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일 넘게 소말리아 해적에게 피랍 중인 제미니호 한국 선원 가족이 처음으로 언론에 모습을 드러내 장기피랍 사태에 대한 정부의 태도를 강하게 비판하고 나섰다. 정부의 당초 주장과 달리 피랍 가족들은 구체적인 피랍 정보를 받지 못했으며, 정부는 사건해결 의지도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시사주간지 시사인이 선원 가족 대표격인 강 아무개씨(36, 납치된 항해사 이씨의 사위)를 지난 2일 만났다. 강씨는 시사인의 3일자 온라인 기사에서 “구출을 위해 누구 하나 나서서 해결하지 않는 상황에 대해 가족들은 분노하고 있다”며 피랍 선원 4명의 빠른 석방을 호소했다. 

지금껏 언론인터뷰에 나서지 않았던 피랍 가족의 심경변화는 이 상태로는 구출이 어렵다는 판단때문이었다. 강씨는 시사인과 인터뷰에서 “가족이 (언론보도에) 나가는 것은 협상에 방해가 된다고 외교통상부와 선박회사와 인력송출회사가 끊임없이 이야기해 그걸 믿었다. 그렇게 지나온 게 500일이 넘었다”고 말한 뒤 “(최근) 정부는 정보가 없어서 군사작전을 할 수도 없고, 예산이 없어서 협상금을 보조하는 것도 불가능하다고 했다. 그래서 가족들이 적극적으로 나서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강씨는 피랍 가족과 긴밀하게 관련 정보를 공유하고 있다던 정부 주장이 거짓말이라고 했다. 그는 “피랍자 가족들은 올해 들어 외교통상부와 국토해양부 관계자를 3번 만났다. 최근 일간지를 보니 외교부가 출입 기자들에게 ‘가족들을 만나 상황을 충분히 공유 하고 있다’고 설명했는데 사실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번 추석 전에도 만남을 요청했지만 바쁘다는 이유로 추석 이후 만나자고 하더라. 평소에 가족들이 전화해도 외교부에선 ‘회의중이다’ ‘자리에 없다’는 말만 돌아온다. 네 분이 잘 계신지 알 길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 정부는 싱가포르 선박회사가 해적과의 협상을 적극적으로 하도록 지원한다고 했다. 올해 초에는 UN 반기문 총장을 통해 이 사안을 소말리아 현지에서 어필 할 수 있도록 부탁하겠다고도 했다. 그래서 기다렸는데 이후에 그러한 외교부의 노력이 실효성이 없었다라고 이야기 해주더라. 가족들이 앞으로의 대안을 묻자 외교부는 아무 말도 못했다”고 질타했다.

가족들은 이번 장기피랍이 아덴만 작전으로 인한 정치적 문제 때문이라고 보고 있었다. 강씨는 “싱가포르 선박회사는 해적들이 제시하는 협상금이 터무니없이 높은 이유가 아덴만의 여명 작전과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인질 석방에 드는 일반적인 협상금이 아니라, 당시 죽은 해적의 몸값과 선원-해적 맞교환 포기 대가가 많이 반영된 요구라고 보는 것이다”라고 지적한 뒤 “싱가포르 회사는 왜 자신들이 한국의 외교적·정치적 사안의 해결에 터무니없이 많은 돈을 써야하느냐고 생각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강씨는 이어 “장인을 비롯해 (4명) 모두 한국 사람이라서 재납치가 됐다는 특수성을 갖고 있다. 밖에 나가서 나쁜 짓을 하다가 억류되지 않았다. 그런데 구출을 위해 누구 하나 나서서 해결하지 않는 상황에 대해 가족들은 분노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언론도 제미니호 사태의 장기화를 적극적으로 다뤄주길 희망한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4월 30일 싱가포르 선박 MT제미니호가 소말리아 해적들에게 납치됐다. 선사와 해적들은 그해 11월 30일 협상을 통해 인질과 배를 돌려받았다. 하지만 한국 선원 4명만 풀려나지 않고 소말리아에 억류됐다. 이들은 최장기 피랍 기록을 세우며 지난 9월 10일 피랍 500일을 맞았다. 한국 정부는 싱가포르선사가 해적과의 협상 주체이며 정부는 해적과 협상에 나서지 않는다는 원칙에 따라 이 사안에 개입하지 않고 있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