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8일부터 신문과 방송은 모두 올림픽에 올인했다. 신문은 TV편성표 옆에 1~2면에 불과하던 스포츠면을 맨앞으로 불러들였다. 방송은 인기있는 드라마와 예능을 제외하고 올림픽으로 편성표를 도배하다시피했다. 내용의 경우도 국가주의, 애국주의 코드가 대부분이다. 언론은 한국 선수단 금메달 소식에 함께 웃고, 오심 논란에는 선수보다 더 흥분했다.

올림픽 등 메가이벤트를 전후로 언론의 스포츠 올인에 대해 스포츠애국주의라는 비판은 늘 있어 왔다. 또 올림픽 홍수로 진짜 뉴스가 누락되거나 축소된다는 우려도 제기돼 왔다. 역시나 이번 올림픽도 똑같다. 언론은 승리에 대한 대리만족을 수용자가 원하는 것에 비해 과잉 생산했다. 올림픽을 국민교육헌장 다루듯 선전했다. “나라의 융성이 나의 발전의 근본임을 깨달아….” 이명박 대통령의 측근 비리, 한강까지 거슬러 올라온 4대강 사업의 폐해, 노조 폭력으로 논란이 된 컨택터스 문제는 거의 보도되지 않거나 수박 겉핥기 수준이었다. 정치권의 공방만이 정치면을 채웠다.

▷올림픽은 지면에서도 황제로 군림했다=개막식이 치러진 지난달 28일부터 이번 달 3일 동안 전국단위 아침신문 신문 1면에 등장한 사진의 주제는 ‘올림픽’이다. 개막 첫 날인 28일은 올림픽 주경기장이 주를 이뤘다. 그 뒤 30일에는 박태환(남자수영)·조준호(남자유도)·진종오(남자사격)가 등장했고, 31일에는 양궁 여자대표팀 금메달 소식과 여자핸드볼팀이 신문 1면을 장식했다. 1일자 지면의 주인공은 김재범(남자유도), 이튿날 주인공은 김장미(여자사격)와 송대남(남자유도)이었다. 3일은 기보배(여자양궁)다.

‘제전’이라는 칭호답게 올림픽은 지면의 황제로 군림했다. TV 편성표와 이웃사촌으로 평균 1면에 머무르던 ‘스포츠’면은 6일 동안 정치와 사회를 밀쳐내고 1~4면을 차지했다. 이 기간 4차례나 정치, 사회 뉴스를 1면 머리기사로 배치한 한겨레도 28일자 1면으로 시작해 31~1일에 2·3면을 스포츠면으로 꾸몄다. 2일과 3일에는 각각 3면과 4면을 스포츠면으로 구성했다.

jTBC 일간스포츠 중앙선데이 등 그룹 소속 매체와 함께 총 11명의 취재진이 뉴스를 생산하는 중앙일보의 경우, 첫날 1면을 포함 7개면에 올림픽 기사를 쓰는 등 하루 평균 (단신이나 단신크기 사진기사 제외) 14개 기사를 내보냈다. 경향신문도 비슷하다. 기사 건수 증가와 지면 변화가 ‘스포츠 애국주의’를 불러왔다는 것은 아니다. 내용이 문제다. 해당 기간 언론은 금메달과 승리 아니면 오심 논란을 1면 등에 실었다. 한국선수가 웃으면 지면도 웃었고, 울면 같이 울었다.

KBS MBC SBS 등 지상파 방송사는 인기 있는 드라마, 예능프로그램 등을 제외하고 절반에 가까운 편성시간을 올림픽 소식으로 편성했다. MBC가 지난 3일 금요일에 편성한 19개 프로그램 중 런던올림픽 특집은 12개다. 같은 날 KBS 1TV 메인뉴스 ‘뉴스 9’는 33개 리포트를 내보냈지만 17개가 올림픽 관련 리포트다. ‘올인’이라는 말이 지나치지 않다.

