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산시에 ‘비상’이 걸렸다. GM이 글로벌 전략 차종인 크루즈의 후속모델(J400)을 군산공장에서 생산하지 않겠다는 방침을 최근 밝혔기 때문이다. 문동신 군산시장은 지난 6일 직접 상경, 인천 부평에 위치한 한국GM 본사를 방문해 계획 철회를 요구하고 나섰다. 군산시의회와 군산상공회의소, 전라북도도 대책 마련에 나섰다. GM의 유럽 자회사로 물량이 옮겨가면 줄어든 일감만큼 ‘구조조정’ 가능성도 점쳐진다. 군산시와 전북도로선 ‘안 될 말’이다. 
 
GM ‘글로벌 생산기지’에 드리운 먹구름
 
군산공장과 크루즈의 ‘존재감’은 막강하다. 연간 26만4000대 규모인 군산공장은 크루즈 시리즈와 올란도를 생산하고 있다. 지난해 군산공장 매출액 5조6000억원 중 80%에 해당하는 4조4800억원이 수출에서 나왔다. 군산시 전체 수출의 55%, 전라북도의 31%에 해당한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 경·소형차 시장에 집중하기 시작한 GM에게 GM대우는 ‘핵심 고리’였다. 군산공장에서 수출된 크루즈가 ‘GM을 살려냈다’는 평가를 받을 정도였다.

 
GM도 이런 사정을 모르지 않는다. 크루즈는 글로벌 자동차 기업 GM의 ‘글로벌 전략 모델’이고, 군산은 2009년 2월부터 유럽 시장 물량을 담당해 온 크루즈의 핵심 생산 기지다. 한국GM은 지난해 군산공장에서 21만대의 크루즈를 생산했다. 이 중 18만대가 수출됐다. 올해 들어 10월까지 군산공장에서 생산된 크루즈 시리즈 중 수출량은 12만대나 된다. 한국GM은 대우자동차를 인수한 뒤인 ‘GM대우’ 시절부터 ‘J’ 시리즈를 국내에서 개발해왔다.
 
노조와 전문가들은 우려를 드러낸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15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생산 물량이 줄어들면 결국 첫 번째 수순이 구조조정이라는 측면에서 걱정”이라고 말했다. 이종탁 산업노동정책연구소 선임연구원도 “노조나 사회적인 저항이 없으면 아무래도 (구조조정을) 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노조는 이날 아침 세르지오 호샤 한국GM 사장을 비롯한 임원진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미래발전전략회의’에서 이 같은 우려를 전달했다.
 
한국GM 측은 ‘기우’라고 해명했다. 홍보실 관계자는 15일 통화에서 “후속모델을 생산하지 않는다고 물량이 줄어들 거라는 건 우려일 뿐”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그동안 군산공장에서 글로벌 신차를 세계에서 제일 먼저 생산해왔던 것과 달라서 우려는 있을 수 있다”면서도 “(후속모델이 아니더라도) 앞으로도 물량이 상당할 것”이라고 밝혔다. “(군산공장에서) 앞으로 영원히 후속모델을 만들지 않겠다고 한 것도 아니지 않느냐”는 설명이다.
 
그러나 ‘의혹’은 여전하다. 호샤 사장은 8월31일, “우리가 생산하는 차종은 해외 타 기지에서도 생산 가능하다”고 말했다. 26차 노사 임금단체협상장에서다. 그는 “안정적인 생산이 담보되지 않는 사업장에 물량을 배분할 이유가 없다”고 노조를 압박했다. 당시 ‘본사와 교감이 있었던 것 아니냐’는 해석이 조심스레 나왔다. 노조(금속노조 한국GM지부)는 7월 세 차례의 부분파업을 벌였다. 파업 찬반투표에는 사상 처음으로 사무직 노동자들도 참여했다. 
 
