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일 제미니호 선원 피랍사태가 500일을 넘기며 연합뉴스를 시작으로 외교부출입기자단 소속 언론사가 일제히 관련 보도에 나섰다. 해적에 의한 한국인 납치 중 최장기를 기록한 제미니호 사태에 대해 외교부 출입 기자들이 외교부의 엠바고(보도유예) 요청을 거부한 결과다. 하지만 외교부 기자들의 결정은 지금까지의 엠바고 논리를 스스로 부정했다는 지적이다.

외교부 출입기자단은 지난 6일 기자단 자체 회의를 통해 제미니호 선원들의 소식을 보도하기로 합의했다. 출입기자단의 이 같은 결정은 지난달 24일 미디어오늘과 시사인의 보도에 이어 <추적 60분> ‘제미니호’편 불방논란이 불거지고 CBS가 지난 5일 <김미화의 여러분>에서 관련 보도를 내보내며 더 이상 엠바고를 지키는 게 의미 없다고 판단한 결과로 풀이된다. 이와 관련 외교통상부 출입기자단 간사인 김기수 기자(내일신문)는 보도결정 배경에 대해 “특별히 드릴 말씀이 없다”고 말했다.

출입기자단의 보도 결정은 불방위기를 겪던 <추적60분> ‘제미니호’편 방송에도 큰 영향을 주었다. 방송 하루 전(4일) ‘납치된 선원가족들의 반대’를 이유로 사측으로부터 불방통보를 받았던 <추적60분> 제작진은 이틀 뒤인 6일 밤 간부진과 방영에 합의했다. ‘제미니호’편을 연출한 강윤기 PD는 “외교부의 엠바고가 풀린 상황이 제작진에게 힘을 줬고 사측도 이를 감안하게 된 것”이라 전했다.

배재성 KBS 홍보실장도 “외교부 출입기자단과 외교부가 제미니호 선원 납치 500일을 맞아 엠바고를 풀어야 하는 것 아니냐며 의견조율이 있었다”며 “KBS는 피랍 500일 기점을 통해 가족들과 좀 더 동의절차를 확인하고 방송을 내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고 밝혔다.

외교부 출입기자단의 엠바고 파기는 역설적으로 지난해 12월 초부터 9개월간 기자들이 지켜온 장기 엠바고의 정당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출입기자단은 △몸값 협상에서 해적에게 유리하게 작용한다 △가족들이 보도에 반대하고 있다는 이유로 보도유예를 지켜왔다. 하지만 기자들은 보도유예 배경이 달라지지 않은 상황에서 피랍 500일을 맞춰 보도에 나섰다. 이는 취재 의지만 있었다면 언제든 쓸 수 있었던 내용이었다는 걸 스스로 인정한 것과 같다. 또 외교부 기자들 입장에서는 지금껏 지켜온 보도유예 논리를 스스로 부정한 꼴이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피랍 500일을 맞아 면피성 보도에 나선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이와 관련 제정임 세명대 교수(저널리즘스쿨)는 “정보를 제공하는 측의 편의에 의해 엠바고가 남용돼선 안 된다”고 지적한 뒤 “만약 외교부의 엠바고 근거가 설득력 있었다면 왜 지금 시점에서 엠바고를 풀기로 했는지 기자들 스스로 설명이 돼야 할 것”이라 지적했다. 제정임 교수는 이어 “엠바고는 정보에 대한 알 권리를 잠정적으로 유보시키기 때문에 기자들은 늘 (엠바고에) 합리적 사유가 있는지 엄격하게 검토해 제한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이번 장기피랍은 지난해 한국정부의 ‘아덴만 여명’ 군사작전과 연관이 있는 것으로 알려지며 논란이 확산될 것으로 보인다. 과거 금미호 선원 석방협상에 참여했던 김종규씨는 11일자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해적들이 원하는 것은 돈이 아니라 우리 선원들과 우리나라에서 복역 중인 소말리아 해적들과의 맞교환”이라며 “해적이 이들을 제3국에서 맞교환하자고 제안해왔지만 정부가 거절했다”고 주장했다.

한국 선원을 납치했다고 주장하는 소말리아 해적들은 <추적60분> 제작진과 인터뷰에서 “사촌 중 한 명이 대한민국 특공대로부터 살해됐다. 한국 정부의 대응이 없다면 선원들에게 어떤 일이 벌어지더라도 우릴 비난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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