▷언론은 왜 스포츠에 열광하는가=전두환 정권 시절 스포츠는 3S(스포츠·섹스·스크린) 중 하나로 ‘우민화 정책’의 도구였다는 지적이 있었다. 그러던 스포츠가 2000년대 들어 국민통합의 상징으로 자리 잡게 됐다. 시민들은 어느새 빨간 색 옷을 맞춰 입고 같은 박자로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올림픽 등 메가이벤트는 삶이 팍팍한 서민들에게 대리만족을 주는 것은 물론 위기에 빠진 정치권에게도 호재로 작용한다. 메가이벤트는 대통령의 지지율을 높이면 높였지 떨어뜨리지 않는다. 특히 자국의 선수단의 금메달은 대통령 지지율 곡선에 득이 될 가능성이 높다. 이런 점에서 스포츠는 결과적으로 국가주의와 애국주의에 활용된다는 비판이 끊이질 않는다.

진중권 동양대 교수는 지난 3일 팟캐스트방송 <이슈털어주는남자> ‘스포츠와 국민 감정’에 대해 “(스포츠애국주의에는) 두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며 공동체주의의 국가주의적 버전, 이를 밖으로 드러낼 수 있는 미디어를 지목했다. 진 교수는 “이 조건을 갖춘 나라는 전 세계 2곳”이라며 한국과 함께 중국을 들었다.

기사 한 줄, 멘트 하나에도 국가주의 이데올로기가 있다. 올림픽은 국가대항전이다. ‘한국’이라는 단어가 유난히 많이 나온다. 상대선수가 부상을 당한 경우에도 “한국에게는 잘 된 일”이라는 멘트가 흘러나오기도 한다. 특히 오심 논란에 대한 ‘국가주의적’ 언론보도는 이번 올림픽 보도가 보여준 스포츠애국주의의 전형적 모습이었다.

이를 두고 최경영 KBS기자(새노조 공정방송추진위원회 간사)는 “올림픽을 한국에서 하고 영국펜싱선수가 아시아계 심판에게 신아람처럼 당했다면 한국언론은 가디언처럼 자유롭게 풍자하며 비판했을까요?”라며 언론의 스포츠애국주의를 비판했다.


정재영 스포츠문화연구소 연구원은 5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해설위원, 아나운서의 언어를 들여다보면 국가주의적 성향이 보인다”고 지적했다. 그는 언론의 ‘금메달 지상주의’를 예로 들며 “누리꾼들은 금메달이 전부가 아니라고 하는데 언론은 아직도 국민 의식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MB 측근 비리, 4대강, 컨택터스… 올림픽과 함께 사라지다=반면 언론이 올림픽 보도에 집중하면서 사라진 뉴스도 많다. 정재영 연구원은 “이명박 대통령의 친인척 비리는 수면 아래, 지면 아래로 내려갔다”면서 “한국선수가 선전할수록 가라앉을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추혜선 언론개혁시민연대 사무총장은 최근 한강까지 거슬러 올라오고 있는 4대강 사업의 폐해, 노조에 폭력을 가해 ‘민간군사기업’으로 비난받고 있는 컨택터스에 대한 보도가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추혜선 총장은 “언론이 올림픽에 올인하면서 한강까지 ‘녹차라떼’가 된 4대강 사업의 폐해는 거의 보도하지 않고 있다”면서 “올림픽이 끝나더라도 계속 문제제기가 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경비용역업체 컨택터스 보도에 대해 그는 “공권력의 근간을 흔드는 굉장한 사건인데 심층보도를 하는 언론은 한겨레와 경향신문뿐”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특히 KBS MBC가 올림픽으로 방송을 도배하는 것은 이명박 정부의 방송 장악과 올림픽 시기가 맞물린 탓”이라고 지적하며 “안보부터 시작해서 국가의 모든 문제들이 올림픽에 모두 묻혀버렸다”고 지적했다.

시청자의 처지에서는 뉴스·채널선택권이 줄어든 셈이다. 온라인의 경우 ‘가디언 모델’을 따라할 수 있지만 국내 언론사들은 이를 벤치마킹하지 않고 있다. 개최국 영국의 일간지 가디언은 누리집에 ‘Hide Olympics’ 기능을 추가했다. 버튼을 누르면 올림픽 뉴스는 화면에 보이지 않는다. 올림픽 보도에 대한 수요를 만족시키며 제 기능을 하는 방법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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