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대 대선 공식선거운동 시작일이 보름 앞으로 다가왔지만, 국회에서 선거법상 인터넷 실명제 폐지 논의가 미뤄지면서 혼란이 빚어지고 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선거운동 기간 동안 ‘인터넷 실명제’를 그대로 실시할 방침이어서 인터넷 언론사와 포털 등이 불만을 드러내고 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지난달 23일 각 언론사와 포털에 ‘선거실명 확인서비스’ 등에 대한 공문을 보냈다. 공식 선거운동 기간인 11월27일부터 12월18일까지 게시판에 실명확인을 위한 기술적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현행 공직선거법(제82조의6)에 따르면, 선거운동기간 중 언론사 게시판에 정당이나 후보자에 대한 지지·반대 정보를 게시하도록 할 경우, 언론사들은 이용자들의 “실명을 확인받도록 하는 기술적 조치”를 해야 한다. 포털의 뉴스 페이지와 아고라(다음), 판(네이트)같은 토론게시판도 실명제 적용 대상이다. 문제는 인터넷 실명제가 이미 폐지됐다는 점이다.
지난 8월23일, 헌법재판소는 정보통신망법상 인터넷 실명제(제한적 본인확인제)에 대해 만장일치로 위헌 결정을 내렸다. 그러자 중앙선관위는 곧바로 전체회의를 열어 “헌재의 위헌결정 취지가 반영되기 위해서는 선거에 관한 인터넷 실명제 또한 폐지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의견을 모으고 관련법 개정 의견을 국회에 제출했다.
그러나 선거법상 인터넷 실명제 조항을 폐지하는 내용의 개정안은 제대로 논의조차 되지 않고 있다. 민주통합당 진선미 의원은 지난 9월5일 해당 조항을 삭제하는 내용의 개정안을 발의했지만, ‘감감 무소식’이다. 진 의원실 관계자는 12일 “투표시간 연장안이 먼저 합의가 돼야 (논의가) 되는데 여야 이견이 커서 (처리 될지 여부는)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행안위는 투표시간을 연장하는 내용의 공직선거법 개정안 처리를 놓고 파행을 거듭하고 있다. 그러는 사이 인터넷 실명제 폐지법안은 뒷전으로 밀려났다. 민주당 내에서도 투표시간 연장법안이 통과될 때까지 다른 법안들에 대한 논의를 미루자는 의견이 다수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12일 아침 10시에 열릴 예정이던 행안위 회의도 개의가 지연되고 있다.
이미 행안위 전문위원들도 검토보고서에서 "헌법재판소 위헌결정의 취지, 현행법상 인터넷을 이용한 선거운동은 상시적으로 허용되고 있으나 인터넷언론사의 실명확인 의무는 선거운동 기간중에만 부여되고 있어 실효성이 적다는 점 등을 고려하여 결정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중앙선관위는 곤혹스러워 하는 표정이다. 중앙선관위 관계자는 12일 “현행법대로 선거를 치러야 하는 상황”이라면서도 “언론사가 직접 운영하지 않는 카페나 블로그, SNS댓글은 (실명제) 적용 대상이 아닌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선관위는 지난 4월 총선에서 SNS댓글에도 실명확인 의무를 부과하겠다고 밝혀 논란을 일으킨 바 있다.
(관련기사: <트위터에 실명인증하는 나라가 어디 있습니까>, <소셜댓글도 실명제 실명인증? 반대운동 확산>)
중앙선관위의 다른 한 관계자는 “실명확인 규정이 그대로 있으니까 취지에 맞게 운영하되 본인확인제 위헌 취지를 존중해서 이용자 편의를 최대한 고려하는 쪽으로 일종의 합리적 운용방안을 내놓은 것”이라며 “소셜댓글 (적용대상 제외)도 그런 차원”이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지난 총선 때보다는 완화된 기준”이라고 덧붙였다.
그럼에도 불만의 목소리는 여전하다. 한 포털사이트 관계자는 “위헌결정 이후 (회원들의) 실명 DB를 다 제거한 상태인데, 선거(법) 때문에 다시 붙여야 하는 상황”이라며 “물리적으로 (시간이) 안 될 수도 있는 작업”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적용이) 가능한지 여부를 떠나서 (선거법상 실명제는) 헌재 결정 취지와 위배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실명확인 장치를 이미 폐지한 인터넷언론 95개사를 비롯해 한국인터넷지역신문협의회, 망중립성이용자포럼, 언론개혁시민연대, 전국 미디어운동네트워크 등은 12일 성명을 내어 “이 법안을 심의조차 하지 않고 있는 것은 여야 국회의원 모두의 직무유기”라며 “국회가 선거법상 인터넷 실명제 폐지법안을 조속히 처리하여 처리할 것을 요구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