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독재정권으로부터 재산의 상당수를 강탈당한 고(故) 김지태씨의 유족들이 금주 내로 박근혜 새누리당 대통령후보를 사자(死者)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할 것이라 밝혔다.

지난 10월 21일 박근혜 후보는 기자회견에서 “김지태씨는 부정부패로 많은 지탄을 받은 분이었다”, “4·19부터 부정명단에 올랐고 분노한 시민들이 집 앞에서 시위를 할 정도였다”, “(김지태씨가) 처벌받지 않기 위해 먼저 재산 헌납의 뜻을 밝혔던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김지태씨의 유족인 5남 김영철씨와 6남 김영찬씨는 5일 오후 기자와 만나 “정치적으로 휘말리고 싶지 않아 (기자회견 이후) 열흘 넘게 박 후보 사과를 기다렸으나 적반하장으로 잘못된 사실을 유포하고 있어 더 이상 참을 수가 없다”며 이 같이 밝혔다.

김영철씨는 “금주 내로 박 후보의 공식 사과가 없다면 사자명예훼손으로 대응에 나설 생각이며 이미 법적 검토는 마친 상태”라고 전했다. 김영찬씨는 “박 후보는 전 국민이 보는 기자회견에서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해 사실과 너무 동떨어진 얘기를 했다. 자식 된 도리로서 용납해서도 안 되고 (법적 대응은)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고 말했다.

김영철씨는 “아버지(고 김지태씨)를 두고 부정축재자라 하는 것은 박정희 대통령이 독립운동을 했다는 것과 똑같다”며 박 후보를 비판했다. 김씨는 이어 “분노한 시민들이 집 앞에서 시위를 했다”는 박 후보의 발언에 대해서도 “내가 당시 집에 있었지만 집 앞은 조용했다”며 박 후보가 허위사실을 유포했다고 반박했다.

유족들에 따르면 김지태씨는 이승만 대통령 시절 야당 의원을 지냈으며 지인도 대부분 민주당 쪽이었다. 김 씨는 신익희 선생과 친분이 있었으며 이기붕 당시 부통령이 모직공장을 줄 테니 정치자금을 대라고 했으나 거절했다. 그 덕에 자유당 정권에 미움을 사 조선방직도 거의 인수하려다 빼앗기는 등 자유당 시절은 탄압의 연속이었다는 게 유족 설명이다.

김영철씨는 “만약 정경유착을 통해 부정축재를 했다면 왜 자유당으로부터 탄압을 받았겠나. 자유당과 친했다면 왜 부산일보와 부산문화방송에서 4·19혁명의 도화선이 된 김주열의 사진을 실었겠느냐”라고 되물으며 박근혜 후보의 ‘부정축재자’ 주장을 일축했다.

이와 관련 김지태씨는 자유당 정권·박정희 정권시절과 달리 4·19 혁명 당시 부정축재자를 선정하는 과정에선 부정축재와는 전혀 상관없는 인물로 분류된 것으로 알려졌다.

김영철씨는 “만약 박정희 대통령이 터무니없는 모함을 당했다면 박근혜 후보는 가만히 있을 수 있는지 되묻고 싶다”며 법적 대응의 불가피성을 강조했다.

한편 유족들은 김지태씨가 동양척식주식회사에 수년간 근무하고 일제시대에 큰돈을 모은 것을 두고 일각에서 제기된 ‘친일파’ 논란에 대해서도 답했다.

김영철씨는 “아버지가 상고를 나왔고, 성적순으로 회사에 들어갔다. 당시엔 일본인 회사가 아니면 갈 데가 없었다. 그곳(동양척식주식회사)이 조선인을 수탈하려고 만든 곳이란 것은 알고 있지만 아버지로선 생업을 위해 어쩔 수 없었다. 친일파처럼 적극적으로 협력한 일은 없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아버지는 시대 상황에 맞는 사업과 부동산으로 돈을 버셨다”고 전했다.

김지태씨의 이력을 두고 역사학자인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는 “김씨가 국방헌금을 내거나 노골적인 친일을 한 것은 아니다. 1962년 당시 박정희가 김지태씨의 재산 빼앗을 때도 친일파 얘기는 한 마디도 없었다”고 밝혔다. 한홍구 교수는 이어 “동양척식주식회사에 근무한 것이 자랑은 아니지만 말단 사원으로 근무한 것 자체만으로 친일파라 하긴 어렵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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