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노삼성자동차가 13일부터 희망퇴직 신청을 받고 있다. 2000년 회사 출범 이후 처음이다. 연구·개발(R&D)과 디자인 부문 1000여명을 제외한 4500여명이 대상이다. 구체적인 규모는 정해지지 않았지만, 회사 측은 ‘제한 없이 받겠다’는 입장이다. 프랑수아 브로보 르노삼성차 사장은 10일 “이번 희망퇴직은 회사의 현 위기를 극복하려는 노력의 일환이며, 회사의 미래 발전에 기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숫자로 나타난 ‘불길한 그림자’

일단 숫자로 드러난 르노삼성차의 ‘위기’는 심각한 수준이다. 르노삼성차는 올해 상반기 국내와 해외에서 모두 8만3062대의 차를 팔았다.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32.8% 감소한 수준이다. 7월에는 1만857대의 차를 팔아 지난해 같은 기간(1만8507대)에 비해 41.3% 낮은 실적을 기록했다. 국내 판매는 반 토막이 났다. 수출도 31.2% 감소했다.

주력 차종인 SM5는 6월에 2088대가 팔렸다. SM3는 6월 판매량이 1242대에 불과했다. 지난해 같은 달에 비해 각각 49.1%, 56.5% 하락한 수치다. SM3의 경쟁 차종인 현대차의 아반떼는 같은 기간 9687대가 팔렸다. 한때 내수시장 점유율 3위를 달리던 르노삼성차는 지난 3월 한국GM에 3위 자리를 내준 데 이어 6월에는 쌍용차에게 4위 자리마저 내줬다.


영업이익 지표도 곤두박질치고 있다. 2007년 르노삼성차의 영업이익률은 7.7%였다. 2006년에는 8.68%로 현대차(4.52%)의 두 배였다. 그러나 2008년 3.6%로 떨어진 영업이익률은 이듬해 -1.2%, 지난해에는 -4.3%로 하락했다. 2007년 2167억원의 영업이익을 냈던 르노삼성차는 2009년 423억원의 적자로 돌아섰고, 지난해에는 2150억원의 적자를 냈다.

공장이 멈춰 섰고, 판매망도 축소됐다. 르노삼성차는 지난해 12월 공장 가동 일수를 21일에서 11일로 줄여 1만대를 감산했다. 잔업과 특근도 제한적으로 실시됐다. 삼성자동차 시절이던 1996년 3월 문을 연 뒤, 르노삼성차의 대표 매장 구실을 해왔던 압구정 지점은 폐쇄됐다. 반포지점 등 강남의 주요 매장도 철수했다. ‘효율성’을 위해서라는 게 회사의 설명이다.

인재도 떠났다. 박수홍 기획본부장과 필립 게랑부토 R&D 본부장 등 부사장급 인력이 3월20일 회사를 떠났다. 김중희 R&D 부소장, 장익순 전무도 같은 날 사표를 냈다. 앞서 2월에는 이교현 홍보본부장도 물러났다. 홍보와 기획, 연구개발을 담당하는 중역들의 동반 퇴사는 극히 이례적인 일이라는 평가다. 부·차장급 인력의 상당수도 퇴사를 했거나 준비 중이다.

르노삼성의 이유 있는 추락

하지만 속사정을 들여다보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프랑스 르노그룹은 2000년 삼성자동차를 인수했다. 르노는 1999년 일본의 닛산도 합병했다. 삼성차 시절부터 닛산과 기술제휴를 맺고 있던 르노삼성은 승승장구했다. 2010년에는 국내와 해외에서 27만1479대를 팔아 최대 실적을 기록했다. 수출 국가도 60여 개국에서 유럽·북미·중국 등 75개국으로 확대됐다.

문제는 수익이 거꾸로 가고 있다는 점이다. 최대 실적을 기록한 2010년, 르노삼성차의 영업이익률은 0.06%에 불과했다. 판매대수가 17만대 선이던 2007년에는 7.7%였다. 비밀은 부품값에 있다. 르노삼성차는 르노-닛산의 부품을 들여와 가공해 이를 다시 수출하는 구조다. 부품 국산화율은 59%(2011년)에 그쳤다. SM7의 6기통 엔진은 통째로 닛산에서 들여온다.

르노삼성차가 르노-닛산에 지불하는 금액은 해마다 증가추세다. 2011년 르노-닛산에 지불한 부품값은 1조920억원으로, 2006년(2090억원)의 다섯 배 수준으로 껑충 뛰어올랐다. 기술사용료도 매년 가파른 상승 곡선을 그려왔다. 연구비, 광고판촉비 등을 합하면 차 한 대 당 르노-닛산에 지불하는 금액은 2006년 165만원에서 지난해 500만원으로 급증했다.