노사 협상은 30여 차례 넘게 이어졌다. 노조는 9월14일 협상이 ‘승리’로 끝났다고 밝혔다. 노조는 주간연속2교대제 도입과 사무직 임금체계 개선, 성과급 차등지급제 폐지, 기본급 인상 및 격려금·성과급 지급 등 대부분의 요구안을 관철시켰다. 민기 지부장은 협상 타결 직후 “올해 우리는 지난 10년간의 압박과 굴레 속에서 벗어나 노동조합의 정체성을 확보했다”고 밝혔다. 대우차 시절 ‘강성’으로 꼽히던 한국GM 노조는 한동안 침체를 겪고 있었다.

 
정부·노동자 길들이는 ‘GM 스타일’…산은이 ‘방패’ 될까
 
물량 이전 결정이 발표된 시점에 관심이 쏠리는 배경이다. 노조는 협상 성과를 토대로 구성된 ‘주간연속 2교대제 추진위원회’와 ‘사무직 임금체계개선위원회’에서 사측과 논의를 시작하려던 상황이었다. 노조 최종학 대외협력실장은 15일 “노조를 흔들어 보겠다는 게 하나의 요인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종탁 연구원도 “다양한 요인이 있지만 일정하게 노조와 힘겨루기를 해야 될 필요성에 대한 검토도 반영됐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압박’ 의혹이다.
 
해명과 의혹은 다시 엇갈린다. 한국GM 측은 “글로벌 차원에서 생산·수요 등 여러 가지를 고려해 나온 결정”이라며 “노조를 압박하려고 결정한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반면 최 실장은 “GM은 차종과 물량배정을 가지고 공장간 경쟁을 시키면서 노동자들을 통제·관리해왔고, 미국, 유럽 등 전 세계 GM공장들에서 수많은 사례들이 있다”고 지적했다. GM이 각국의 정치적 상황이나 노사관계 등을 고려해 물량을 배정한다는 건 널리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실제로 GM은 노동자뿐만 아니라 정부도 ‘관리’한다. GM은 2009년 유럽 자회사인 오펠·복스홀 공장 폐쇄와 매각을 놓고 독일과 영국, 벨기에, 스페인 정부의 사이를 헤집어댔다. 자국 공장이 폐쇄될 경우 해고자가 쏟아질 것을 우려한 각국 정부는 앞다퉈 지원을 약속했다. GM은 구조조정에 33억 유로가 필요하다며 이 중 13억 유로는 각국 정부가 내놓아야 한다고 ‘배짱’을 부렸고, 독일 정부는 45억 유로(약 8조원)를 지원하겠다고 약속하기도 했다.

이 대목에서 우리나라 산업은행의 역할에 관심이 쏠린다. 산은은 한국GM의 지분 17.02%를 보유하고 있다. 여기에는 주요 의사결정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비토권(거부권)’이 포함돼 있다. 산은은 GM대우가 2550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하던 2003년 5000억원의 장기대출을 지원했고, 이 대가로 ‘비토권’을 받았다. 산은은 2009년 1조원을 지원하면서도 1년 넘게 GM과 추가 협상을 벌여 새로운 권한들을 받아냈다. ‘먹튀’를 막기 위한 ‘견제장치’다.
 
한국GM은 지난달 이 산업은행 지분을 인수하겠다는 의사를 전달했다. 한국GM을 100% 자회사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호샤 사장은 기자간담회에서 10월19일 강만수 산은지주 회장과 팀 리 GM해외사업부문 사장이 만난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GM이 한국GM의 지속적인 성장을 보장할 의무가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물량이전이나 한국시장 철수 등 ‘먹튀’를 우려하는 시각이 나온다. 그만큼 산은의 지분이 GM에겐 ‘눈엣가시’였다는 이야기다.

 
김필수 교수는 “GM 입장에서는 (산은의 지분이) 껄끄러울 것”이라며 “고용이나 불안정성에 대비해 산은이 지분을 유지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종탁 연구원도 “국가 산업적 관점에서 산업은행이 개입력 있는 조치들을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반면 한국GM 측은 “글로벌 차원에서도 핵심 자회사의 (본사) 지분을 늘려가고 있는 중”이라며 “(한국이) 핵심 사업장이라는 판단에서 지분을 늘려나가려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다른 의도’는 없다는 것이다. 
 
