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은 5천만 명의 교육전문가가 있다는 나라이며, 오바마가 부러워할 정도로 교육열이 뜨거운 나라다. 그런 나라답게 대통령 선거를 몇 달 남겨놓은 지금 곳곳에서 대선 교육공약이 발표되고 있다. 교육을 잡으면 대권을 잡는다는 책이 나올 정도니, 대통령이 되겠다는 사람들이 너나 할 것 없이 교육공약 패키지를 발표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과연 이들이 진정 “교육은 백년지대계”라는 말을 무겁게 받아들이고 있는지는 의심스럽다. 교육현실에 대한 심각하고 깊이있는 고민의 흔적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고민의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는 평가를 어떻게 이렇게 과감하게 내릴 수 있는지 반문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겠다. 하지만 이렇게 과감한 평가를 내릴 수 있는 까닭은 앞으로 교육을 이렇게 하겠다 저렇게 하겠다는 무지개 빛 청사진들만 던지고 있을 뿐, 정작 현재 파행으로 치닫고 있는 공교육을 정상화 하겠다는 구체적인 제안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교육은 사람을 다루는 일이고 미래를 결정짓는 일이기 때문에 설익은 정책은 즉각 심각한 부작용을 낳기 마련이다. 특히 미성년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초중등 교육의 경우는 그 부작용이 더욱 심각하다. 더구나 어린이·청소년들과 긴 세월을 함께 부대껴온 전문가들의 말을 무시하고 몇몇 경제 관료와 행정 관료들이 언론 홍보용으로 내던지는 교육정책은 거의 재앙에 가깝다. 그리고 지금 한국 교육이 처한 현실은 바로 이 재앙이다.

그런데 유력한 대선 주자들은 하나같이 이 재앙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고, 앞으로의 청사진만 멋지게 꾸며서 나열하고 있다. 이는 마치 태풍이 휩쓸고 간 도시에서 피해를 복구할 방안은 내어놓지 않고, 이 폐허 위에 얼마나 멋진 신도시를 건설할 것인지만 이야기하는 것과 흡사하다. 이 꿈 같은 청사진들이 정작 삶의 터전을 잃어버린 이재민들에게 얼마나 공허하고 심지어 뻔뻔하게 들리겠는가?

그렇다면 우리 공교육에 어떤 재앙이 있었으며, 우리가 어떤 폐허위에 서 있기에 이런 말을 하는지 궁금해 질 것이다. 그건 바로 이명박 대통령과 그가 임명한 이주호 교과부 장관이 4년간 저질러 놓은 교육정책의 부작용들이다. 이들이 저질러 놓은 일들은 하도 많아서 일일이 나열하기도 어려울 정도지만 그 중 굵은 것 몇 가지만 들어도 다음과 같다.

첫째, 이들은 공교육에 경쟁체제를 도입하려고 한 나머지 학교 현장을 불신과 편법의 아수라장으로 만들어버렸다. 이들은 학업성취도검사 점수를 가지고 시도간, 나아가서 학교간 점수경쟁을 유도하였고, 교원평가와 성과급을 강화하여 교사들을 줄세우고 경쟁의 도가니로 몰아넣으려고 하였다.

그 폐단은 단박에 나타났다. 다양한 체험활동을 통해 정서와 덕성을 골고루 함양해야 할 어린 학생들을 밤늦게까지 남겨서 성취도평가 대비 문제풀이 연습을 시키는 학교들이 늘어났다. 심지어 성적순으로 귀족이니 천민이니 하는 신분을 부여해 동심을 시꺼멓게 멍들게 만들거나 성취도 평가 점수를 가지고 상품권을 내거는 학교까지 나왔다. 더욱 한심한 것은 교과부는 이런 비교육적인 처사가 횡횡한 교육청을 우수한 교육청으로 이런 비교육적 처사를 거부한 교육청을 미흡한 교육청으로 딱지를 붙여가며 교육청마저 줄 세우기 경쟁을 시키려 했다는 것이다.

이렇게 교과부는 학교를 배움이 일어나는 곳이 아니라 경쟁이 일어나는 곳으로 바꾸었다. 우리나라 학교 풍토는 점점 경쟁적으로 바뀌어 가면서, 그나마 가지고 있던 사회적 자본을 까먹고 말았다. 그 결과는 점점 거칠어지는 학생들의 심성, 높아만 가는 긴장도와 스트레스, 그리고 여기에서 비롯되는 급증하는 청소년 자살율과 학교폭력 피해율이었다.

