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진 언론노조 부산일보지부장에게 지난 1년은 정수장학회와 맞서 싸운 날들의 연속이었다. 지난해 11월 17일 부산일보 노조는 정수장학회와 부산일보와의 관계를 새롭게 재정립하자며 사장후보추천제를 대외적으로 들고 나왔고, 다음날인 18일자 부산일보 1면 기사에 해당 내용이 실리며 본격적인 편집권 독립투쟁이 시작됐다. 그해 11월 30일 이호진 위원장은 해고 통보를 받았지만 5개월 뒤 노사합의로 해고는 면했다. 부산일보노조는 12일부터 서울 정동 경향신문사에 위치한 정수장학회 앞에서 매일 릴레이 시위에 나선다. 이호진 위원장이 첫 주자다.

애초 11일부터 진행하려고 했지만 프레스센터에서 농성중인 이정호 편집국장의 옆자리를 지키기 위해 하루 연기했다. 이호진 위원장은 “장준하 의문사나 5.16 쿠데타와 같은 이슈는 과거의 문제이지만 정수장학회는 현재의 문제”라며 “정수장학회는 밝혀야 할 입장이 아니라 자신이 조치해야 할 사안”이라고 강조했다. 이호진 위원장은 정수장학회 사회환원에 대한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의 결단을 요구하며 무기한 투쟁에 나섰다. 다음은 11일 오후 서울 프레스센터 농성장에서 만난 이호진 노조위원장과의 일문일답.

-부산일보와 부산일보 지분을 100% 소유한 정수장학회와의 관계는 50년간 이어졌다. 박근혜 후보가 여당 대선 후보로 나온 이 시점에서 부산일보 편집권 문제가 불거진 이유는.
“정략적으로 우리의 요구를 관철시키기 위해 편집권 문제를 들고 나온 것은 아니다. 사장 선임 제도를 민주적으로 바꾸자는 요구는 2006년부터 있었다. 낙하산 사장에 대한 반감은 파업을 통해 편집국장 추천제를 마련했던 1988년 시절에도 이미 존재했다. 과거 부산일보 사장이 여러 차례 사내 요구 수용을 촉구했지만 정수재단이 계속 거부했다. 정수장학회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대선 국면을 지나는 것은 국민의 선택을 받고자 하는 정치인의 자세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또 부산일보 입장에서도 지금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다.”

-현 시점에서 서울로 상경해 싸우게 된 배경이 있나.
“대통령선거가 100일도 남지 않았다. 부산에서는 집회도 열고 (이정호 편집국장이) 열린 편집국장실도 운영하며 할 건 다 해봤다. 압박을 한다고 했지만 큰 효과는 없었다. 막다른 시점까지 왔다.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의 결단을 이끌어내려면 여론압박이 필요하고, 이제 부산보다는 서울에서 관심을 끌어올리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나도 임기가 10월이면 끝난다. 임기가 끝나기 전까지는 성과를 얻고 싶다.”

-박근혜 후보는 정수장학회가 자신과는 상관없는 일이라며 관계를 부정하고 있다. 이사장에서도 물러났으니 타당한 주장 아닌가.
“박근혜 후보는 (정수장학회와) 법적 관계가 없을 뿐이다. 지금 재단을 지키고 있는 최필립 이사장과 이사들이 모두 (박 후보와) 직간접적으로 관계있는 인물이다. 특히 최필립 이사장은 박근혜 후보가 대통령이 되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인물이다. 그는 대선이 끝나면 이사장직에서 물러나겠다는 이야기를 여러 차례 했다. 지금 물러나면 마치 죄가 있는 것처럼 되어 (박 후보에게) 불리할 수 있다는 이유 때문이다. 둘은 박 후보가 2005년 3월 최 이사장을 만나 정수재단을 부탁한다고 했을 정도의 사이다. 최필립씨는 박근혜씨에 이은 후임 이사장이 아니라, 흔히 말하는 바지사장이다.”

-박근혜 후보가 정수장학회 이사장 시절 저지른 과오가 있나.
“정수장학회 역사만 50년이다. 박 후보가 이사장 시절 법에 걸릴 일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위법한 것은 없다 해도 이사장에 대한 과다한 급여가 문제였다. 2005년 서울시교육청 감사결과 이사장 급여가 통념상 과도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박근혜 당시 정수장학회 이사장은 매 월 1100만원을 가져갔다. 하지만 교육청의 지적에도 이사장 급여는 매해 계속 오르고 있다. 정수재단의 장학금이 TK지역에 집중된 사실이 드러나 지역구 관리 아니었냐는 비판도 있었다.”

