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근행 <뉴스타파> PD는 ‘청년’이다. 취재현장을 누비는 그의 심장이 뜨거워서다. 지난 20일 밤 서울 프레스센터 <뉴스타파> 편집실에서 만난 그는 밤샘 편집을 앞두고 쪽잠을 청한 뒤였다. 2년 전 이근행 PD는 MBC노조위원장이자 20년차 시사교양PD로 공영방송 수호를 위해 김재철 사장 퇴진을 위한 39일 총파업을 주도하다 해고됐다. 아무도 그에게 힘든 길을 가라 떠밀지 않았다. 그의 선택이었다. 그는 아직까지 MBC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이명박 정부 들어 이근행 PD처럼 돌아가야 할 현장으로 돌아가지 못한 언론인이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프레스 프렌들리’라는 이름으로 자행된 정부의 언론탄압에 따른 파업이 곳곳에서 일어난 결과다. 전국언론노조에 따르면 이명박 정부 들어 412명의 언론인이 편파보도와 ‘낙하산 사장’에 반대하는 행동에 나섰다가 징계를 받았다. 특히 올해 상반기에는 대한민국사 최초로 공영언론사의 연쇄파업이 일어나며 징계자 수가 늘었다.

MBC, KBS, YTN, 연합뉴스 등 공영언론사는 정부가 임명한 ‘낙하산’ 사장에 의해 각종 보도통제와 제작 자율성 침해를 겪었다. 파업은 더 이상 자기검열 속에 불공정보도의 공범자가 되기를 거부하고자 했던 언론인의 노력이었다. 하지만 결과는 참담했다. 언론 4사 노조 모두 일차적 목표였던 김재철(MBC), 김인규(KBS), 배석규(YTN), 박정찬(연합뉴스)사장 퇴진에 실패했다. 이로 인해 업무복귀 이후에도 기자・PD의 상당수는 현장에 돌아가지 못했다.

지금껏 경험하지 못했던 수모…살아남은 조합원은 <무한도전> 김태호 PD뿐

지난 7월 17일 최장기파업(170일)을 끝내고 업무에 복귀한 MBC노조 조합원들은 지금껏 경험해보지 못한 ‘수모’에 시달리고 있다. 김재철 사장은 9월 말 현재까지 조합원 8명을 해고하고 219명을 징계했다. 하지만 징계가 끝이 아니었다. 지난 8월 18일 정직과 대기발령을 받은 기자․아나운서․시사교양PD 등 조합원 20명에겐 3개월 간 교육 명령이 내려졌다. 커리큘럼은 ‘브런치 만들기’, ‘요가 배우기’ 등 직무 연관성이 반영되지 않은 급조된 것들이었다.

이정식 한국PD연합회장, 임대근 전 방송기자연합회장을 비롯해 김재철 사장 퇴진에 참가했던 김완태, 박경추 아나운서와 왕종명, 김수진 기자 등이 교육대상자가 돼 여의도 본사와 멀리 떨어진 잠실 아카데미에서 샌드위치 만드는 법을 배웠다. 얼마 뒤 후배 조합원들은 MBC노조 사무실에서 선배들이 만든 샌드위치를 먹으며 우습지만 웃을 수 없는 순간을 경험해야 했다.

9월 들어선 교육대상자가 추가됐다. 이채훈 PD, <아프리카의 눈물> 한학수 PD를 비롯해 김경화, 최현정 아나운서 등이 ‘브런치 교육’에 합류했다. 지난 17일에는 정직 2개월이 풀린 조합원 17명 중 12명이 교육발령에 처해졌다. 현재 잠실 아카데미에는 모두 60명의 기자, PD, 아나운서, 엔지니어, 경영부분 조합원들이 보복성 교육을 받고 있다. 한학수 PD는 이곳을 일컬어 “김재철의 삼청교육대”라고 평했다.

현장으로 돌아가지 못한 이들은 또 있다. 정년퇴임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최상일 민요전문 라디오PD는 업무 복귀 직후 용인드라미아개발단으로 발령받아 사극 세트장을 관리하게 됐다. 출신인 조능희 PD는 사회공헌실로, 송일준 PD와 오동운 PD는 각각 미래전략실과 신사옥건설국으로 전보조치 됐다. 권력비판적인 시사프로를 제작했던 PD들이 업무와 상관없는 비제작부서로 간 것을 두고 징계성 인사라는 비판이 나왔다.

