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오직 ‘마지막 장면’을 위해 달려간다. 러닝타임 135분 내내 숨이 가쁘다. 때문에 강풀의 원작만화를 보지 않은 사람도, 본 사람도 쉽게 영화를 즐길 수 있다. 감독은 영리하게도 ‘1980년 광주’라는 무게감 있는 서사를 복수극이란 대중적 장르로 옮기며 영화가 자칫 386 운동권 세대의 전유물이 되는 것을 피한다.
‘민중진군 원년’으로 불리는 1980년 5월의 광주를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이들의 눈에는 메시지와 역사적 맥락의 전달 면에서 아쉬움이 있을 수 있다. 원작에 비해 줄거리도 압축적이고 인물배경을 온전히 이해하기도 어렵다. 그러나 <26년>은 철저하게 대중적 흥행을 위해 제작됐다. <이제는 말할 수 있다>(MBC)나 <역사스페셜>(KBS)류의 다큐물을 기대해선 안 된다.
영화는 이어 “당시 군의 권력자는 이 만행을 발판으로 대한민국의 11대 대통령이 됐다”는 자막을 올린다. 현대사에 무심했던 이들도 초반 15분만 보면 분노가 끌어오르게 된다.
곽진배의 어머니는 TV속 ‘그 사람’을 볼 때마다 몸을 부르르 떤다. 심미진의 아버지는 그 사람의 집 앞에서 화염병을 던지다 불에 타 죽는다. 권정혁(임슬옹 분)은 “경찰이 되고서도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며 흐느낀다. 영화는 관객을 다그친다. 어서 빨리 ‘그 사람’을 죽여야 한다고.
하지만 원작만화에선 ‘그 사람’의 결말이 드러나지 않는다. 강풀은 “많은 분들이 마지막 장면을 두고 실패냐 성공이냐를 궁금해 하고 질문하셨는데 결말은 보시는 그대로”라고 밝힌 바 있다. 그렇다면 영화 속 ‘그 사람’은 죽었을까 살았을까. 결말은 관객의 ‘의지’에 따라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그 사람’의 미납추징금은 2010년 기준 1672억 원이다. 사망하면 추징금은 자동 사라진다. 여러 정권을 거치며 ‘그 사람’의 기억은 희미해졌고, 때론 미화됐다. 역사의 매듭을 짓지 못한 결과다.
<26년>의 제작에 관여한 모든 이들은 스스로 곽진배와 심미진이 되어 현실에서 역사의 매듭을 지으려 한다. ‘그 사람’이 떠받들었던 ‘그때 그 사람’의 딸이 대통령이 될 수 있는 드라마틱한 현실에서 1980년 광주의 기억을 갖고 있는 이들은 절박하다. 이 영화가 매우 대중적이지만, 동시에 매우 정치적인 이유다. 11월 29일 개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