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호 부산일보 편집국장은 지난 19일 해고통보가 담긴 등기우편을 받고 ‘해직언론인’이 됐다. 1988년 11월 입사해 24년 간 부산일보 기자로 살아오며 예상했던 결말은 아니었다.

이정호 국장의 본격적인 ‘수난’은 지난해 11월 30일 징계로 시작됐다. 그는 당시 부산일보 지분 100%를 소유한 정수장학회가 사회에 환원돼야 한다는 내용의 기사를 게재했다. 편집국장이 편집권독립을 위해 대주주의 퇴진을 요구하고 나선 언론계 초유의 사건이었다.

지난 22일 서울 정동 정수장학회 앞에서 만난 이정호 국장은 담담한 모습이었다. 언론사회단체는 이정호 국장의 해고가 최필립 정수장학회 이사장의 지시이며, 이는 곧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의 뜻과 다름없다며 박 후보를 규탄하고 나섰다. 하지만 이날도 정수재단의 문은 굳게 닫혀있었다. 이 국장은 지난 1년 간 사측이 징계에 징계를 거듭하던 모습을 보며 “순탄하게 끝날 것이라곤 생각 안 했다”고 말했다.

이정호 국장은 “최필립 이사장이 (나로 인해) 격노했던 것 같다”고 전했다. 사측은 6개월 전 대기발령을 받은 이 국장이 올 여름 부산일보 현관 앞에서 농성을 진행할 때조차 강제집행을 통해 벌금을 물릴 정도였다. 이 국장은 해고를 두고 “각오하고 있었다. 부산일보 편집권을 쟁취하기 위한 과정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조용히 편집국장을 했다면 평탄한 삶이었을 텐데, 해고를 감수하면서 그가 이루려 했던 것은 무엇일까.

“나는 언론자유의 혜택을 많이 받고 자라온 세대다. 부산일보는 편집국장 직선제가 있다. 자본의 구속도 덜 하다. 그래서 평기자들은 박근혜씨가 편집권에 얼마나 영향을 끼치는지 잘 모른다. 하지만 국장이 되고서 (영향력을) 피부로 느꼈다. 나는 사원들이 추대해줬기 때문에 사원의 기대와 의지를 저버릴 수 없다. 우리는 언론인이다. 기자다워야 한다. 이제는 부산일보가 특정 세력에 휘둘리지 않고 언론으로서 완전한 자기결정권을 가질 시기다.”

이정호 국장은 정수장학회와 부산일보와의 ‘긴 인연’을 자신의 세대에서 마무리 짓기 위해 선배로서 거리에 나섰다. 그는 “부산일보 사원들이 주체적으로 현재를 결정할 수 있었다면 언론도 바로 서고 회사경영도 잘되며 이렇게 큰 문제는 없었을 것”이라 말한 뒤 “정수장학회는 박정희·박근혜 족벌 가계에 충성하는 사람만 선별해 편집권을 침해하고 경영은 도외시했다”고 지적했다. 2002년 이후 지난 10년간 부산일보의 매출은 절반으로 줄었다.

이 국장은 “특히 정수장학회가 대선 국면을 맞아 편집국 장악에 집착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경영진 입장에선 당연히 새누리당이나 친박에 유리하게 만들 필요가 있다. 그런 요구들이 제작진에게 많이 내려왔었다”고 말했다. 경영진 입장에선 정수장학회에 ‘결과물’을 보고하려면 편집국 ‘장악’밖에 없었다는 설명이다.

최근 박근혜 후보는 정수장학회를 두고 자신과는 무관하며, 김지태씨가 오히려 자신의 혐의를 덮으려고 재산을 헌납했다고 밝혔다. 이를 두고 이정호 국장은 “박근혜씨는 유신과 박정희시대에 머물러 있다. 강탈을 헌납이라고 한다. 이해할 수 없는 사고”라고 말했다.

그는 부산일보 편집권 확보를 위해 우선 현 정수장학회 이사진이 해체돼야 하고, 그 후 공익 법인을 세워 부산지역 상공회나 시민들이 참여하는 방식이나 국민주 방식, 사원주주 방식 등 지배구조를 선택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정호 국장은 “핵심은 부산일보를 독립 언론으로 만들면서도 공공성을 확보하는 것”이라며 “만약 정수장학회에서 대기업으로 소유주가 바뀌면 주체만 달라질 뿐 편집권침해는 계속 될 것”이라 우려했다.

그는 국장을 잃어버린 후배 기자들에게는 ‘결의’를 당부했다. “결국 부산일보는 부산일보 구성원이 만들어 나가야 한다. 싸움이 오래되며 피곤하고 불안할 수 있지만, 이 싸움은 이겨야 한다. 후배들은 오래도록 부산일보와 함께해야 한다. 자긍심을 갖고 스스로가 앞으로의 부산일보를 결정해야 할 시기다.” 그는 징계무효소송을 진행하는 가운데 농성을 비롯한 다방면의 투쟁을 병행할 계획이다. 24년차 이정호 부산일보 기자는 싸움을 멈추지 않을 태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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