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쌍한 저희들을 잊지 말아주시고, 돌아갈 수 있게끔 도와주시기 바랍니다.”(소말리아 해적에게 500일 넘게 잡혀있는 제미니호 선원)

지난 12일 밤 KBS 2TV <추적60분>을 통해 소말리아 해적에게 피랍된 지 500일을 넘긴 제미니호 한국 선원 4명의 소식이 전국적으로 전해졌다. <추적60분> 제작진은 아프리카 케냐 현지 취재를 통해 한국 선원들을 납치했다고 주장하는 해적들과 만나 선원의 안전과 해적의 요구사항 등을 확인할 수 있었다.

제작진은 이날 방송에서 유례없는 장기피랍의 원인이 지난해 소말리아 해적 8명을 사살했던 정부의 ‘아덴만 여명’ 작전에서 비롯되었다고 지적한 뒤 선원들이 하루빨리 고국으로 돌아올 수 있게 모두가 지혜를 모아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싱가포르 선박 제미니호는 지난해 4월 30일 아프리카 해역에서 소말리아 해적들에 의해 납치됐다. 선사와 해적간의 협상결과 선원들은 그 해 11월 30일 풀려났지만 선장 박 모씨를 포함한 4명의 한국 선원들만 재납치 돼 소말리아 내륙으로 끌려갔다. 이후 외교통상부의 보도유예 요청에 따라 한국 언론들은 해당 소식을 약 9개월 간 보도하지 않았다.

그러던 중 지난 4월 1일 가 납치된 선원들의 사진을 공개했다. 스티브 허먼 서울지국장은 <추적60분> 제작진과 인터뷰에서 납치된 제미니호 선원들이 등장하는 동영상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확인시켜 준 뒤 “동영상 입수 후 외교통상부에 동영상에 대한 의견을 구하고자 했는데 그들은 이 동영상의 존재를 모르고 있었다. 외교통상부는 이 동영상에 대해 매우 놀라고 동요했다”고 주장했다.

제작진은 8월 말 해당 동영상을 확보했다. 지난 3월 15일 촬영된 것으로 확인 된 영상에선 초췌한 선원들의 모습이 드러났다. 한국 선원들은 모두 자신들을 잊지 말아 달라고 호소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정부에서 힘을 써주셔야 (한국에) 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여러 가지 어려운 일이 있을 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불쌍한 저희들 잊지 말아주시고, 갈수 있게끔 도와주시기 바랍니다.”(피랍된 제미니호 선원)

아프리카에서 만난 소말리아 해적들, 그들이 말한 ‘특별한’ 납치 이유  

<추적60분> 제작진은 선원들의 안전과 해적들의 요구사항 등을 취재하기 위해 아프리카 케냐로 떠났다. 현지 이스트레이(소말리아 정착촌) 지역에서 만난 소말리아 언론인 야신은 제작진에게 “(선원 4명 중) 몇몇은 열대병으로 고생하고 있고 한명은 좌절감으로 심리적 문제가 있다고 들었다”고 밝혔다. 소말리아 분쟁 전문 매체 <소말리아리포트>에 기사를 쓰고 있는 앤드류 므완구라(해적 전문가)는 “한국인들이 더러운 물이나 상태가 안 좋은 음식을 먹고 있다. 지난 4월에는 한국인 선원을 차지하기 위해 해적들끼리 총격전이 벌어졌다”고 전했다.

제작진은 여러 경로를 통해 한국 선원을 납치했다고 주장하는 해적들을 케냐의 수도 나이로비의 외곽 거주지에서 만날 수 있었다. 강윤기 PD는 이 자리에서 “해적들이 저를 중재자로 삼아 정부나 가족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겠으나 우리는 언론인으로 왔으니 협상 과정에 개입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이날 제작진이 만난 해적 둘 중 한 명은 제미니호 납치에 가담한 인물이며 또 다른 한 명은 현재 선원을 억류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들은 “한국 인질들은 2명씩 흩어져 있고, 대체로 건강하다”고 전했다.

