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원에게 금품을 갈취했다는 논란으로 법정까지 갔던 기자가 법원의 무죄 판결이 나자 곧바로 현업에 복귀했다. 노동법상 업무복귀는 당연하지만 기자로 현장에 복귀하는 것이 도덕적·윤리적으로 타당하지 않다는 비판이다.

한국경제TV 소속 김아무개 기자는 지난 2009년 2월 경 H산업 대표이사 이아무개씨에게 전화해 “결혼 때문에 경제적으로 힘들다. 1억 원 정도를 도와 달라”고 말했다. 법원 판결문에 따르면 김 기자는 이 씨 회사의 자금 사정이 좋지 않다는 사실을 보도하고 부정적 기사를 내보낼 듯 한 태도를 보였으며, 결국 이씨는 김 기자에게 7천 만 원을 송금했다.

김 기자는 이씨로부터 돈을 받은 4월부터 12월까지 총 18회에 걸쳐 H산업 이슈를 보도했다. 긍정보도가 많았다. 일례로 2009년 12월 2일자 기사에선 “2006년 오일샌드 사업에 뛰어든 H산업이 내년도 가시적인 성과를 기대하고 있다. 작지만 독자적인 힘으로 미국시장에 진출한 H산업의 행보에 관심이 모아진다”는 식이다.

이 사건은 법정으로 옮겨갔다. 2011년 법원은 1심판결에서 “이 씨를 협박했다고 보기 어렵다”며 무죄를 선고했지만 올해 4월 2심판결에선 원심을 파기하고 김 기자에게 징역 10월, 집행유예 2년에 사회봉사 120시간을 선고했다.

법원은 2심 판결문에서 △피해자가 피고인에게 돈을 송금하지 않는다면 피해자 회사의 내부사정을 알고 있는 피고인이 회사의 자금사정 등에 관하여 부정적인 기사를 내보낼 것 같은 불안감을 느꼈던 점 △피고인이 요구한 1억 원 금액은 친분이 있는 사이라도 쉽게 주고받을 수 있는 금액이 아니란 점 △피해자가 만약 피고인이 기자가 아니었다면 7000만 원이나 되는 거액을 송금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진술한 점을 들어 유죄를 선고했다.

   
▲ 2010년 6월 14일자 한국경제신문 2면 사진기사.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계 없습니다.

그러나 대법원은 지난 9월 13일 원심판결을 파기하며 김 기자 손을 들어줬다. 대법원은 판결문에서 “피해자와 피고인 사이에는 취재원과 기자라는 공적 관계 이상의 친분관계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며 “피해자도 송금 당시 피고인이 돈을 돌려줄 것으로 여겼고 피고인의 경우 외에도 차용증이나 이자 약정 없이 친분관계가 있는 지인들에게 돈을 빌려준 경우가 여러 번 있었다고 진술한 점을 감안하면 피해자로부터 차용금 명목으로 돈을 송금 받았을 뿐이라는 피고인 주장은 설득력 있다”고 밝혔다.

김 기자는 수사가 시작된 후 이씨에게 7000만 원을 돌려줬다. 대법원 판결이 난 이후 회사로 복귀했으며, 현재 보도본부 경제팀 소속으로 H은행에 출입하고 있다. 이를 두고 기자로 현장에 복귀하는 것은 도덕적으로 바람직하지 않다는 지적이다.

한국경제TV의 한 기자는 “김 기자는 매체의 신뢰도에 타격을 줬는데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복귀했다. 동료 기자들의 동의나 당사자의 해명은 없었다”며 “기자 윤리강령을 어긴 것이 분명한데 얼렁뚱땅 복귀해서 기자들 사이에 문제의식이 많다”고 말했다. 이 기자는 김 기자의 복귀를 두고 “사내에선 복귀 후 경영지원팀으로 가서 자숙할 줄 알았는데 본인이 기자를 지원했다고 하더라”며 “양심의 가책을 느낀다면 바로 기자를 해선 안 되는 것 아닌가”라고 비판했다.

기자협회에 명시된 기자윤리강령에는 ‘취재보도 과정에서 기자의 신분을 이용해 부당이득을 취하지 않으며, 취재원으로부터 제공되는 사적인 특혜나 편의를 거절한다’고 나와 있다. 김 기자는 기자라는 신분을 이용해 차용증이나 이자 없이 7000만 원을 빌렸기 때문에 윤리강령에 비춰볼 때 문제의 소지가 남아있다. 이는 법적 무죄와는 별개 문제다.

박록삼 한국기자협회 신문윤리위원은 이번 사건을 두고 “기자들 입장에선 당연히 문제를 지적할 수 있는 사안”이라고 밝힌 뒤 “회사는 사원이 도덕적으로 옳지 않은 추문에 휘말린 경우 법적 무죄를 받았기 때문에 징계는 어렵겠으나 이번 사건의 전후정황을 알고 있다면 내부적으로 사건이 재발되지 않게끔 경계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방규식 한국경제TV 보도본부장은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무죄판결이 났는데 어느 잣대로 (복귀의 정당성을) 평가 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고 밝힌 뒤 “(김 기자의) 윤리적 문제에 대해서는 코멘트 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논란의 중심인 김 기자는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공식적인 답변을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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