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일이 넘도록 소말리아 해적에게 억류된 제미니호 선원의 가족들이 대국민 호소문을 발표하며 정부와 국제사회의 적극적인 대응을 호소했다. 가족들이 공동으로 언론에 나서 구출을 호소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가족들은 “우리는 죽지 못해 살고 있다. 천한 미물도 살기를 원하는데 삶의 절벽에 서 계신 이분들을 외면하지 말아 달라”며 눈물을 흘렸다.

제미니호 가족대책위는 8일 오전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2년 가까이 선원들의 신변을 알 수 없는 절박함과 협상에 진전이 없어 막막한 심정을 정부와 국민에게 전했다. 이날 가족들은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님 우리 아빠 살아 돌아오게 해주세요” “대통령님 살고 싶다고 절규하는 선원들의 목소리를 들어주세요”라는 팻말을 들었다. 피랍 선원 가족들은 기자회견 내내 침통한 표정으로 오열했다.


싱가포르선박 MT제미니호에 타고 있던 한국 선원 4명은 지난해 4월 30일 소말리아 해적으로부터 납치됐다. 가족들은 2011년 12월 말부터 2012년 7월까지 낮밤을 가리지 않고 해적들로부터 협박전화를 받았다. 3월 말 소말리아 해적들은 인질 한 명을 죽이겠다고 협박했으며, 가족들은 선원들의 안전을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지난 5월 초 싱가포르 선사는 한국을 방문해 해적들이 아덴만 사건 때 죽은 8명의 몸값과 생포되어 있는 5명의 해적에 대한 보상금을 계속 제기하는 한 협상의 진도를 나갈 수 없다고 했다.

가족들은 기자회견문에서 “언론보도는 협상을 어렵게 할 것이라는 (정부와 선사 쪽) 이야기를 계속 듣고 있었기 때문에 언론에 비협조적인 자세를 보였지만 500일 동안 아무런 변화도 진전도 없었다”며 언론에 나서게 된 배경을 밝혔다. 이들은 “협상에 악영향을 줄 것이 두려워 일가친척에게도 이 사실을 알리지 않았지만 이제는 가족들의 생존과 안전이 매우 위험한 상태에 빠져있음을 깨닫게 됐다”고 밝혔다.

피랍 선원 가족 대표인 강인용씨는 “가족들은 현재 피랍 선원들의 소재지를 모른다. 정부로부터 안전 상태를 정확하게 들은 것이 없다”고 말했다. 강씨는 “정부는 협상금이 올라간다며 언론보도를 하지 말라고 했다”고도 전했다. 가족들은 이날 “정부는 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 가족들에게 기대를 하지 말라고 했다”며 분노한 뒤 “(피랍선원들이) 제발 살아서 여생을 가족 곁에서 치유 받으시며 함께 살 수 있기를 바란다”며 오열했다. 가족들은 지난 7월 2~3번 해적들로부터 전화를 받은 뒤 더 이상 전화가 오지 않아 걱정하고 있다.


이날 피랍 선원의 가족들은 침통한 표정으로 정부와 국제사회의 대응을 호소했다. 피랍된 박 아무개 선장의 여동생 박 모씨는 “일찍 아버지를 여의고 마음고생을 많이 하며 집안의 장남으로 청춘을 배에서 보낸 분이었다”며 “소말리아 해적에게 전화만 와도 가슴이 내려앉았다. 지금까지 고통 속에서 인내해왔지만 마음이 아파 견딜 수 없어 이 자리에 앉았다”고 밝혔다. 박씨는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님, 이명박 대통령님, (선원들이) 살고싶다고 하지 않습니까. 제발 도와달라”며 흐느껴 울었다. 

기관장 김 아무개씨의 어머니는 시종일관 눈을 감은 채 “제 아들은 부모를 위해 바다를 헤메고 다녔다. 살기위해 노력해왔는데 이런 일이 닥쳐서 부모로써 할 말을 잃었다”며 말을 잇지 못했다. 김씨의 어머니는 “500일 동안 날마다 가슴을 조였다. 하루도 안 운 날이 없었다. 제발 살려 달라”고 간청했다. 


1등항해사 이 아무개씨의 처 김 모씨는 “제미니호를 끝으로 선원생활을 접으려고 마지막 항해를 떠났는데 끔찍한 일을 당했다. 아직 어린 손주는 할아버지 얼굴을 모른다”며 눈물을 훔쳤다. 가족 대책위는 “앞으로 가족들이 할 수 있는 모든 걸 다 하겠다”고 밝혔다. 가족들은 기자회견을 끝낸 뒤 외교통상부 건물 앞에서 다같이 “국민 여러분, 우리 가족을 살려주세요”라며 시위를 벌였다. 

가족 대표들은 김성환 외교통상부 장관과 30분간 면담을 가졌다. 가족 대표 강인용씨는 “김성환 장관은 가족들의 이야기를 들은 뒤 조만간 가시적인 안을 찾아 알려주겠다고 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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