-정수장학회에 대한 대다수 사원들의 입장은 무엇인가.
“지난해 2월 사장 선임제도의 민주화를 놓고 사장추천위원회를 통해 후보를 내자며 사측과 노조가 합의했었다. 사추위 안에 대한 설문조사를 했을 때 전체 사원의 80% 이상이 지지했다. 대다수 사원들은 정수재단의 경영 간섭에 비판적이다. 부산일보가 여러 수익사업을 추진하는데 정수재단에서 제안했던 사업들이 모두 신통치 않다. 반면 뭔가 될 것 같은 사업은 팔아버렸다. 사내에서 TF팀을 만들어 성사 직전에 있던 사업도 이사장 반대로 묻히는 경우가 있었다.”

-정수장학회는 50여 년 전 박정희 군사정권이 김지태씨에게 부일장악회의 강제헌납을 요구해 탄생했기 때문에 ‘장물’이라는 주장이 끊이지 않고 있다. 장물이기 때문에 사회 환원을 해야 한다는 주장 외에 정수장학회가 사회에 환원돼야 하는 이유가 또 있나.
“정수장학회는 MBC와 부산일보에서 받은 기부금을 장학금으로 나눠주고 있다. 매해 MBC는 20억, 부산일보는 8억을 낸다. 상법상 소유권한을 행사하겠다는 차원을 넘어서 돈은 돈대로 빼내고 적자가 나더라도 기부금을 꼬박꼬박 받아간다. 더욱이 언론사에게 언론으로서 제 기능을 할 수 있게 도와주지는 못하고 간섭만 한다. 정수장학회는 장학사업만 하는 곳인데 왜 부산일보 경영진의 임명권을 고집하는가. 결국 정수장학회의 정치색을 언론사를 통해 관철시키려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있을 수밖에 없다. 지난해 노조위원장 자격으로 최필립 이사장을 만났을 때 (그는 내게) ‘이게(부산일보) 신문이냐’며 욕을 했다. 내게 이정도면 사장이나 편집국장에겐 더 하지 않았겠나.”

-정수장학회의 사회 환원이 부산일보에게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가.
“부산일보는 창간부터 지금까지 사주가 누구든지 시민들의 신문이라는 공통된 인식이 있었다. 그러나 정수장학회는 자꾸 자신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신문을 바꾸려고 무리수를 뒀다. 정수장학회가 공익법인으로 환골탈태하고 편집권 독립을 위한 장치가 마련되면 부산일보가 부산지역 시민들에게 지금보다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고 신문으로서의 신뢰와 공정성에서 오해를 안 받으며 발전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유족들도 공익법인에 찬성하나.
“그분들이 재단을 되찾아 오너십을 강하게 행사하겠다는 뜻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너무 박근혜 인사들이 쥐고 있는 게 보기 싫은 것이다. 법적으로 유족들에게 우선권이 있다고 하기 때문에 그분들도 경영권에 참여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정수장학회 사회 환원을 위한 싸움은 시민사회 전체의 싸움이기 때문에, 사회 환원 이후의 성과를 나누는 것 역시 유족들과 시민사회가 함께 진행해야 할 문제라고 생각한다.”

-이대로 박근혜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고 이정호 편집국장이 회사로 돌아가지 못하고 아무런 결말도 내지 못한다면 부산일보는 어떻게 되나.
“상상하고 싶지 않다.(웃음) 지금까지 1년 가까이 이끌어온 투쟁은 몇 몇 사람의 힘으로 이뤄진 것이 아니다. 부산일보 전 구성원의 총의로 여기까지 왔다. 설령 이대로 마무리 된다 하더라도 이 문제를 풀기 위한 노력은 계속 있을 것이다. 대선이 끝난다고 끝날 문제는 아니다. 만약 박근혜씨가 당선된다면 또 다시 대통령으로서 풀어야 할 문제가 될 것이다. 박근혜씨는 대통령 후보로서 밝혀야 할 입장이 많지만, 정수장학회는 밝혀야 할 입장이 아니라 자신이 조치해야 할 사안이다. 장준하 의문사나 5·16 쿠데타와 같은 이슈는 과거의 문제이지만 정수장학회는 현재의 문제다. 다른 과거사 문제와 섞어 입장발표만 해서 될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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