가만 있다고 되는 게 아니다. 노동자도 열심히 생산해야 자본도 있는 거다. 제발 노동현안에 지속적인 관심을 가지고 해결의 실마리를 잡을 수 있는 정책을 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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