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주 연속 케이블TV 동시간대 1위. 4주차 방송 평균 시청률 3.25%. 최고 시청률 4.56%.  ‘응칠폐인’ 신조어 탄생까지. 최근 화제를 모으고 있는 tvN 드라마 <응답하라 1997>의 성적이다.  1990년대 말 H.O.T와 젝스키스 등 아이돌에 열광했던 소녀들과 슬램덩크의 서태웅, 스타크래프트에 즐거웠던 소년들의 청춘 로맨스를 담은 이 드라마는 동시대를 살았던 현재의 20~30대 시청자들에게 추억을 되새김질 시켜주며 흥행에 성공했다. 그런데 <응답하라 1997>의 성공은 단순히 완성도 높은 웰메이드의 성공만을 의미하고 있지 않다.

<응답하라 1997>의 흥행은 역설적으로 KBS MBC SBS 등 지상파 방송 플랫폼의 몰락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케이블은 이미 , <신의 퀴즈>, <막돼먹은 영애씨> 등 장르드라마의 성공에 힘입어 젊은 시청자에게 어필하고 있으며 예능의 경우도 <슈퍼스타K4>를 주축으로 <코미디빅리그>와 <화성인바이러스> 등이 고정 시청층을 확보하고 있다. 해당 프로그램들은 기존의 TV 시청률 집계방식으로는 확인되지 않는 어마어마한 수의 인터넷 시청자를 갖고 있다. IPTV와 스마트폰, 태블릿PC 등이 보편화 되며 플랫폼이 늘어날 수록 케이블 콘텐츠의 경쟁력은 더욱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반면 지상파의 시대는 저물고 있다. 지상파는 40대 이상을 중심으로 여전히 충성도 높은 시청층을 보유하고 있지만, 시청층 대부분이 아날로그세대의 ‘끝물’이다. 오늘날 상당수의 시청자는 내 안의 미디어, 스마트기기를 통해 지상파 플랫폼에 의지하지 않고 콘텐츠를 소비하게 됐다. 군사정권 시절 학교를 다녔던 40대 이상이 수동적 시청에 익숙했다면, 30대 이하부터는 능동적 방식으로 뉴스와 드라마를 소비하게 된 것이다. 이는 플랫폼 중심으로 콘텐츠가 소비되는 시대는 가고 콘텐츠 중심으로 플랫폼이 구축되는 시대가 왔음을 뜻한다. 

지상파 몰락의 징조를 제일 먼저 느낀 건 지상파 PD들이었다. 대표적으로 KBS 예능‧드라마PD였다. <개그콘서트>의 김석현 PD, <1박 2일>의 이명한 PD, <남자의 자격> 신원호 PD, <추노>의 곽정환 PD, <성균관 스캔들> 김원석 PD가 지난해 KBS를 떠나 CJ로 옮겼다. 웬만큼 제작하면 시청률 10%를 넘기는 KBS를 두고, 시청률 1%도 안 나오는 케이블 방송사로 이적한 것은 단순한 돈의 문제가 아니었다. 실제 여론을 형성하는 적극적인 젊은 시청층을 확보하고 창발성을 마음껏 발휘해 미래에도 살아남겠다는 심리가 작용했다.

예컨대 매회 시청률 10%를 꾸준히 넘기는 <전국노래자랑>의 경우 시청층 대부분이 50대 이상 장년층이며, 서울보다 지역 시청률이 더 높다. 해당 콘텐츠는 온라인에서 2차 소비되지 않는다. 반면 tvN <코미디빅리그>의 경우 시청층이 10~30대로, 화제가 되는 코너는 온라인에서 유튜브나 다음팟을 통해 2차 소비된다. 특정 인기코너의 경우 클릭수가 수백만에 육박한다. 광고효과 역시 점점 인터넷이 높아지고 있다. 신문과 방송의 광고가 줄고 인터넷 광고판매가 늘어난 이유는 이 때문이다.

이제 인터넷 접근성이 높은 이들이 주류 시청층이다. 생활의 변화로 본방 사수가 어려워진 이들은 인터넷 다시보기나 스마트폰을 통해 콘텐츠를 소비할 것이다. 약 10년 후면, KBS는 50~60대만을 위한 방송이 될지도 모른다. 현재의 시청률 집계 방식이 실제 인기나 영향력을 반영하지 못하는 시점이 올 것이다. 새로운 시청률 집계 방식이 등장한다면, 수년간 젊은 층을 공략해온 케이블, CJ E&M이 선두에 설 것이다. KBS 출신 신원호 PD가 연출한 <응답하라 1997>의 성공은 지상파 PD들의 이탈을 가속화 시킬 수도 있다.

20~30대는 더 이상 TV 앞에 앉아있지 않는다. 심지어 올림픽 실시간 중계마저 스마트폰으로 본다. 그래야 방송을 보며 트위터 등 SNS를 이용하기 쉽기 때문이다. 최근 방송통신위원회가 KT와 LG 유플러스, SK텔레콤 등 통신사업자에게 자체제작 프로그램의 전국 방송이 가능한 직접사용채널 허가권을 내주려고 해 논란이 일고 있다. 만약 이들 통신자본이 방송 플랫폼을 갖게 된다면 향후 몇 년 뒤 이들이 갖게 될 파괴력은 지상파 이상이 될 수도 있다. 결국 지상파는 올드미디어로서 여러 플랫폼 중 하나로 추락할 것이다.

때문에 지상파 역시 콘텐츠에 집중하며 온라인 전략에 집중해야 한다. 그러나 지상파는 현재 충성도를 보이고 있는 중장년층을 외면할 수 없으며, 당장의 광고수익을 무시하며 모험을 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최근 지상파들이 POOQ과 같은 방식으로 유료모델을 갖고 가려 하고 있으나, 대안으로 보기엔 스케일이 작다. 플랫폼 다양화에 따른 전략을 기존의 채널전략과 병행해야 하는 게 쉽지는 않아보인다. 언젠가 김태호 PD가 MBC를 떠나 플랫폼에 구애받지 않는 연출자 신분을 갖게 될 때 지상파는 상징적인 안녕을 고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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