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일 넘게 소말리아 해적에게 납치 중인 제미니호 한국 선원들이 지난해 11월 30일 선사와 해적과의 인질 맞교환 장소에 처음부터 없었다는 주장이 나왔다. 지금껏 외교통상부와 싱가포르선사는 맞교환 장소에 한국 선원들이 있었으나 부주의로 재 납치됐다는 입장을 밝혀왔기 때문에 파장이 예상된다. 싱가포르 선사 측에서 한국 선원을 배제한 채 협상에 임한 것이기 때문이다.

또 25명의 제미니호 선원들 중 한국 선원 4명은 납치된 지 며칠 안 돼 다른 외국 선원들과 격리돼 있었으며 현재까지 500일 넘게 협상이 지지부진한 이유는 소말리아 해적들이 아덴만 작전으로 한국에 수감된 소말리아 해적 5명과의 인질 맞교환을 지속적으로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주장도 나왔다. 외교부는 해적들이 인질맞교환을 주장하지 않고 있으며 해적들의 이 같은 주장은 몸값을 올리기 위한 것이라 반박해왔다.

여러 차례 소말리아 해적과의 협상에서 접촉 역할을 맡아온 아프리카 케냐 현지 교민 김종규씨는 28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제미니호 장기피랍 사태는 돈을 주고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라며 이 같이 밝혔다. 김종규씨는 케냐 몸바사 항에서 선박 대리점을 운영하고 있으며 2006년과 2007년 동원호와 마부노호가 피랍됐을 당시 해적과 협상에 참여하고 지난해엔 금미호 선원의 석방 협상에서 해적과의 접촉을 담당한 인물이다.

김종규씨는 지난해 4월 30일 제미니호 피랍 이후 11월 30일 이뤄진 싱가포르 선사와 소말리아 해적과의 협상 당시 인질교환 장소에 처음부터 한국 선원들은 없었다고 주장했다. KBS <추적60분> 방송분에 따르면 11월 29일 오전 11시 선사는 협상 직후 25명의 인질 전원의 모습을 확인했다. 선사는 헬기로 협상금을 떨어뜨렸고, 해적에게는 배를 떠날 24시간이 주어졌다. 하지만 어둠을 틈타 해적들은 30일 새벽 3시경 한국인 선원 4명을 데리고 도주했다.

<추적60분>에 따르면 외교통상부는 이 사건을 두고 “재피랍 당시 협상은 선사가 주도했으며 재피랍을 예상할 수 없었다”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추적60분>과 선사·정부 측 설명과 달리 재 납치가 아니라 처음부터 협상 장소에 선원들이 없었다면 논란은 커진다. 싱가포르 선사에서 한국선원을 배제한 채 돈을 주고 협상에 임한 셈이기 때문이다. 김씨는 외교통상부 역시 현재 이 사실을 알고 있다고 했다.

한국선원은 왜 협상에서 배제 된 것일까. 제미니호 장기피랍사태에 대해 사정이 밝은 관계자들은 “아덴만 작전에서 붙잡혀 한국에서 수감 중인 해적 5명과의 인질맞교환이 협상조건이기 때문에 선사가 한국인 협상을 포기하게 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입을 모았다. 이에 따르면 해적들이 비상식적인 몸값을 요구해 협상이 지연되고 있다는 외교부의 주장은 설득력을 잃게 된다. 협상지연의 실질적 요인이 돈이 아닌 인질 맞교환이기 때문이다.

김종규씨는 지난 10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도 이 같은 사실을 밝혔다. 김 씨는 “(지난해 12월 초) 자신을 중재인이라고 소개한 소말리아 사람이 몸바사의 한 카페로 불러 갔더니 돈은 필요 없고 한국인 선원과 해적 맞교환을 제안했다”며 “이를 한국정부에 전달해달라고 했다”고 밝혔다. 김씨는 “대사관을 통해 이 제안을 전달했지만 후에 해적과의 협상은 없다는 답변을 들었다”고 말했으며, “한국 선원들을 억류하고 있는 소말리아인은 해적이 아니라 우리 군에 생포된 해적들의 가족이나 친인척”이라고 밝혔다.

