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돈이다. 새누리당에서 지난 19대 총선 비례대표 공천 과정 중 수억원대의 공천헌금이 오갔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차떼기, 돈봉투 등 돈과 관련해 안좋은 추억이 있는 새누리당으로선, 또 한 번의 대형 악재가 터진 셈이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지난 30일, 4.11 총선을 앞두고 새누리당 비례대표로 당선된 현영희 의원이 비례대표 공천을 받기 위해 당시 새누리당 공직후보자추천위원이던 현기환 전 의원에게 3억원의 공천헌금을 전달한 혐의를 포착해 대검찰청에 고발했고, 현기환 전 의원도 검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정황이 사실로 드러날 경우 이번 사태의 불똥은 박근혜 전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에게도 튈 것으로 보인다. “구시대 정치의 폐습을 혁파하고 새로운 정치”를 하겠다던 박근혜 전 위원장이 새누리당으로 당명을 바꾸고 직접 진두지휘하던 총선과정에서 벌어진 일인데다, 현 전 의원은 친박계 추천위원으로, 언론에 의해 ‘친박계 신실세’(한국일보 4월 26일자. 6면)로 분류되기도 했다.

이에 따라 언론들은 이번 사태가 박근혜 전 위원장의 대선가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동아일보는 2일자 1면 <선관위 ‘여야 공천헌금’ 수사의뢰> 기사에서 “여당의 유력 대선주자인 박근혜 비대위 주도하에 치러진 총선에서 공천 부정이 있었다는 의혹이 수사를 통해 확인되면 대선 판도에 적지 않은 영향을 줄 것”이라고 관측했다.

석간인 문화일보도 2면 <사실땐 ‘대선 대형 악재’…공천개혁 외치던 박근혜 치명타> 제하 기사에서 “박근혜 전 위원장이 ‘정치 쇄신’을 내세우며 진행했던 19대 총선 공천과정에서 공천헌금이 오간 의혹이 사실로 확인될 경우, 대선가도에 대형 악재로 떠오를 가능성이 높다”고 보도했다.

당장 민주통합당은 이번 사태를 박근혜 전 위원장과 연관시키며 ‘책임’을 강조하고 있다. 박용진 대변인은 이날 오전 브리핑에서 “이번 일은 공천헌금사건이 아니라 조선시대 매관매직에 버금가는 조직적 부패사건”이라며 “원칙과 신뢰를 앞세운 박근혜 비대위원장이 진두지휘한 공천과정에서, 새로 거듭나겠다면 당명까지 바꾼 새누리당이 국회의원직을 사고파는 망국적 부정부패사건을 저지른 것은 대단히 충격적인 일”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지금까지 모든 일이 벌어지면 그래왔듯이 새누리당은 이번 일을 개인의 일로 치부하려 할 것이고, 검찰의 손에 맡겨놓고 대선이 끝날 때까지 시간가기만 기다릴지도 모른다”며 “그러나 이것이 새누리당의 구조적 조직적 문제이며 당시 당을 장악하고 총선공천과 선거를 진두지휘했던 박근혜 후보가 책임져야 한다”고 말했다.

새누리당 대선후보인 김문수 경기도지사도 이날 충청권 합동유세에서 “깨끗한 정치를 해야 하는데 우리 당에서 공천헌금을 줘서 검찰이 수사에 나섰다고 한다”며 “이번 의혹에 대해서 박 후보가 책임지고 수사를 마무리해서 당을 깨끗하게 해야 한다”고 책임론을 부각시켰다.

박근혜 의원 측과 새누리당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충청권 합동유세를 펼치던 박 전 위원장은 선관위 발 ‘비보’에 대해 “당연히 검찰에서 한 점 의혹 없이 밝혀야 될 문제”라고 밝혔다. 새누리당 김영우 대변인은 “당사자들은 전면 부인하면서 황당하고 어이없는 일이라고 항변하고 있다”면서도 “경위야 어찌 됐던 선관위가 검찰에 이 사건을 의뢰한 만큼 사실에 대한 엄정하고 철저한 조사가 이루어지길 바란다”고 밝혔다.

한편 공천헌금에 연루된 새누리당 현기환 전 의원과 현영희 의원 측은 이를 전면 부인하고 나섰다. 현기환 의원은 3시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전혀 사실이 아니”라고 밝혔다. 현 전 의원은 기자회견 후 국회 기자회견실 밖에서 질의응답을 받는 관례에도 불구하고, 마이크 앞에서 질문을 받고 마이크를 통해 대답했다. 혐의에 대해 자신감을 보인 셈이다.

현 전 의원은 현영희 의원과의 친분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현영희 의원은 부산에서 시의원을 하고 교육감 선거에도 출마했다. 부산사람들은 다 안다”며 “자꾸 현영희 의원과 사적으로 엮어 의혹을 키우려고 하는데, 그런 보도에 반대한다”고 말했다.

현영희 의원 측도 별도의 보도자료를 통해 “이번 사건을 선관위에 제보한 사람은 후보 시절 수행업무를 도왔던 사람으로, 선거 이후 보좌관직을 요구했으나 거절했고, 이후 그는 나와 가족에게 협박을 가했다”며 “공천헌금과 관련해서는 선관위 조사과정에서 어떤 질문을 받은 바 없고 내용 자체도 사실무근”이라고 반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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