그렇다면 왜 한국인 4명만 다시 납치했을까. 소말리아 해적은 <추적60분> 제작진과 인터뷰에서 “지난해 그 사건(아덴만 작전)이 일어난 후 한국인들을 찾고 있었다. 친구와 친척들이 한국 군인들의 공격에 의해 죽었다. 그래서 우리가 흥분해 있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 해적은 “한국의 특공대가 동료를 죽였으니 우리에게 보상을 해야 한다. 한국 정부의 대응이 없다면 한국인 인질들에게 어떤 일이 벌어지더라도 우릴 비난해서는 안 된다”라고 주장했다. 해적과의 협상권은 싱가포르 선박회사에게 있지만, 해적들은 지금껏 한국정부의 대응을 요구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명박 정부는 지난해 1월 소말리아 해적에게 납치당한 삼호 주얼리호 선원들을 구출하기 위해 청해부대를 투입, 일명 ‘아덴만 여명’ 작전을 실시했다. 이 작전으로 해적 8명이 사살됐고 생포된 5명은 한국으로 이송돼 실형을 선고받았다. 당시 정부는 아덴만 작전 직후 관련 영상물을 외신에 제공하는 등 대대적 홍보에 나섰다. 그러나 같은 시기 로이터통신과 ABC등 외신들은 아덴만 작전으로 해적들의 보복 움직임이 있다고 보도했다. 더욱이 한국처럼 군사작전으로 해적을 소탕한 인도의 경우 인도선원이 다른 국적의 선원보다 해적으로부터 위험한 것으로 알려져 우려는 높았다.

제미니호 선원 장기피랍, 아덴만 작전에 대한 해적들의 보복이었나 

해적들의 주장과 지금까지의 정황에 비춰볼 때 최장기 피랍사태를 기록 중인 제미니호 사건은 아덴만 작전에 대한 해적들의 보복이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김종대 군사전문가는 제작진과 인터뷰에서 “아덴만 작전 이후 후속 대책은 단절되고 군사작전 성공이 과대하게 포장되다 보니 여타 요인은 점점 밀려나 해적의 위협이 잔존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 정부 인식이 부족했다”고 비판했다. 이태호 참여연대 사무처장은 “군사적 대응에선 무장 갈등 부메랑을 계산하지 않았고, 지금은 (아예) 협상을 안 하고 있다”며 일관성 없는 정부 입장을 비판했다.

제미니호 협상의 직접적인 책임은 싱가포르 선사에 있다. 하지만 한국정부가 불개입 원칙만을 내세워서는 해결이 어렵다는 지적이다. 캄순후앗 싱가포르 선원기구 사무총장은 “이번 경우는 한국 정부가 어느 정도 협상에 참여해야 한다”고 밝혔고, 인도네시아 선원 노조위원장 하나피씨 역시 “(아덴만) 군사작전 때문에 (해적들이) 한국 선원을 풀어주지 않았다”며 한국정부의 책임을 지적했다. 124일간 소말리아 해적에게 피랍됐다 풀려난 김대근 금미호 선장은 “4개월 견디기도 어려웠는데 16개월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라며 정부의 조속한 대응을 촉구했다.

하지만 외교통상부는 이 같은 주장에 대해 “아덴만 작전을 근거로 내세우는 것은 협상금을 올리기 위한 해적들의 명분”이라고 반박했다. 외교통상부는 “싱가포르 선사는 협상에 최선을 다하고 있는데 해적들이 과도한 협상금을 요구해 협상에 어려움이 있다”고 밝혔다. 싱가포르 선사 측은 제작진의 인터뷰 요청에 “이 이슈는 아직 진행 중이고 도울 수 없다”고 밝혔다. 정부는 ‘해적과 협상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고수하며 문제해결의 어려움을 토로하고, 싱가포르 선사는 협상내용이 비공개라며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는 것이다.

이를 두고 <추적 60분> 제작진은 “해적과의 협상 진행상황이 거의 알려진 게 없다. (피랍사태가) 장기화 된 만큼 과연 협상이 잘 되고 있는지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강윤기 PD는 이날 방송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선원들이 하루빨리 돌아오게끔 싱가포르 선사와 정부, 국민들이 함께 지혜를 모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추적60분> 진행자인 강희중 CP는 “방송을 내보내기 전 고민이 많았다. 해적과의 협상은 쉽지 않은 일이다. 원칙도 중요하다. 하지만 500일은 너무나 긴 시간이었다”고 말한 뒤 “<추적60분>은 선원들이 무사히 돌아올 때까지 이 문제를 지켜볼 것”이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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