수출이 늘어도 수익에는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자체 해외 판매망이 없기 때문이다. 르노삼성차는 2011년 전체 판매대수(24만6959대) 중 55.8%(13만7738대)를 해외에서 팔았다. 수출이 내수판매를 앞지른 건 회사 설립 이후 처음이다. 그러나 판매마진은 고스란히 르노-닛산 본사의 몫이다. 르노삼성차 부산공장은 사실상 ‘생산기지’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본사는 호황을 누리고 있다. 르노는 2011년 10억9100만 유로(1조5300억원)의 흑자를 냈다. 닛산은 무려 69억 달러(7조9000억원)의 흑자를 기록했다. 세계경제위기 여파로 2009년 30억 유로(4조5000억원)의 손실을 봤던 르노는 2010년 흑자(34억유로) 전환에 성공했다. 르노삼성차는 단 4개의 차종으로 버티고 있다. 독자적인 차종 개발이나 신차 투입도 없었다.

파격적이었던 매각 조건

지난 달 방한한 카를로스 곤 르노-닛산 회장은 닛산의 SUV 차종인 ‘로그’를 연간 8만대 규모로 르노삼성차 부산 공장에서 ‘위탁생산’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라인 증설 계획은 없었다. 그는 “캐파(생산량) 확대는 생각하지 않고 있다”고 했다. 르노삼성차의 판매 확대보다는 ‘하청기지화’ 하겠다는 의지가 읽힌다. 르노-닛산은 문제없이 이익을 가져갈 수 있다.

실적 악화를 고의로 방치하고 있다는 의혹도 있다. 르노삼성은 삼성자동차의 자산과 부채의 일부를 6150억원에 인수했다. 이 중 1540억원은 삼성차에, 나머지 4610억원은 채권은행에 조건부로 갚기로 했다. 르노삼성차가 이익을 내는 해에만 잔금을 갚는 조건이다. 지연이자도 물지 않는다. 매각이 급했던 채권단이 르노에 일방적으로 유리한 계약을 맺은 것이다.

지난해 말을 기준으로 잔금 4610억원 중 절반에 가까운 2844억원은 12년째 미지급 상태다. 르노삼성차가 수익을 내지 않으면 사실상 ‘무이자 차입’ 효과를 볼 수 있다. 최대실적을 올린 2010년 영업이익률이 0.06%에 불과했던 것도 같은 맥락이라는 의혹이다. 매출을 끌어 올리되 이익을 낮춰 상환을 미루고, 기술사용료 명목으로 투자금을 회수하면 그만이다.


해외판매도 비슷한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다. 본사의 수익으로 돌아가는 해외판매 비중은 부쩍 늘었다. 2011년부터 올해 상반기까지의 월별 전체 판매량 추이를 보면, 전체 판매대수와 해외 판매대수의 곡선은 거의 일치한다. 본사 의존 구조가 심화된 문제뿐만 아니라, ‘이익 빼가기’ 의혹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내수판매 부진은 본사의 관심 밖의 일일 수 있다. 

르노가 삼성차 인수에 지불한 금액은 2090억원(2006년 채권단 지분 10% 인수 포함)이다. 반면 인수 이후 지난해까지 기술사용료로 가져간 돈은 4944억원에 달한다. 이 금액은 매년 증가 추세다. 적자가 나는 해에도 꾸준히 챙겨갔다. 세 차례의 배당금(745억원)을 포함하면, 투자금액의 2.7배 규모다. 초기 3년간의 흑자로 투자금을 이미 회수했다는 관측도 있다.

노동자들 “죽을 것 같이 일했는데…”

어김없이 고통과 불안은 노동자들의 몫이다. 19일 오후, 민주노총 부산지역본부 대강당에 모인 150여 명의 노조 조합원들의 얼굴은 어두웠다. 박종규 금속노조 르노삼성차지회장은 “단결된 투쟁으로 르노자본의 노동착취와 먹튀 자본으로부터 우리의 일터를 지켜내자”고 말했다. 노조는 회사의 희망퇴직 신청 공고를 정리해고를 위한 수순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르노삼성에는 지난해까지 노조가 없었다. “살인적인 노동강도”를 견디지 못한 노동자들은 산고 끝에 지난해 노조를 결성했다. 부산공장의 노동강도는 일찍부터 악명이 높았다. 2010년 한 해 동안 르노삼성차 노동자(사내하청 포함)는 1인당 71.6대의 자동차를 만들었다. 현대차는 52.0대, 한국GM은 60.7대였다. 시간당 생산대수(UPH)도 업계 최고 수준이다.

