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2일간 소말리아 해적에게 피랍됐던 제미니호 한국선원 4명이 한국 시간으로 지난 1일 석방됐다. 언론은 일제히 석방소식을 주요하게 전하며 환영했다. 올해를 넘기지 않고 선원 모두 안전하게 고국으로 돌아와 다행이다.

대다수 언론은 ‘강감찬호’의 활약상이나 “빗물을 받아 마시며 짐승처럼 살았다”는 선원들의 현지생활 따위를 보도했지만 최악의 장기피랍 사태의 본질은 외면했다. 언론이 본질을 지적하지 않는 이상 제미니호 사태는 반복될 수밖에 없다.

유례없는 장기피랍의 1차 원인은 이명박 정부에게 있다. 이명박 정부는 2011년 초 아덴만 작전을 통해 소말리아 해적들을 사살했다. 이후 사살 소식을 전 세계적으로 홍보했다. 군사작전은 해적에게 ‘적개심’을 불러일으켰고, 그로 인해 한국인은 위험해졌다.

정부는 재발 방지를 위해 선박 내 선원피난처 설치를 의무화하고 위험 해역 항해 시 보안요원 탐승의무 등의 대책을 세우겠다고 밝혔지만 자국민을 위험에 빠뜨렸던 무모한 군사작전 감행이 반복되는 한 근본적인 대책이 될 수 없다.

이와 관련 소말리아에 여전히 피랍중인 선원의 상당수가 한국과 마찬가지로 소말리아 해적에게 군사작전을 실시했던 인도라는 사실은 상징적이다. 정부와 언론은 이번 사태를 통해 물리적 대응은 결국 물리적 위험을 낳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배워야 한다.

한국 사회는 이번 사태를 계기로 소말리아 해적의 출몰 배경도 이해해야 한다. 소말리아는 1000만 명의 인구 중 20% 이상이 난민이다. 내륙이 대부분 사막이어서 소말리아 국민 대부분은 어업으로 살아간다. 하지만 내전으로 사회가 혼란스러워지자 강대국 어선이 불법 조업으로 삶의 터전을 빼앗았다.

해외 언론보도에 따르면 유럽 기업은 소말리아 해역에 핵폐기물 같은 유해 쓰레기를 지속적으로 갖다버렸다. 이 때문에 소말리아에선 장애아 출산율과 암 발생률이 증가했다고 한다. 결과적으로 사회가 불안한 탓에 소말리아 청년들은 해적질을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으로 내몰렸다.

한국정부는 지난 11월 20일 소말리아 정부에 50만 달러의 원조를 보냈다고 한다. 지구시민의 입장에서 실질적인 원조가 이어져 소말리아인들이 해적질을 하지 않아도 살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 해적의 위험에서 벗어나는 근본적 대책이다.  

또한 지금 시점에선 구출된 선원에 대한 대책도 중요하다. 구출됐다고 끝이 아니다. 제미니호 항해사 이건일씨는 피랍기간 중 아내 김정숙씨와 한 통화에서 “(해적이) 내 머리에 총을 대고 있다. 협상이 잘 안 되면 1명씩 죽이겠다고 한다”고 말했다. 선원들은 이 같은 극한의 공포 속에 582일간을 버텼다. 과거 피랍경험이 있는 선원들에 비춰봤을 때 제미니호 선원들 역시 심한 내상에 시달릴 확률이 높다. 다시는 배를 못 탈 수도 있다. 정부는 선원들의 사후 대책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

무엇보다 언론은 이번 계기를 통해 정부 측의 장기 보도유예 요구에 대해 다시 고민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외교통상부 출입기자단을 비롯한 대다수 언론은 지난해 12월 초 선원들의 재 납치 이후 정부 요청에 따라 약 9개월 간 보도유예를 지속했다. 하지만 지난 8월 24일 미디어오늘과 시사인의 언론보도 이후 3개월 만에 선원들이 석방됐다.

결과론적인 이야기라고 반박할 수 있다. 하지만 언론보도 이후 가족들이 기자회견에 나섰고, 기자회견으로 싱가포르 정부가 압박을 받았고, 그 결과 싱가포르 선사가 적극적으로 해적과 협상에 임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물론 보도유예를 지켰던 기자들에게도 나름의 논리는 있다. 보도로 인해 납치된 선원들의 신변이 위협받을 수 있다는 논리이다. 하지만 이번 제미니호에서 보듯, 정부가 사태해결에 최대한의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다는 판단이 내려진다면, 정부의 보도유예 요청을 무조건 지키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기자들이 국익을 가장한 관료주의에 판단을 내맡기거나 출입처와의 이해관계 등에 얽매여 언론 본연의 자세를 소홀히 한 점은 없었는지 이번 제미니호 사건을 통해 곰곰히 자성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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