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7월 1기를 시작으로 정규수업시간에 영어회화를 가르치는 영어회화 전문강사. 학생들은 이들을 ‘선생님’으로 부르지만 법적으로 이들은 계약직 ‘학교 회계직원’이다. 2004년 교과부가 ‘학교회계직원 계약관리지침’에서 이 말을 처음 사용한 뒤 학교 비정규직 대다수의 법적 명칭은 회계직원이다.

사실 이들 강사는 이명박 정부의 ‘어린쥐’ 정책의 수혜자다. 영어 공교육을 강화하겠다는 정부의 교육정책에 따라 대통령령으로 정한 자격을 얻어 교육청에서 이틀 동안 시험을 치르고 임용됐다. 이들의 임금은 정부와 교육청의 특별교부금(교육청 60%에 교육과학기술부 40%)에서 나온다.

영어회화 전문강사에 대한 법적 근거는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제 42조다. 시행령에 따르면 영어회화 전문강사는 학교장(공립)이나 법인 또는 경영자(사립)가 임용한다. 자격에 대해서는 대통령령으로 정했고, 임용기간은 1년 이내고 연장계약하더라도 4년을 초과하지 못한다. 이들이 여름방학을 두려워하는 이유다. 내년 8월 말 6000여 명의 강사는 하루아침에 일자리를 잃을지 모른다. 노조에 가입한 이유다.

현직 강사인 고아무개씨는 2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재계약 시기마다 금품수수가 공공연하게 이루어져 왔다고 털어놨다. 학교장이 ‘사용자’이기 때문이다. 교육현장에서 성희롱도 빈번하게 일어나지만 참아야 하는 것이 계약직 회계직원의 현실이라고 고씨는 전했다. 밉보이면 재계약에서 탈락하기 때문이다. “학교에서 우리는 유령 같은 존재에요”라고 고씨는 말했다.

전국의 초·중·고등학교에는 25만 명의 유령들이 있다. 학교 비정규직이다. 이들은 사서 영어회화전문강사 스포츠강사 등 실제 정규수업을 책임지는 ‘선생님’부터 돌봄강사, 방과 후 코디, 교육복지사, 통학차량보조 등 수십 개 직종으로 다양하다.

올해 4월 교육과학기술부가 내놓은 교육청 비정규직 현황에 따르면 올해 4월 1일 기준 학교비정규직은 27개 직종 총 15만2609명. 이중 무기계약직은 7만1953명이다. 그러나 이 통계는 경비 등 간접고용 노동자들과 영어회화 전문강사 등을 제외한 결과다. 전국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학비노조)은 학교 비정규직을 총 80여 직종 25만 명 이상으로 추산하고 있다.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진짜 사용자 찾기에 나섰다. 지난달 25일 강원도교육청을 시작으로 6개 시·도 교육청이 학교 비정규직 노조들과 단체교섭을 시작했거나 할 예정이다. 강원과 서울은 진행 중이고, 경기 광주 전북 전남은 교섭을 앞두고 있다. 강원도의회가 교육감의 직접고용 조례를 제정했고, 전남과 광주는 각각 지난해 9월과 올 3월부터 조례를 시행하고 있다.

이들의 요구는 교육감 직접고용, 전원 무기계약직 전환, 호봉제 도입 등이다. 학교장 재량으로 임용·고용이 이루어져 노동자들이 일상적인 고용불안 속에서 처해 있다는 것이 노조의 주장이다. 이들은 사업비를 교육과학기술부, 시·도 교육청에서 학교로 배분하고 이를 통해 임금을 받는다는 점을 들며 진짜 사용자는 ‘교육감’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상시적인 업무에 종사하고 있다는 것도 교육감 직접고용 요구의 근거다.

학교 비정규직은 저임금이기도 하고, 연봉계약직이라 경력을 인정받을 수 없다. 학기나 연 단위로 근로계약을 맺고 근무일수와 하루 수당이 정해져 있다. 2012년 기준 사서는 일 5만800원이고, 과학실험보조와 유치원종일제강사, 조리원의 일급은 4만5500원이다. 월급으로 따졌을 때 최대 154만여 원(사서)이고, 최저 98만5833원(조리원)이다. 이 때문에 이들은 고용안정과 경력인정에 따른 인금 인상을 위해 무기계약직 전환과 호봉제 도입을 주장하고 있다.

이윤재 전국학비노조 정책국장은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전체 교직원의 3분의 1 정도가 비정규직”이라며 “최근 10년 동안 교육공무원의 빈자리를 비정규직이 메꾸고 있다”고 주장했다. 정부가 교육현장에서 공무원의 빈자리나 정책 상 신설된 자리를 비정규직으로 채워왔다는 것.

이 국장은 “학교는 기업이나 독립법인이 아니라 정부와 교육청의 교부금으로 운영하는 공적 기관인데 학교장이 사용자라는 것은 말이 안 된다”며 “진짜 사용자는 교육감이고, 학교장이 아니라 교육감이 직접 고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단체교섭이 진행 중이지만 전망이 밝지만은 않다. 단체교섭과 조례 제정 지역이 진보성향으로 분류되는 교육감이 있는 곳에 한정됐기 때문이다. 지방·중앙노동위원회가 수차례 ‘노조와 교섭에 응하라’고 판정했지만 보수성향의 교육감이 있는 교육청들은 움직이지 않고 있다.

이윤재 국장은 “10월까지 보수성향 교육감이 있는 지역은 교섭에 응하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충청남도교육청이 지난 4월 중앙노동위원회에 행정소송을 제기했고 결과는 10월께 나올 전망이기 때문이다. 다만 이 국장은 “새누리당도 비정규직 문제 해결에 나서고 있고, 민주당도 적극적”이라며 “정치권이 움직이고 있는 만큼 교과부가 10월이나 대선 이전에 교육청에 지침을 내리지 않겠느냐”고 내다봤다.

정치권의 관심도 크다. 문재인 캠프의 유기홍 민주당 의원이 전원 무기계약직을 골자로 하는 법안을 만들고 대표발의할 계획이다. 통합진보당 또한 이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총선 시기에 새누리당에서도 토론회에 참석해달라는 요청이 왔었다고 노조는 전했다.

지난달 30일 유기홍 의원과 정진후 통합진보당 의원은 ‘학교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위한 정책토론회’를 열어 무기계약 전환과 호봉제 도입에 따른 소요예산 등을 검토한 바 있다. 15만여 명 전체에 기능직 공무원 9급 5호봉의 기본급 및 수당을 적용할 때 1조6000억 원이 추가로 든다. 호봉만 인정할 경우 추가소요예산은 3662억 원이다. 정부가 지난해 11월 내놓은 ‘공공부문 비정규직 고용개선 대책’에 따른 11만7127명에 대해 호봉을 적용할 경우 2811억 원이 더 든다.

한편 노조는 교섭이 진행되지 않거나 성과가 만족스럽지 않다면 파업을 진행할 계획이다. 학교 비정규직은 전국단위 3개 노조(서울은 4개)에 소속돼 있다. 이효진 국장은 “조직률은 10% 수준으로 2만 명이 넘는다”면서 “10월에 1만 명이 모이는 집회를 열어 쟁의행위를 준비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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