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들은 대체로 불행하다. 극적인 갈등의 순간을 목격하지만 정작 자신의 주변에서 일어나는 갈등에는 주체로 나서기 어렵다. 예컨대 ‘주폭’ 기사를 쓰며 밤에 폭탄주를 마시고, 기업의 불공정 행태를 비판하는 기사를 쓴 뒤 이를 광고와 바꿔먹는 식이다. 언론사 안의 부조리엔 쉬쉬할 수밖에 없는 역설적 상황에서 ‘편집권 독립’은 윤리 책에만 존재하는 것 같다. 

그래서 2006년 시사저널 편집국 기자들의 싸움은 놀라웠다. 기자들은 경영진의 삼성 관련 기사 삭제에 저항했고 2007년 1월 파업에 돌입했다. 펜을 놓은 기자들은 취재대상이 되어 집회에 나섰고, “편집권 독립”이란 구호를 외치며 어색한 팔뚝질을 했다. 기자가 자본의 지배를 거부한다는 명분은 낭만적이었지만 월급통장은 현실이었다.

회사는 직장폐쇄를 단행했다. 상황은 비관적이었다. 하지만 기자들은 청년의 눈물을 쏟아내며 끈질기게 버텼다. 차형석 기자는 “기자들은 세상일을 다 아는 것 같지만, 막상 제 일이 되고 나면 무엇을 해야 할지 잘 모르는 헛똑똑이었다. 막상 합법적으로 파업하기가 그렇게 어려운지 알지 못했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파업 기간 중 펴낸 <기자로 산다는 것>(2007)에서 문정우 기자는 “요즘 언론계 풍토에 비춰보면 시사저널 기자들은 모두 제정신이 아니다. 생존이 흔들리다보니 기자 사회에서 언론의 정도나 기자윤리 따위를 운운하는 것은 사치처럼 여기게 됐다”고 적었다. 하지만 시사저널 기자들에게 편집권 독립은 기자 생활을 지속하기 위해서라도 져버릴 수 없는 상식이었다.

숭고한 가치를 쟁취하기 위해 온 몸을 던졌던 경험은 그 자체로 새로운 시작의 밑거름이 된다. 기자들은 시사저널로 돌아가지 못했지만 독립언론 시사IN 창간에 성공했다. 2007년 파업 기간 중 펴낸 <기자로 산다는 것>이 편집권독립을 위한 1막이었다면, 5년이 흘러 발간된 이 책은 그 2막으로 편집권 독립을 이뤄낸 이들의 당당한 후일담이다.

시사IN 초대편집국장을 지낸 문정우 기자는 창간 당시를 다음과 같이 회상했다. “애당초 상식에 반하는 일이었다. 회사와 반목해 뛰쳐나온 기자들이 합심해 매체를 만들어 성공한 예가 없었다.” 더욱이 시사IN은 ‘반기업적’이란 이미지까지 있었다. 광고가 들어올 리 없었다. 속보가 대세인 미디어현장에서 주간지 시장에 대한 기대치도 낮았다.

시사IN 창간을 주도한 것은 기자와 독자였다. 시사IN의 탄생은 거창하게 말하자면 정치·자본 권력에 휘둘리지 않는 언론 하나쯤은 갖고 있어야 한다는 한국사회의 마지막 ‘자존심’에서 비롯됐다. 언론인 고종석씨는 “시사IN은 ‘합리적 비관’을 비웃으며 주류 매체가 특정 정당의 선전국이 돼버린 한국에서 독립 저널리즘의 아이콘이 됐다”고 평했다.

시사IN은 2012년 6월 현재 유가부수 5만8천부를 넘었고, 7월말 발행부수는 7만 부를 돌파하며 창간 5년 만에 시사주간지 업계 1위에 올랐다. 제작거부와 파업, 창간까지 똘똘 뭉쳐 연대했던 시사저널-시사IN 기자들의 험난한 투쟁이 역설적으로 매체의 질을 높인 결과다. 지금 내가 ‘기자’로서 잘하고 있는지 고민이 드는 기자들이 있다면 주목해야 할 대목이다.

책에는 이밖에도 △신정아 단독 인터뷰 △삼성 백혈병의 진실 △나경원 1억 피부과 논란 △러브호텔 잠입 등 기자들의 취재 뒷이야기가 담겼다. 예비언론인에게는 길잡이가 될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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