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규 부장을 저는 개인적 은인 뿐 아니라 우리 국민 모두의 은인이라고 생각해요. 그분이 아니었다면 이렇게 박정희 유신독재를 끝낼 수 있었겠습니까. 김재규 부장은 박정희 3선 개헌 때부터 그를 반대했을 뿐 아니라 이 나라 우리 국민을 위해 그를 제거해야 한다는 군인적 확신을 갖고 살아온 분이에요. 그리고 1972년 10월, 그는 유신정변을 지켜보며 마음이 착잡했고 중앙정보부 차장 시절에 고민했고 그 후 건설부 장관이 되어 장관 임명장을 받을 때도 그날 거사를 계획했던 그의 말 속에는 늘 민주주의를 꿈꾸는 의인다움이 있었어요.”

함세웅 천주교 정의구현전국사제단 신부가 최근 출간한 ‘껍데기는 가라’에서 1979년 박정희 전 대통령을 시해한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 부장을 의인으로 평가해 주목된다.

함 신부는 손석춘 전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대표와 인터뷰에서 “김재규 부장을 살리지 못한 것이 가장 큰 실책이며 당대 우리 시대의 한계였다고 생각한다”고 털어놓았다. 함 신부는 “당대에도 그랬지만 33년이 지난 지금까지 국민과 역사가 김재규 부장의 참뜻을 깨닫지 못하고 있어 매우 안타깝다”고 말했다.

함 신부에 따르면 김재규가 결단을 하게 된 계기는 1979년 10월16일 부마항쟁이었다. 현장을 둘러보고 온 김재규는 민심이 떠나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고 박 전 대통령과 차지철 경호실장의 대화를 듣던 도중 거사를 결심하게 된다.

차지철이 “캄보디아에서는 200만명을 잡아 죽였는데 여기서는 한 100~200명만 죽이면 된다”고 말하자 박 전 대통령이 “자유당 때는 곽영주가 발포명령 책임자로 죽었지만 이번에 일이 나면 내가 발포명령을 할 텐데, 누가 날 어떻게 하겠느냐”고 답변했다고 한다. 김재규가 놀라서 ‘이 사람들이 제 정신이 아니구나’ 생각해 박 전 대통령과 차지철의 제거를 준비하게 됐다고 한다.

함 신부는 “그와 함께 했던 박흥주, 이기주, 김태원, 유성옥 다섯 분도 모두 의로운 분들“이라며 ”그들은 한결같이 법정에서 김 부장의 지시가 옳았음을 증언하고 다시 태어나 같은 명령을 받더라도 김재규 부장의 뜻을 따르겠다고 진술했다“고 말했다. 함 신부는 ”우리는 이 분들의 결의를 잊고 산 부끄러운 죄 때문에 결국 오늘과 같은 이명박 거짓 정권 그리고 유신독재를 계승한 어이없는 새누리당이 판을 치고 있다“고 비판했다. 함 신부는 또 ”일제 잔재를 청산하지 못한 원죄, 군부독재를 청소하지 못한 역사적 죄과 때문에 지금 우리가 엄청난 대가를 치르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털어놓았다.

김재규의 변호는 이돈명, 강신옥, 황인철, 박선호 등 인권 변호사들이 맡았다. 유신독재에서 핍박 받았던 이들이 중앙정보부 부장의 변호를 맡은 건 아이러니한 일이었다. 김재규는 광주의 비극이 펼쳐지던 5월24일 서대문 형무소에서 목숨을 잃었다.

함 신부는 “아직은 때가 되지 않아 이분의 뜻이 다 확인되지 않고 있지만 이분의 공로가 제대로 평가되고 수렴될 때 한국 사회에 참된 민주정의가 실현되리라 생각한다”면서 “저는 김재규 부장 등 여섯 분의 동지들과 동시대를 살았던 한 시민으로서 안중근 의사를 기리고 드높이는 것과 같은 사랑과 존경의 마음으로 그분들을 생각하며 그분들을 위해 기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함 신부는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에 대해서도 독설을 쏟아냈다. “(박 후보가)반민주적이었던 아버지를 왜 그렇게 미화하는 것 같으나”는 손 전 원장의 질문에 함 신부는 “미화라기보다는 인격적 한계”라고 규정했다. “자기 아버지의 정체성을 전혀 모르는 그저 그 아버지의 그 딸일 뿐인 관계에 있는 사람이고 어떤 의미에서는 그냥 기계일 뿐”이라며 “박근혜 개인 보다는 박근혜 증후군이 나타나는 우리 현실이 슬프고 부끄럽다”고 털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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