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일 아이유·은혁의 사진을 처음 보도한 곳은 동아닷컴이었다. 동아닷컴 직원들은 3교대로 근무하며 새벽에도 연예인의 트위터를 체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 결과 아이유가 새벽 3시경 올린 사진은 4시 48분 <아이유 트위터에 의문의 사진 올라와>라는 ‘단독기사’로 등장했다. 이 사진이 보도가치가 있는지, 언론윤리에 맞는지는 생각할 겨를도 없이 조회 수가 나온다 싶으면 최대한 빨리 올려야 한다. 연예매체 기자들의 숙명이다. 

연예기사는 △TV모니터링 △보도자료 전달 △연예인 SNS 업데이트 △UCC 이슈 발굴 △타 매체나 통신사, 외신을 베끼거나 축약 △포털 인기검색어와 프로그램 시청률에 맞춘 인기영합형 뉴스를 생산한다. 가히 ‘기사’라 부르기 민망한 수준의 내용도 많다. 때문에 연예매체기자들은 독자에게 각종 비아냥과 무시를 당한다. 하지만 미디어오늘 취재 결과 연예매체기자들이 처한 환경은 ‘기자’로 살아가기 어려운 수준이었다.

미디어오늘은 최근까지 한 인터넷 연예매체에서 근무하다 퇴사한 A씨를 만나 심층인터뷰를 진행했다. A씨는 하루 50건 이상의 기사를 생산했다. 자신이 썼던 기사 대부분을 기억하지 못한다고 했다. A씨는 퇴사 이후 더 이상 TV를 보지 않게 됐다며 속내를 털어놨다. 미디어오늘은 A씨와 인터뷰 내용을 1인칭 시점으로 정리했다. A씨의 사례는 한국 사회 연예기사의 생산구조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우리는 업계에서 제일 빡세다고 소문이 났다. 이곳에서 기사를 잘 쓴다는 건 빠르게 많이 쓰는 걸 의미한다. 보통 오전 8시까지 출근해 컴퓨터를 켜고 기사 작성 창에 ‘작성 중’을 건다. 9시까지 간밤의 내용으로 기사를 3~4개 써야 한다. 거의 네이버 검색어에 잡힌 것을 보고 쓴다. 우리만 물먹으면 안 되니까 작은 것이라도 써야한다. 9시에 출근한 부장으로부터 “지금까지 뭐 했냐”는 ‘갈굼’을 당하며 하루가 시작된다.

보통 퇴근할 때까지 회사에서 기사를 썼다. 입사 6개월까지 대부분 회사에만 있었다. 밖에 못 나가게 했다. 주로 포털 검색어 순위를 보고 썼다. ‘묻지마 폭행’같은 게 검색어에 뜨면 그것도 썼다. 기사가 뒤로 밀리면 제목을 바꿔 ‘미디어부’나 ‘엔터테인먼트부’와 같은 바이라인으로 다시 올렸다. 그렇게 오전 8시부터 오후 7시까지 일하면 보통 50개 이상은 썼다. 못 쓰는 경우 30~40개 썼다. 생산력이 좋은 사람들은 하루에 70개 이상도 썼다.

제작발표회 현장에 가기 전에는 미리 기사 포맷을 만들고 출발했다. 기사의 질보다는 속도와 양으로 승부해야 했다. 보통 발표회 현장에서만 10개 이상을 썼다. 연예인이 이슈가 되는 말을 하면 그 한마디로도 기사를 썼다. 생각 할 여유는 없었다. 포털 메인에 뜨는 게 중요했기 때문에 항상 제목에 집중했다. 제목을 다시 뽑으라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 회사에선 부장이 제일 고생이었다. 셀 수 없는 이슈들을 눈이 빠지게 모니터하며 지시를 내렸다.

퇴근해도 퇴근이 아니었다. 저녁에도 포털 상위검색어를 체크하고 드라마와 예능프로그램을 보며 기사를 썼다. 수습시절에는 3개월 내내 저녁에도 일했다. 피곤해서 졸다가 프로그램을 놓치면 다시보기로 봐야 했다. 이럴 경우엔 두 시간 자고 출근하는 때도 있었다. 순간순간 캡처도 해야 해서 업무는 빡빡했다. 추석에도 명절특집프로그램을 보며 기사를 썼다. 이런 이야기를 타사 기자들에게 했다가 선배 귀에 들어가서 혼이 나기도 했다. 일하면서 휴가를 쓴 기억은 없다.

주말은 하루만 쉴 수 있었다. 주말 버라이어티의 경우 실시간으로 써야 하니 경험 많은 선배들이 맡았다. MBC <무한도전>에는 보통 3명이 붙었다. 실시간 채팅을 나누며 기사주제를 정했다. 쉬는 날에도 전화가 오면 기사를 썼다. <무한도전> 같은 프로그램을 예전엔 재밌게 봤지만 지금은 더 이상 즐기면서 볼 수 없게 됐다. 기사 때문에 억지로 봤던 방송을 이제 안 볼 수 있어서 너무 좋다. 회사를 그만 둔 뒤부터는 TV를 보지 않는다.

일하기 전에는 드라마 줄거리나 알려주는 이런 쓸 데 없는 기사가 왜 올라올까 이해 못했는데, 입사한 뒤부터는 비판적으로 생각을 해도 이 구조를 바꿀 수가 없었다. 조회 수로 먹고 살기 때문이다. 회사는 조회 수로 인센티브를 줬다. 만약 한 달간 기자 한 명이 200만 건을 올리면 20만원, 500만 건을 올리면 50만원을 주는 식이었다. 그래서 당직이 돈 벌기에는 좋았다. 일은 아무 보람이 없었다. 올려봤자 “나도 기사 쓰겠다”, “기자가 일기를 왜 써놓느냐”는 식의 악플만 달렸다.

선배들은 대부분 이직을 생각하고 있었다. 채용은 수시로 이뤄졌다. 한 달에 한 명은 나갔다. 글을 쓰고 싶어 들어왔다고 했더니 선배가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라고 했다. 이곳을 바꾼다는 생각은 아무도 안 했다. 여기서 하다보면 다른 곳에선 편해지겠지 생각했다. 밖에서 알아주지 않는다는 얘기와 누리꾼들의 댓글을 보며 힘들었다. 시간을 들여 열심히 써도 주목은 못 받았다. 우린 기자가 아닌 기자였다. 어디 가서 기자라고 말하지 않았다.

현직에 있다면 지난번 아이유·은혁 사건은 무조건 써야 한다. 아이유가 검색어에 떠 있으면 남들과 비슷한데 조금 다른 걸 써야 한다. ‘아이유 과거 발언’처럼 엮을 만한 것을 찾는 식이다. 누리꾼 반응을 모으거나 누리꾼이 포착한 증거를 인용하기도 한다. 연예인 트위터는 수시로 들어가야 한다. 기사가 아이유에게 상처가 될 거라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다. 연예인 사생활을 파헤치고 싶어 하는 사람도 거의 없다. 하지만 아이유 기사를 안 쓰면 내가 (회사로부터) 상처를 받는다. 돌이켜볼수록, 정말 보람 없는 직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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