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의미심장한 두 편의 영화가 관객 앞에 놓인다. 고(故) 육영수 여사의 일대기를 그린 <퍼스트레이디-그녀에게>와 1980년 광주민중항쟁 당시 학살의 책임자를 저격하는 <26년>이다. <그녀에게>는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의 어머니를, <26년>은 군사독재세력의 만행을 다루며 정치적 메시지를 던질 것으로 보여 투표장에 나설 유권자들에게 적잖은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그녀에게>는 1974년 광복절 행사 도중 49세의 나이로 암살된 육영수 여사의 생을 다룬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영화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퍼스트레이디로서 극적인 삶을 살다간 그녀의 일생에 초점을 맞춘다. 극 중 박근혜는 육영수 여사 사망 이후 가족들이 우는 마지막 장면에 등장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중장년층에게 ‘국민의 어머니’로 인식돼있는 육 여사의 이미지는 영화를 통해 박 후보에게 투영될 가능성이 높다.

강풀의 만화가 원작인〈26년>은 광주학살의 피해자들이 직접 가해자를 사살한다는 내용이다. <26년> 제작을 맡은 ‘청어람’의 최용배 대표는 “영화를 통해 80년 광주의 가해자가 여전히 건재하다는 현실을 보여주며 고통 받은 당사자들이 나서지 않으면 세상은 달라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공감하게 만들 것”이라 밝혔다.

이 영화는 사실 우여곡절이 많았다. 2008년 제작에 나섰다가 석연찮은 이유로 투자자들이 이탈해 제작을 중단한 경험이 있다. 그 뒤 몇 차례 제작이 무산되다 4년 뒤인 올해 3월에야 비로소 ‘크라우드 펀딩’(SNS를 활용해 프로젝트 후원을 받는 플랫폼)을 이용, 소셜 펀딩업체 ‘굿 펀딩’으로 시민들의 소액 후원을 받아 제작이 가능했다.

이질적인 역사관을 배경으로 한 두 영화가 대선 직전인 11월 말 사실상 동시 개봉하는 점은 상징적이다. 이택광 경희대 교수(영미문학, 문화평론가)는 “<그녀에게>는 육영수를 찬양하고 군사독재시절의 복고적 향수를 불러일으킬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한 뒤 “한국사회가 합의하고 있는 민주주의 가치와 과거 박정희 체제의 가치는 공존할 수 없다는 점이 두 영화를 통해 드러날 것”이라 짚었다.

현재 한국사회 미디어 지형은 과거 국가권력의 향수를 자극하는 쪽과 역사의 퇴보를 막으려는 쪽으로 나뉘는 모양새다. KBS는 지난 달 고(故) 박태준 전 포스코 명예회장의 일대기를 담은 드라마 <강철왕>을 오는 12월 방송하려 했던 사실이 알려지며 논란이 일었다. <강철왕>은 1970년대 개발독재시절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며 박정희 전 대통령이 자연스럽게 부각될 수밖에 없는 서사를 갖고 있다. 김인규 KBS사장은 “<강철왕>은 올해 안에 제작이 불가능하다”고 해명할 수밖에 없었다.

KBS는 지난해엔 독재자 이승만 전 대통령과 친일파 백선엽 장군을 미화하는 다큐멘터리 제작에 나섰다가 사회적인 지탄을 받기도 했다. 공영방송의 이 같은 모습은 용산참사의 이면과 진실을 언론의 보도방식으로 다루며 큰 호응을 얻었던 영화 <두 개의 문>과 대조적이다.

올해 대선에서 혹 역사의 퇴행을 걱정하는 이가 있다면 10월 초 개봉하는 <남영동1985>를 지인에게 추천하는 게 좋다. 영화는 고(故) 김근태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이 민주화운동청년연합 의장이던 1985년, 남영동 치안본부 대공분실에서 22일 동안 고문당한 내용을 담았다. 영화는 우리에게 잊고 있던 역사적 자각과 함께 행동을 요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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