2007년에 입사한 정현우(가명·29)씨는 “솔직히 말해서 죽을 것 같다”고 하소연했다. 그는 “한 사람이 거의 두 사람 일을 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고 했다. 12년차 최광식(가명·36)씨는 “차 한 대 작업하다 보면 그 다음 차가 또 오는데 그 사이에 화장실 한 번 갈 시간이 없다”고 전했다. “다른 완성차 공장 중에 이렇게 일하는 데는 없다”는 게 그의 전언이다.

그런데도 노동자들은 꾸역꾸역 일했다. 삼성차 시절 만들어진 ‘사원대표자위원회(사대위)’에는 사원의 90%가 가입되어 있지만, 사대위는 회사 편에 가까웠다. 사대위는 최근 기업노조로의 전환을 준비하고 있다. 쌍용차 기업노조를 찾아 노조 설립 절차 등을 배우고 갔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9월부터는 교섭권을 놓고 르노삼성지회와의 줄다리기가 시작될 전망이다.

“지금은 비상사태다. 급박한 상황으로 돌아가고 있다”는 박종규 지회장의 목소리는 가늘게 떨렸다. 노조에 가입된 조합원은 200여명 남짓이다. 사대위가 다수 조합원을 확보해 교섭권을 가져가게 되면 “싸울 수 있는 무기가 없어진다”는 게 노조의 고민이다. 노조는 13일 오후 노조 설립 이후 최초로 부분파업을 벌였다. 라인은 17일 오후에도 한 번 더 멈춰 섰다.

“자구노력 중 하나?” “곪은게 터진 것”

르노삼성차는 정리해고는 없다는 입장이다. 21일 홍보팀 관계자는 “현재로서 강제로 구조조정을 할 계획은 없다”며 “(희망퇴직은) 여러 가지 자구노력 중 하나일 뿐”이라고 의혹을 일축했다. 그러나 김필수 대림대 교수는 “르노삼성의 문제는 단기간에 해소될 성질이 아니다”라며 “결국 구조조정으로 갈 수밖에 없다”고 전망했다. 익숙한 흐름의 반복인 셈이다.

그러나 르노삼성차 노동자들에겐 모든 게 생소할 뿐이다. 르노삼성차가 인력 조정 방침을 밝힌 건 회사 설립 이후 이번이 처음이다. 10년 넘게 노조도 없었다. 조합원 정씨는 “이게 지금 (칼이) 막 들어와도, 아파도 아픈 줄 모른다”고 현장 분위기를 전했다. “10년 동안 (사대위에) 길들여져 있었다”고도 했다. 아직 ‘나만 아니면 된다’는 인식이 팽배하다는 것이다.

김필수 교수는 “오래전부터 예견됐던 문제들이 한꺼번에 터져 나온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한국형 독자모델을 개발하기 위한 연구·개발 투자도 없었고, 따라서 국내 소비자 눈높이를 맞출 수도 없었다”며 “결국 (본사가) 본전을 다 빼가고 결론이 이렇게 나오는 과정이었다”고 말했다. 르노-닛산의 ‘지역공장’으로 전락한 르노삼성차에 미래는 없다는 이야기다.

르노삼성차는 부산 지역 매출액 1위 기업이다. 삼성차가 IMF 이후 위기에 빠졌을 때, 부산의 택시기사들은 ‘SM콜’이라는 서포터스를 만들어 SM5 자랑을 하며 입소문을 냈다. 그 덕분인지 르노삼성차는 당시 개인택시 시장의 30%를 장악했다. 지금(5월말 기준)은 4.3%에 불과하다. 부산시와 시민들도 힘을 보탰다. 그러나 돌아온 건 ‘먹튀’ 논란과 ‘희망퇴직’이다.

2001년, 당시 제롬 스톨 사장은 2010년까지 연간 50만대 생산체제를 갖춘다는 계획을 밝혔다. “기흥연구소는 차량개발에 필요한 모든 시설을 갖춘 연구소”라며 ‘하청공장화(化)’에 대한 우려도 일축했다. 2010년 11월, 르노그룹 부회장이 돼 한국을 다시 찾은 그는 “르노삼성차 증설에 적절한 타이밍을 보고 있다”고도 말했다. 하지만, 지금 르노삼성차는 어디로 달려가고 있는걸까.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