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조사 결과보도는 언론이 유권자에게 순위를 알려줌으로써 침묵하는 이들의 생각을 움직이고(침묵의 나선형 효과), 1등을 확고한 1등으로 만들어준다(밴드 웨건 효과). 한국의 경우 ‘여론조사 공화국’이라 불릴 만큼 선거철 언론사들의 여론조사 결과보도가 끊이질 않는다.

전국언론노동조합 대선공정보도실천위원회는 12일 발간한 ‘대선공정보도 실천보고서’에서 대선을 앞두고 각 언론사들이 활발하게 진행하고 있는 “여론조사 결과를 주무르는 나쁜 관행”을 소개했다.

언론이 여론조사를 실시하면서 응답 내용에 결정적인 문항내용을 편향적으로 구성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또한 결과를 보도하면서 객관적이지 않은 분석을 본문과 기사 제목으로 편집하는 언론사도 있었다. 대선 후보들의 지지율이 오차범위 안에서 변동하는 것을 ‘상승’ 또는 ‘하락’이라는 ‘오보’ 또한 발견됐다.

▷“MBC 여론조사 문항에 박근혜 편향성”=여론조사의 관건은 조사 문항이다. 이 문항을 어떻게 구성하느냐에 따라 지지율은 높아지기도 낮아지기도 한다. 대선공정보도실천위는 MBC가 지난달 2일 실시한 여론조사 질문지에 박근혜 후보 편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MBC의 ‘박근혜 후보’ 관련 문항은 “과거사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밝힌 것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사람도 있고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사람도 있”다며 판단 유보를 유도하는 내용을 미리 전달한 뒤 의견을 물었다. 또한 답은 △긍정 △부정 △판단 유보 △모름 순이었다. MBC는 결과를 보도하면서도 ‘판단 유보’ 비율을 전하지 않았다.

반면 안철수 후보의 경우 MBC는 정반대로 문항을 구성했다. MBC는 응답자에게 “안철수 후보에 대해 아파트 다운계약서 작성, 논문 표절 등과 관련한 논란이 있습니다”라고 전한 뒤 질문했다.

▷“기사 제목 편향성… 가장 큰 문제”=실천위는 “가장 큰 문제는 여론조사 결과가 기사와 헤드라인으로 넘어가면서 각색되는 경우”라며 국민일보가 지난달 3일자로 보도한 여론조사 결과 보도를 예로 들었다.

국민일보는 안철수 후보의 다운계약서와 논문 검증 문제에 대해 응답자의 59.2%가 “(후보 자격에) 문제가 되지 않는다”라고 답했지만 기사 제목에서 “안, 도덕성 타격”이라고 표현했다. 이에 반해 같은 조사에서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의 과거사 사과의 진정성 여부에 대해 응답자의 41.8%, 40.6%로 의견이 팽팽하게 맞섰지만 국민일보의 기사 제목은 “박, 부정적 여론 ‘선방’”이었다.

국민일보의 지난달 3일자 2면 기사 제목은 <박, 부정적 여론 ‘선방’… 안, 도덕성 타격>이다. 실천위는 이 기사에 대해 “결과를 ‘떡 주무르듯’ 왜곡했다”고 평가했다.

▷오차범위 내 변동이 지지율 하락?=실천위는 오차범위 내 지지율 변동을 무시한 보도도 지적했다. 실천위에 따르면, 지난 5월 이후 KBS가 매달 실시하는 여론조사와 관련한 ‘9시 뉴스’ 리포트 8건을 분석한 결과 오차범위를 무시하고 지지율이 “상승했다”, “하락했다” 등 표현이 사용됐다.

지난 8월 29일 KBS는 “(지난달 24.6%였던) 안철수 교수는 (24.1%)로 0.5% 포인트 하락했다”고 보도했지만 이 하락폭은 오차범위 ±3.1%(95% 신뢰수준) 이내다. 이에 대해 KBS 새노조(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는 지난달 25일 노사가 함께 개최한 ‘대선공정방송위원회’에서 “두 조사 결과를 비교하려면 오차범위를 다시 계산해야 하며 최소한 오차범위 내의 수치 비교는 안 된다”며 이를 “오보”라고 지적했다. 이에 KBS는 같은 달 30일 보도에서 직접적 수치 비교 없이 지지율 추세만 전달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두 개의 여론조사 결과를 비교해 보도할 경우 여론조사기관, 조사방법, 조사문항이 같고 실시 날짜만 달라야 통계적 의미가 있다. 이 같은 조건이 서로 다른 결과를 비교하면서 지지율이 변화했다고 보도하는 것은 ‘위험한 오류’라고 실천위는 지적했다.

한편 공직선거법은 여론조사 기관과 조사방법, 표본 크기의 오차를 보정한 방법까지 언론사 홈페이지에 공개하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이를 지키는 언론사는 거의 없는 실정이다. 실천위는 “그나마 KBS와 SBS가 조사 개요와 질문·문항 전체를 올려뒀을 뿐”이라고 소개했다.

경향신문은 이 같은 문제점 때문에 여론조사를 실시하지 않고 있다. 연합뉴스 노동조합의 공정보도위원회도 노사 ‘대선보도점검회의’에서 여론조사를 자제하고, 타 기관의 결과를 보도할 경우 추측성 분석보다 전달에 충실하자고 제안한 바 있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