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에서 가장 유명한 나영석 PD가 CJ E&M으로 이직했다. KBS PD들의 CJ 行은 새로운 일이 아니다. 지난 2년 간 <개그콘서트> 김석현 PD, <1박 2일> 이명한 PD, <남자의 자격> 신원호 PD가 차례로 CJ에 둥지를 틀었다. 예능만이 아니다. 드라마 <추노>로 한국 사회를 흔들었던 곽정환 PD와 호평 속에 끝난 <성균관 스캔들>의 김원석 PD도 CJ로 갔다.

나영석 PD는 5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지상파와 케이블은 토양 자체가 완전히 다르다. 지난 10년간 익숙해진 환경에서 새로운 것에 도전해보고 싶다”며 이직 배경을 설명했다. 나영석 PD는 2013년 1월부터 CJ에 출근할 예정이며 올해까지는 KBS에 남아있기 때문에 민감한 질문에는 말을 아꼈다.

왜 KBS 스타PD들이 CJ로 가는 것일까. PD들 입장에선 KBS만큼 안정적인 시청률을 보장받는 곳도 없다. 복지 등 처우도 좋고, 공영방송에서 일한다는 자부심도 가질 수 있다. 하지만 PD들은 떠나고 있다. 이를 두고 KBS 특유의 관료적 조직분위기와 KBS의 ‘올드 플랫폼화’가 창조적인 직업에 해당하는 PD와는 잘 맞지 않기 때문이란 지적이다.

   
▲ KBS에서 CJ E&M으로 이직을 결정, 2013년 1월부터 CJ E&M으로 출근하는 나영석 PD.
이치열 기자 truth710@

MBC의 한 예능 PD는 “KBS는 예능PD 사이에서 갑갑한 조직으로 알려져 있다. MBC와 SBS에 비해 관료적이고, 프로그램 제작과정에서 절차도 복잡하기로 유명하다. PD가 자유롭게 연출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 PD는 “오래있다 보면 새로운 것에 도전해보고 싶은 생각이 들 수밖에 없을 것이다. 급여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문제”라고 전했다.

CJ E&M으로 이직한 KBS 출신의 한 스타PD는 익명을 전제로 KBS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외부에서 관료적이라 느낄 정도면 내부에선 어떻겠나…. 자기가 왜 이 프로그램을 하는지도 모르면서 시키면 해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 아이디어를 가져오면 일개 PD의 월권이라며 (간부들이) 말도 안 되는 작품을 편성하는 경우도 있었다. 문제가 생기면 연출PD에게만 책임을 전가했다. 유명해져도 결코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없는 구조였다.”

프로그램 수는 한정됐지만 예능PD의 인원이 많은 점도 부담으로 작용했을 수 있다. 한국PD연합회 소속 KBS 예능PD는 2012년 현재 88명으로 집계된다. 3사 중 예능PD가 제일 많다. KBS 1TV와 2TV에 편성된 예능프로그램은 10~15편 정도다. 보통 프로그램 하나에 메인 PD 1명을 포함해 3명의 PD가 붙는다고 했을 때, 현재 가용인력은 45명 내외라는 추론이 가능하다. 이 경우 예능PD의 나머지 절반은 맡은 프로그램이 없거나 간부다. 새로운 포맷을 시도하고 싶어도 프로그램 연출을 기다리는 후배와 상당수의 선배들을 고려해야 한다.   

CJ E&M 관계자는 “KBS가 굴곡 없는 직장이지만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입장에선 자기가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는 만족도가 중요할 것 같다”고 밝힌 뒤 “우리는 여러 채널도 많이 갖고 있으며 PD 본인이 중심이 되어 할 수 있는 게 많다”며 일련의 이직 배경을 짚었다. 이 관계자는 “미래지향적인 일을 할 수 있는 부분에선 CJ가 열려있어서 지상파 대비 차별화된 콘텐츠를 만들 수 있다”고 전했다.

   
▲ tvN '응답하라 1997'의 한 장면. ⓒtvN

CJ의 이 같은 자신감은 최근 신원호 PD의 성공작인 <응답하라 1997>에서 비롯된다. <응답하라 1997>은 케이블이란 플랫폼을 콘텐츠로 극복하며 1990년대 복고 열풍을 일으켰다. 신 PD의 성공 이후 <성균관스캔들>을 연출했던 김원석 PD는 Mnet에서 16부작 뮤직드라마 제작에 들어갔다.

신원호 PD는 이와 관련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콘텐츠의 질이 좋으면 충분히 케이블에서도 반응을 이끌어낼 수 있다. TV 앞에 앉아서 시청하는 시대는 지났다. 지상파에선 시청률 숫자 자체에만 목을 매던 습관이 있지만, 지금은 숫자로 표현되지 않는 반향을 느낀다”고 밝힌 바 있다.

KBS 예능PD 입장에선 수신료문제도 골칫거리다. 종합편성채널이 본격 출연하며 언론계는 광고판을 키우려 하는 상황이다. 이런 가운데 KBS 수신료가 인상되면 KBS 2TV 상업광고가 크게 줄거나 폐지될 것이란 이야기가 방송계에서 나왔다. 광고가 폐지되면 2TV는 1TV와 비슷한 길을 걷게 된다. 이 경우 KBS 예능은 ‘전국노래자랑’과 ‘TV쇼 진품명품’化 될 가능성이 높다. 젊은 PD들은 갈 길을 잃게 된다. 

   
▲ KBS '1박 2일'의 한 장면. ⓒKBS

더욱이 KBS는 상당수의 시청자가 고연령층이다. 플랫폼이 나이가 든 것이다. 미디어오늘이 AGB 닐슨미디어리서치에 의뢰해 2012년 평균 시청자 구성비를 분석한 결과 KBS <해피선데이>는 10대·20대 시청률이 전체 시청층의 21%에 불과했다. 40대는 23%, 50대는 22%, 60대 이상 시청자도 19%를 차지했다. KBS <해피투게더> 역시 10대·20대 시청률은 24%였지만 40~50대 시청률은 46%에 달했다.

반면 tvN <응답하라 1997>의 경우 10대·20대 시청층이 전체의 55%로 나타났다. 3O대도 23%에 달했으며, 50대 이상은 6%에 불과했다. 창작자 입장에선 <1박 2일>처럼 규격화된 포맷에 따라 제작하며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는 것보다 tvN에서 새롭게 시작한 <세 얼간이>처럼 새로운 포맷에 도전하고 싶을 수 있다. 더욱이 지상파에서 성공한 PD라면 도전정신은 높을 것이다.

도전은 관료적이고 올드한 플랫폼에선 어렵지만, 젊은 층이 많이 보는 케이블 플랫폼에선 가능하다. 나영석 PD의 이직은 이와 같은 KBS 전반의 상황을 알고 보면 이해가 쉽다.

나영석 PD는 ‘더 이상 KBS에 기대할 것이 없어 이직을 결심한 것이냐’는 기자의 질문에 “회사와는 전혀 관계없다. 개인적 결정이다”라고 말했다. 나 PD는 한 언론과 인터뷰에서 “신원호 PD가 <응답하라 1997>을 연출했듯이 나도 드라마 연출 기회가 주어지면 언제든 할 생각이 있다”고 밝혔다. 그는 도전을 원하고 있다. KBS는 그에게 도전의 장을 만들어주지 못한 것일까. KBS는 이렇게 11년간 키운 또 한 명의 스타PD를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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