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개월 견디기도 어려웠는데 16개월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겁니다.” 2년 전 124일간 소말리아 해적에게 납치됐던 김대근 금미호 선장의 마음은 무거웠다. 500일 넘게 피랍 중인 제미니호 선원들에 대한 걱정 때문이다. 김대근 선장은 지난 12일 <추적60분>에 출연해 떨리는 목소리로 수년 전 악몽을 회상했다. “총 네 대가 항상 스탠바이 하고 있어요. 화장실 가도 따라가고 밥 먹으러 가도 따라가고…삶도 아니고 죽음도 아니고….”

금미305호 선원들은 2010년 10월 9일 소말리아 해적에게 납치됐다 124일 만인 2011년 2월 9일 풀려났다. 당시 정부는 삼호 주얼리호를 구출한 아덴만 여명작전의 영향으로 선원들이 대가없이 풀려났다고 밝혔으나 협상에 참여했던 관계자는 석방금을 줬다고 밝혀 논란이 됐다. 김대근 선장은 현재 아프리카 소말리아에 인접한 케냐에 거주하고 있다. 당분간 한국에는 갈 생각이 없다고 했다. 미디어오늘은 지난 14일 김대근 선장과 전화인터뷰를 나눴다.

김대근씨는 인터뷰 내내 협상에 미온적인 한국 정부를 비판하며 빠른 구출을 당부했다. 그는 “지옥에서 살아왔기 때문에 숨 쉬는 것만으로 행복하고 못 먹어도 행복하지만 그 때의 경험은 트라우마(정신적 내상)로 남았다”고 했다. 구체적 트라우마에 대해선 말을 아꼈다. 그가 ‘남의 일’인 제미니호 선원 구출에 누구보다 적극적 태도를 보인 것은 본인의 납치 경험에 미뤄 507일(17일 현재)째 납치된 제미니호 선원들의 고통을 이해하고 있어서다.

그는 한국에 “해적과 협상하면 해적들에게 굴복하는 것”이라는 주장이 있다고 전하자 격분하며 말했다. “협상은 굴복이 아니다. 국민의 생명을 지키는 것이다. 선원들이 어둠속을 헤매고 있는데 협상을 빨리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한 것 아닌가. 살아 있는 생명을 나 몰라라 하면 안 된다.” 그는 해적들이 부르는 협상금이 높아 협상이 지연되고 있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세계화 시대에 살며 테러가 빈번히 일어나는데 관련 예산이 없다는 게 말이 되나. 해외에선 정부 예산을 끌어다 선원들을 구출한다. 우리(금미호)도 구출 당시 예산이 없다고 했다. 이게 G20 국가인가”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해적에게 납치됐다 구출된 경험을 통해 해적들의 성향과 ‘납치 비즈니스’에 대해 누구보다 정확히 알고 있는 김대근 선장은 이번 장기 피랍의 원인이 아덴만 작전에 있다고 확신했다. “해적들은 돈을 받는 게 목적이지 다른 정치적 이슈는 없다. 하지만 500일이 넘도록 협상이 안 되고 있다. 해적이 한국정부에 소말리아 해적 동료들을 풀어달라고 요구하는 것 말고는 협상이 오래 이어질 이유가 없다.”

김씨는 제미니호 선원들의 ‘재 납치’도 아덴만 작전에 의한 결과라고 지적했다. 제미니호 선원들은 지난해 4월 30일 납치됐다가 그 해 11월 30일 모두 풀려났지만 한국 선원 4명만 다시 납치돼 소말리아 내륙으로 끌려갔다. 김씨는 “아덴만 작전 당시 붙잡힌 소말리아 해적들이 지금 한국 교도소에서 수감 생활하고 있다. 제미니호 선원들은 한국에 억류된 해적들의 교환을 위해 한국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재 납치 된 게 아닌가 싶다”고 밝혔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소말리아 해적들은 재 납치 당시 실제 인질 맞교환을 요구한 것으로 확인됐으나 최근에는 돈만 요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해적들이 요구하는 협상금액에는 아덴만 작전 당시 사망한 해적 8명과 수감 중인 해적 5명에 대한 몸값이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인질 맞교환이 직접적인 협상 조건은 아니더라도 아덴만 작전의 영향으로 협상이 장기화되고 있는 것은 정황상 타당하다는 지적이다.

김씨는 “다른 나라 사람들은 한국 선원 구출에 관심이 없다. 싱가포르 선박회사는 이미 돈 다 지급하고 배까지 가져간 상황”이라고 말한 뒤 “국민의 생명을 지키는 게 정부의 존재 이유다. 정부가 국민을 지켜내지 않으면 군대 가라고 세금 내라고 할 수 없다”며 적극적 대응을 촉구했다. 김씨는 이어 “제미니호 선원들은 아덴만 작전의 피해자다. 한국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붙잡힌 죄 없는 사람들을 구출해야 한다. 언론과 정부에서 결코 쉬쉬할 사안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제미니호 피랍 선원 가족들은 언론보도에 반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어떻게 봐야 할까. 김씨는 “가족들 입장에선 정부가 (피랍 사실을) 떠들면 협상에 불리하다고 말하는데 어떻게 하겠나”라며 사실상 가족들에게 선택권이 없었음을 지적한 뒤 “정부가 시키는 대로 조용히 있으면 해결이 안 된다”며 가족들에게 적극 대응을 주문했다. 김씨는 이어 “보이지 않는 힘을 갖고 있는 언론은 정부의 잘못을 지적해야 한다. 가족들이 바보같이 조용히 있으면 억울함을 호소하게끔 언론이 도와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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