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 선임된  MBC 방송문화진흥회(방문진)는 MBC 방송정상화에 나설 수 있을까?

방송통신위원회가 9기 방문진 이사를 선임하면서 이들에 대한 역할에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정치권이 새로운 방문진을 통해 김재철 사장 퇴진 문제를 포함한 MBC 방송정상화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합의한 것도 이들의 역할에 관심이 높아지는 배경이다.

하지만 9기 방문진에 김재우 현 이사장을 포함해 3명의 현 이사들이 이름을 올리면서 김 사장의 거취 문제가 불투명해졌다. 사실상 MBC 파업 사태를 방관하고 김재철 사장 비리 의혹에 눈을 감아온 8기 방문진 이사가 연임된 것은 김재철 사장의 임기를 보장해주라는 청와대의 특명과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김재철 사장 임기를 보장하려는 정부 추천 이사 3명과 김 사장의 퇴진을 주장하는 야권 추천 이사 3명 사이에 여권 추천 이사 3명이 어떤 결론을 낼지가 김 사장 거취 여부를 가르는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야당 추천 이사들은 MBC 경영평가와 김 사장의 비리 문제, 도덕성 문제를 검토해 8월 중 해임안을 제출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 3월 야권 추천 이사들이 발의해 제출한 해임안은 6명 정부-여권 추천 이사들에 막혀 부결된 바 있다. 이번에도 해임안이 제출되면 정부 추천 이사 3명은 반대 의사를 밝힐 것이 확실시된다. 하지만 여권 추천 이사 3명은 현재까지 어떤 입장을 낼지 불투명하다. 캐스팅보토를 손에 쥐고 있는 여권 추천 이사인 김용철 전 MBC 부사장과 김충일 전 언론중재위원, 박천일 숙명여대 교수에 눈이 쏠리는 이유다.
특히 김재철 사장 거취 문제는 박근혜 전 비상대책위원장의 MBC 정상화 노력 의지를 가늠하는 바로미터일 수밖에 없는데 여권 추천 이사들이 내리는 결정에 따라 박 전 위원장의 언론관도 다시 한번 대선 과정에서 검증의 대상에 오를 것으로 보인다.

여권 추천 이사들은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방문진법에 따라 어떤 영향도 받지 않고 독자적인 판단에 따라 김 사장 거취 문제를 결정하겠다는 원론적인 입장을 밝히면서도 적극성에서 차이를 보였다.

김충일 전 언론중재위원은 MBC 파업 사태와 관련해 “경위와 과정을 잘 모른다”고 말했다. 김 사장 거취 문제가 포함된 여야 합의문에 대해서도 “어떤 의미에서 합의를 했는지 전혀 모른다. 알아야할 이유가 있는 것 같지도 않다”고 답했다. 김재철 사장 해임안이 제출될 경우 입장에 대해서도 “정할 수 있는 판단 근거가 없다. 신문에 나온 오락가락한 얘기뿐이지 양측 입장을 단편적으로 봐서 내용을 잘 파악하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오는 9일 임기가 시작되면 방문진 이사들과 협의를 거쳐 입장을 정리하겠다는 입장이지만 MBC 방송정상화 문제에 소극적인 모습이다. 일각에서 김 전 언론중재위원이 김 사장 임기를 보장하려는 청와대 쪽 의견과 같이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반면, 김용철 전 MBC 부사장은 MBC 경영평가와 김 사장의 법인카드 등 비리 의혹에 대해 “관심사가 가장 큰 현안인데 파악하는 것도 이사들의 임무”라면서 “어떤 결정을 하는 것은 두 번째 문제이고 파악하는 절차를 거치는 것이 우선”이라고 말했다. 김 전 부사장은 MBC 파업에 대한 책임론에 대해 “노사 양측 상황 파악을 우선으로 하겠다. 지금까지 울타리 밖에서 보도되거나 전달해주는 감정이 실린 얘기만 들었는데 울타리 안으로 들어가면 상황 자체에 대한 객관적 팩트가 무엇인지를 충실히 파악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방문진 이사는 법적으로 주어진 책무가 있다. 책무를 열심히 하면 공영방송을 잘 수행하도록 뒷받침할 수 있다고 본다”고 말해 방문진의 적극적인 역할을 통해 MBC 방송정상화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드러냈다. 다만 김 전 부사장은 “(김 사장 거취 문제에 대한)기본 자료인 1차 자료를 가지고 판단을 할 것”이라며 “자료를 확보하는데도 시간이 걸리지 않겠느냐. 여러 절차가 있을 것으로 보는데 모이게 되면 논의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 전 부사장은 지난 2007년 박근혜 후보 캠프에서 언론 자문 역할을 담당한 바 있다.

