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대 한반도 이남에서 손꼽히는 부자였던 故 김지태씨 유족들은 50년 째 원통하다. 김씨의 아내 송혜영 여사와 다섯째 아들 김영철씨는 지난 21일 미디어오늘과 만난 자리에서 “5․16 쿠데타로 가족의 모든 삶이 무너졌다”고 말했다. 김지태씨는 혁명자금을 대지 않았다는 ‘괘씸죄’로 1962년 박정희 군사정부로부터 MBC와 부산일보 주식 모두와 토지 10만평을 ‘헌납’이란 이름으로 빼앗겼다. 김씨는 화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가족에겐 한(恨)이 쌓였다.

“개인적으로 정수장학회 재산을 갖겠다는 것이 아니다. 재단에 1원도 안 낸 사람들이 장학회를 좌지우지할 수 없는 것 아닌가. 다 내놔야 한다. 박근혜는 전부 다 내놓고 물러나야 한다. 딸이 아버지의 죄에 대해 용서를 빌어야 아버지도 살고 자신도 산다.” 여든을 넘긴 송혜영 여사의 어조는 또렷했다. 송 여사는 50년 전 남편 대신 인질로 끌려가 한 달 반 동안 형무소에 있었다. 민간인이었지만 군법회의에 매일 끌려갔다고 했다.

“혁명정부는 내가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구경을 갔을 때 구입한 작은 카메라와 다이아가 밀수품이라고 했다. 장신구 하나씩은 세관에서 통과되던 때였다. 재판에서 세관원이 증인을 섰다 해고당했다. (일본에 있던) 남편이 오니까 풀려났다. 그 후 중앙정보부에서 밀수품이라던 카메라와 다이아를 주더라.” 송 여사는 “박 대통령이 운수가 좋아 혁명에 성공하자 김 회장(남편)이 외국에 외화를 도피했다는 명목으로 재산을 뺏어갔다”고 했다.

아들 김영철씨는 “상식적으로 그 많은 재산을 기부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나”라고 되물은 뒤 “박정희는 아버지에게 빼앗은 땅 10만평을 개인에게 팔아 이익을 챙겼고 우린 공장과 재산을 다 빼앗기고 전세살이를 했다”며 지난 세월을 회상했다. “가족들은 박정희일가가 남의 재산을 빼앗아 만든 장학회로 호위호식하며 굉장히 좋은 일을 하는 척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피가 거꾸로 솟았지만 어디 얘기도 못하며 50년을 살아왔다.” 그의 목소리가 떨렸다. 

김지태씨가 빼앗긴 재산 중 MBC와 부산일보 주식은 오늘날 정수장학회(과거 5․16 장학회)가 갖고 있다. 지난 2월 서울중앙지법 민사17부는 김씨의 유족이 정수장학회를 상대로 낸 주식반환청구소송에서 김씨가 강압으로 재산을 증여한 사실을 인정했으나 시효가 지났다며 기각했다. 김영철씨는 “인혁당 사건에서 국가의 불법행위는 시효를 주장할 수 없다는 전향적 판결이 나왔기 때문에 정수장학회 문제 역시 (전향적 판결을) 기대하고 있다”고 밝혔다.

유족들은 정수장학회의 설립목적이 “빼앗은 장물을 근사하게 덮는 것이었다”고 단언했다. 김영철씨는 “박 대통령이 개인 재산을 강탈해놓고 보니 모양이 안 좋아 5․16 장학회로 이름을 붙여 재산을 넣었다”고 주장했다. 1958년 부산일보의 일부 부서로 설립된 부일장학회는 김지태씨가 여러 계열사의 출연금을 통해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주는 작은 조직이었으나 박정희가 명목상 장학회 헌납으로 재산 강탈을 꾸미려 부일장학회를 부각시켰다는 설명이다.

이후 장학회는 박정희일가의 친인척과 측근들의 취직자리로 쓰였다. 박정희의 친구 최석채씨와 박근혜의 이모부 조태호씨가 이사장을 거쳤다. 박정희의 비서관 출신인 최필립 현 이사장도 비슷한 경우다. 송혜영 여사는 “장학회가 박근혜의 사랑방이 됐다”며 개탄했다.

김영철씨는 최근 박 후보의 ‘과거사 정리’ 발언을 언급하며 “최필립 이사장을 사퇴시키는 식으로 정수장학회 강탈을 무마하려한다면 우리 유족들을 두 번 죽이는 일”이라 말한 뒤 “박근혜 측 이사진이 모두 물러나고 처음 장학회 재산을 출연했던 아버지의 유족들과 사회적 명망가들이 힘을 합쳐 진정한 장학회로 거듭나야 한다”고 밝혔다.

송혜영씨의 며느리인 이명선씨는 “박근혜씨가 모든 사람들을 아우른다고 하던데 우리처럼 오랜 기간 동안 한이 맺힌 사람들에게는 일절 연락 한 번 없었다. 오랫동안 호사를 누렸으면 얘기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니냐”며 분통을 터뜨렸다. 송혜영 여사는 박근혜 후보가 대통령이 되면 문제 해결이 영영 어려워지는 것 아니냐고 묻자 망설임 없이 답했다. “대통령 되면 국민들 것 강탈해서 살라고 할 텐데, 그런 사람이 어떻게 대통령이 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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