산업은행 ‘신중’… 노동자들은 불안에 떤다
 
산업은행은 일단 ‘신중’한 입장이다. 산업은행 관계자는 15일 “아직 내린 결론은 없다”며 “검토 중에 있다”고 말했다. 노조에 따르면, 산은 관계자는 지난 13일 민주당 홍영표 의원 및 노조와의 면담에서 ‘권리 행사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는 입장을 전했다. 한국경제 보도를 보면, 산업은행은 올해 초에도 외신을 통해 물량이전설을 제기됐을 때 “GM이 물량 이전과 관련된 특별안건을 주주총회에 상정한다면 반대할 수 있다”는 입장을 내비친 바 있다. 
 
다만 산은이 이번 조치에 대해 ‘비토권’을 행사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린다. 한국GM 측은 “비토권에 해당하는 내용이 아니다”라고 잘라 말했다. 김필수 교수는 “산은이 2대 주주 자격으로 의견표시는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산은 관계자는 비토권 행사가 가능한지 여부에 대해 “자세한 (협약) 내용은 비공개여서 말씀드릴 수 없다”고 밝혔다. 최 실장은 “(이와 별개로) 산은이 지분을 매각해선 안 된다는 입장을 전달했다”고 전했다.
 
한국GM은 ‘승승장구’ 하고 있다. 2009년 당시 GM대우는 400%가 넘는 부채비율과 수 조원대의 당기 순손실, 본사로부터 떠안은 2조7000억원대의 환선물 손실에 허덕이고 있었다. 이후 산은의 지원 등에 힘입어 GM대우는 성장 기조로 반전을 이뤘다. 인수 초기 4조2769억원(2003년)이던 매출액은 2011년 15조원으로 급증했다. 산은에서 빌렸던 1조3762억원도 2010년 모두 갚았다. 지난해 3월에는 사명에서 ‘대우’를 떼어내고 ‘한국GM’으로 변신했다.
 
그러나 노동자들의 불안은 가시지 않고 있다. 2011년 한국GM은 전년보다 19% 급증한 16조5708억원의 매출을 올렸으나 영업이익은 2755억원으로 도리어 7%(205억원)나 감소했다. 한국GM의 지난해 매출액 중 수출 비중은 78%이다. 2003년 48.86% 수준이던 GM 관계사와의 거래액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61.39%(2008년), 73.43%(2009년)로 급증했다. 노조를 비롯한 업계 전문가들이 GM 본사로의 ‘이익 유출’ 의혹을 꾸준히 제기하는 이유다. 
 
전문가들은 산업은행의 역할을 강조한다. 이종탁 연구원은 “외국 자본에 넘어간 회사들의 경우 (고용이나 투자에 대한) 불안정성이 국가 산업에 상당한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며 “이걸 규제하려면 정부나 산업은행의 역할이 강화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국가 산업적 관점에서 안정성을 유지하고 이익 빼가기 행위를 규제하는 노력들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김필수 교수도 “국가 차원에서 고용과 산업적 측면을 함께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반면 산업은행은 MB정부에서 끊임없이 ‘민영화’가 검토되어 왔다. 기획재정부가 2009년 1월 발표한 ‘5차 공공기관 선진화 추진계획안’에 따르면, 정부는 산은이 보유한 한국GM 지분(당시 27.9%)을 매각하기로 결정한 바 있다. 산업은행은 2005년 이후 부동산 PF 투자로 8500억원에 가까운 손실을 입었다. 한국GM 보유 지분의 가치는 매입 당시와 비교해 크게 올랐다. “민영화가 아니더라도 지분을 팔려고 할 수 있다”고 노조가 우려하는 까닭이다. 

 
한국GM은 GM의 알짜배기 자회사다. 당장 ‘먹튀’를 할 가능성은 적다. 김필수 교수는 “한국GM은 역량은 다 갖고 있는 회사”라며 “그런 점에서 단순히 쌍용차나 르노삼성과 비교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그러면서도 “경·소형차 R&D(연구개발) 기능과 생산 물량이 한국GM에 남아 있어야 인력 감축도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신차개발이 없는 공장의 미래는 ‘하청기지’일 뿐이다. 산업은행은 중요한 ‘키’를 쥐고 있다. 노동자들은 불안에 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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