   
 
 

지난 2007년 이명박 대통령 선거 캠프에 참여한 경력이 있는 박천일 숙명여대 교수는 그동안  정권 비판적인 MBC 보도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밝혀 보수적 성향의 인물로 파악된다.

박 교수는 지난 2005년 황우석 교수 연구의 진위를 취재하는 과정에서 논란을 빚은 PD수첩에 대해 “MBC는 공영방송의 근간을 뒤흔든 PD수첩을 당장 접어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사장 등 임원들이 철저한 반성과 함께 응분의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지난 2008년에는 방송통신심의위원으로 참여해 미국 수입 쇠고기의 광우병 위험성을 보도한 PD수첩에 대해 '시청자 사과'를 결정한 바 있다. 또한 이명박 정부의 종합편성채널 특혜 정책과 보조를 맞춰 “종합편성채널이 지상파 방송과 동등하게 우선적으로 채널을 배정받을 권한을 갖도록 유도해야 한다"고 주장한 인물이다. 이 같은 전력 때문에 박 교수의 경우 MBC 파업을 비판하면서 김재철 사장 퇴진에 부정적인 의견을 낼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일각에서는 박 전 위원장 측이 김재철 사장을 대선까지 끌고 가면 공정방송을 요구하는 반발 여론이 커질 수 있지만 MBC 방송정상화에 따른 보도가 결코 자신들에게 유리하지 않다는데 무게를 두고 이번 방문진 이사 구성을 사실상 방관해 9기 방문진에서 김 사장의 퇴진을 기대하게 어렵다는 지적도 있다.

방문진의 역할을 강조하면서 정치권 합의를 이끌어온 측면이 부각돼 박 전 위원장이 큰 수혜를 입었지만 새로운 방문진 이사의 역할에 대해서는 개입을 하지 않겠다는 원론적인 입장으로 선을 그으면서 결국 김재철 사장 체제를 용인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이한구 새누리당 원내대표와 이계철 방송통신위원장이 말을 맞춘 듯 방문진 이사 선임에 정당 추천권을 행사하지 않은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한 것도 방문진 거리두기에 나선 게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시민사회단체에서 이번 방문진 구성을 놓고 “새누리당에 유리한 언론지형을 형성하겠다는 정권과 새누리당, 특히 유력한 대선 후보인 박근혜 의원의 속내를 만천하에 드러낸 것”이라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한편으로는 MBC 방송정상화 문제를 해결하는 모습의 ‘극적 효과’를 노리고 박 전 위원장이 새누리당 대선 후보로 확정되고 난 후 야권 후보와 맞설 때 김 사장 퇴진 문제가 본격화될 것이라는 예측도 나오고 있다. 이명박 정부의 차별성을 부각시킬 수 있는 가장 좋은 타이밍을 노려 MBC 방송정상화 문제를 적극 해결하는 모습을 보여준다는 전략이다.

MBC 노조는 하지만 여권 추천 이사에 대해 “보수적 성향은 맞지만 뉴라이트 출신들은 없고 극보수들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면서 "대한민국 국민 대다수가 김 사장이 심각한 문제라고 생각하고 있는 이 같은 여론을 바꾸지는 못할 것이다. 김 사장 해임안이 제출되면 무조건 감싸기에 급급하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향후 행보를 지켜보겠다"고 기대를 나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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