김 씨 주장이 사실이라면 현재 한국 선원들을 500일 넘게 납치 중인 이들은 돈이 아니라 가족의 생환을 바라고 있는 것이다. 김씨는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도 “지금 선원들을 붙잡고 있는 이들은 처음 선원을 붙잡았던 해적들이 아니다. 이들은 제미니호를 납치한 해적과 합의를 봐서 선원들을 인수해 간 것이다. 한국 선원들은 납치 뒤 며칠 안 돼 다른 선원들과 떨어졌다”고 주장했다. 그에 따르면 선원들은 현재 소말리아 내 위치한 하라데레(Harardere) 복쪽 지역 신도시에 있다.

김종규씨는 확신에 찬 목소리로 “해적들의 목적은 지금도 한국에 잡혀있는 해적 5명과의 맞교환이다”라고 말했다. 이 주장이 사실이라면 지난해 12월 초부터 지금까지 기자들에게 보도유예(엠바고)를 요구하고 있는 외교통상부의 속내를 추측해 볼 수 있다. 이 사건이 불거지면 이명박 정부 입장에선 해적과 선원을 맞교환해야 한다는 여론에 부딪힐 수 있는데, 이 경우 지난 아덴만 작전 이후 “해적과 협상하지 않는다”는 기조를 스스로 무너뜨려 망신을 사고 무리한 군사작전으로 이번 일이 일어났다는 비판에 놓인다.

역으로 아덴만 작전과 같은 군사작전을 다시 해서 선원들을 구출해내야 한다는 여론에 부딪힐 경우에는 소말리아 내륙으로 특수부대가 침투해 인명피해 없이 인질을 구출해야 하기 때문에 임기말 정권에 큰 부담으로 다가온다. 때문에 현 정부 관리들 입장에선 정부가 바뀔 때까지 사건을 덮어두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해결책이 되는 셈이다. 김씨는 “지난해 12월 초 만났던 소말리아인들이 두바이와 같은 제3국에서 한국 선원 4명과 소말리아 인질 5명을 맞교환하는 것이 해적들의 목표라고 밝혔다”고 전했다. 그는 이 사실 역시 곧바로 한국정부에 보고했다고 했다.

김종규씨는 “아덴만 작전은 국제적으로 부끄러운 일이다. 그 난리를 친 것은 정부의 정치기획이자 생색내기였다”고 비판한 뒤 “지금 한국처럼 해적을 잡아두는 경우는 없다. 제미니호 선원들이 500일 넘게 소말리아에 붙잡혀 있는 것은 한국에 잡혀 있는 이 다섯 명 때문”이라고 재차 강조했다. 그는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였다면 쉽게 끝났을 테지만 이 문제는 돈 주고 해결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앞으로도 협상이 많이 힘들 것”이라 말했다. 그는 “희망적인 것은 소말리아에 최근 미국이 지지하는 민선정부가 들어섰다는 것”이라며 “이 정부가 자리가 잡히면 한국 정부가 도움을 부탁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내다봤다.

현재 케냐 현지에 거주하고 있으며 지난해 소말리아 해적에게 납치됐다 풀려난 금미호 선장 김대근씨도 28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제미니호 피랍사건은 싱가포르 선사에서 절대 해결할 수 없다. 정치적 문제가 걸려있기 때문에 반드시 한국 정부가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외교통상부는 전과 같은 입장을 반복하며 관련 사실을 부인했다. 안영직 외교통상부 재외동포영사국장은 해적들이 여전히 인질 맞교환을 요구하고 있는 것 아니냐고 묻자 “사실과 다르다. 요즘 그런 얘기는 없다”고 말했다. 안영직 국장은 이어 “세계에 해적들이 잡혀 있는 곳이 굉장히 많다”며 한국의 해적 수감이 특수한 경우가 아님을 강조했다. 한국 정부는 앞으로도 제미니호 장기피랍사태 협상주체는 싱가포르 선사라는 입장을 유지하며 협상의 전면에 나서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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