무엇보다 경영진의 탄압은 시사교양 PD들에게 집중됐다. 56여명의 시사교양 PD들 중 해고자가 3명, 정직 6명, 교육대상자가 10명이다. 비제작부서로 쫓겨난 PD들까지 합치면 시사교양PD들은 공중분해 상태다. 시사교양PD들은 이미 파업 기간 중 전체 인원의 30%가 대기발령을 받았고, 시사교양국이 시사제작국과 교양제작국으로 해체되며 갈 곳을 잃었다. 그 결과 은 지난 1월 중순 이후 현재까지 8개월 째 결방 중이다.

이밖에도 손정은, 문지애, 오상진 아나운서 등 파업에 참여했던 아나운서 대부분은 ‘괘씸죄’가 적용돼 현재까지 맡은 프로그램이 없는 상황이다. MBC 내부에서 현장으로 돌아간 조합원은 <무한도전>의 김태호 PD밖에 없다는 씁쓸한 농담이 나오는 이유다.

각종 징계와 보복성 인사로 흩어진 현재 파업조합원들의 유일한 접점은 MBC노조 사무실이다. 3개월 교육대상자가 된 <시사매거진 2580>의 임명현 기자는 얼마 전 파업기간 중 해고당한 박성호 기자회장과의 만남을 다음과 같이 전했다. “노조 사무실에 잠시 들렸더니 박성호 선배가 반겼다. ‘오늘은 교육 끝났어? 어쩐 일이야?’ … 나는 어쩐지 답을 할 수가 없었다. 자꾸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취재현장을 못 뛰고 있어 얼마나 목이 마르냐고. 가슴으로 눈물을 삼켰다.”

해고된 선배 바라보며 “가슴으로 눈물을 삼킨다”

가장 격렬하고 길었던 파업이었던 만큼 MBC의 상처는 다른 언론사보다 크고 깊다. 하지만 파업 기간 중 해고당한 정영하 MBC노조위원장, 강지웅 사무처장, 이용마 홍보국장은 여전히 노조 활동을 이어가며 김재철 사장 퇴진투쟁에 앞장서고 있다. 함께 해고당한 최승호 PD와 박성제 기자, 박성호 기자회장은 후배들을 격려하며 싸움을 이어가는 버팀목이 되고 있다.

MBC처럼 현장으로 돌아가지 못한 언론인들은 또 있다. 95일간 총파업에 나선 뒤 지난 6월 8일 현장에 복귀한 KBS새노조의 경우 사측이 133명의 조합원을 징계했다. 23년 만에 파업에 돌입했다가 파업 103일째였던 6월 25일 업무 복귀를 선언한 연합뉴스 노조의 경우도 경영진이 9명의 조합원을 징계했다. 복귀 이후 현장에 돌아갔지만 파업 전과 달라지지 않은 환경에 놓인 언론인들에겐 복귀가 새로운 싸움의 시작인 셈이다.

YTN노조는 2008년 공정방송투쟁이후 지금까지 6명의 기자가 해고되고 45명의 조합원이 징계를 받았다. 특히 2008년 10월 6일 해고된 기자 6명(노종면 현덕수 우장균 조승호 정유신 권석재)은 어느덧 해직 1400일을 넘겼다. 그 사이 노종면 기자는 언론노조 민주언론실천위원회 위원장을 맡았고, 트위터에서 ‘용가리통뼈뉴스’를 진행했으며, <뉴스타파> 앵커를 거쳐 지금은 YTN불법사찰진상조사특위를 맡고 있다. 현 정부 언론탄압의 상징인 그의 이력은 한국 언론사에 많은 굴곡을 함축하고 있다.

현장에 돌아가지 못한 동료의 고통은 현장에 있는 동료에게 고스란히 전해진다. 경영진의 탄압은 더욱 강도 높아지고, 동지는 간 데 없고 깃발만 나부끼는 현실은 마냥 암울해 보인다. 그러나 언론노동자들은 이 싸움을 쉽게 포기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MBC노조는 방송문화진흥회의 김재철 사장 해임안 통과 여부를 지켜본 뒤 10월 중 재파업을 불사하는 싸움에 나설 예정이다. 전국언론노조 역시 추석 이후 하반기 대투쟁을 전개할 계획이다.

이근행 PD는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스스로 다짐하듯 다음의 문구를 남겼다. “그래도, 계속 가라. 시선은 멀리, 호흡은 깊게.” 2012년 언론인들의 투쟁은 현재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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