둘째, 이들은 그 본성상 민주적이라야 하는 교육의 영역에서 독재를 실시하였다. 이들의 교육정책은 “정부가 까라면 까는 것”의 원칙에 따라 이루어졌다. 최소한 개발에 3년 교과서 제작에 2년이 걸린다는 교육과정을 이들은 단 3년 만에 네 번이나 바꾸었다. 이들은 교육과정을 신중하게 결정하고 서서히 적용시키는 것이 아니라 마치 패스트푸드처럼 뽑아내서는 모든 학교에서 일거에 적용하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이미 대부분의 학교에서 학교교육과정을 다 편성하고 시간표까지 다 짜 놓았을 시점에 바뀐 교육과정을 고시하고는 모든 것을 다 다시 짜라고 강요하였다.

이들에게 교육은 신중하게 연구하고 결정해야할 백년지대계가 아니라 자기들 취향에 따라 멋대로 뜯어 고칠 수 있는 햄버거 같은 것에 불과했다. 교사들은 경청해야 할 전문가들이 아니라 생산 라인에 선 로봇에 불과하였다.  이들은 본사에서 치즈버거를 집중 생산하라고 하면 매장에 치즈버거가 밀려나오듯,  교육도 장관의 지침에 따라 언제든지 바뀔 수 있는 대량생산 상품으로 여겼다.

영어 수학 시간을 대폭 증가할 수 있는 집중 이수제를 만들어서 예술·체육 과목을 초토화 시키더니, 불과 1년 만에 이번에는 체육 시간을 두 배로 늘리라고 강요했다. 주당 세 시간 정도로 십 수년 째 유지되어 온 체육시간이 불과 1년 사이에 두 시간으로 줄었다가 네 시간으로 늘었다 하며 엿가락이 된 것이다. 이러는 와중에 체육교사들에게 의견을 구해 본 바도 없으며, 체육교사를 늘린 적도 없다.

그 결과 지금 중1, 중2, 중3, 고1이 모두 각각 다른 교육과정의 적용을 받는 기막힌 양상이 전개되었다. 개정 교육과정 설명회를 듣고 온 이틀 뒤 또 새로운 교육과정이 고시되는 장난 같지도 않은 일이 일어났다. 게다가 이 모든 짓들을 경제관료 출신, 일반 행정관료 출신들과 경제학자 출신의 장관이 교육전문가의 입에는 재갈을 물린 채 저질렀다. 이렇게 공교육의 교육과정이 누더기처럼 운영되는 나라, 비교육전문가 손에 좌지우지되는 나라는 세계에서 둘 이상 찾아내기 어려울 것이다. 이걸로도 모자라서 멀쩡히 교과서에 있는 시를 넣어라 빼라 논란을 일으키더니 심지어는 생존해 있는 인물은 교과서에 수록되면 안 된다는 역사에 길이 남을 코메디 같은 발언을 이 정부의 교육당국자들은 거리낌 없이 내 뱉았다.

그 밖에도 교사를 전혀 충원하지도 않고, 도리어 교사 수를 법정정원 이하로 줄여서 교사 1인당 수업 시수를 10%씩이나 늘려놓은 일, 그러면서 도리어 중학교 2학년부터 담임교사를 두명 씩 두라는 얼토당토 않는 일을 벌여 놓은 일, 심지어 내년부터는 모든 학년에 복수 담임제를 실시하겠다고 예고장까지 던져 놓은 일은 생각만 해도 아찔한 일이다. 교사를 10% 줄이고서 담임교사를 100% 증원하겠다는 이 엽기적인 발상을 어떻게 해낼 수 있었는지 궁금하다.

87년 이후 학교자치 최대의 성과라고 할 수 있는 대학총장 직선제도 하루아침에 모두 폐지했다. 놀라운 것은 장관이 한번 소집하자 일제히 국립대 총장 직선제가 폐지되었다는 것이다. 5공화국 때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마찬가지로 교육자치 끊임없이 훼손시켰다. 이들은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을 진보교육감 훼방령으로 활용하면서 법령을 개인적 도구로 남용하였다. 결국 이들은 대통령의 한 마디, 장관의 한마디에 시도교육감과 대학총장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그런 교육체제를 도모하였다. 이들이 꿈꾸는 나라는 총수가 지배하는 재벌기업같은 나라였던 것이다. 그 와중에 이들은 스마트 교실 사업이라고 그럴듯하게 이름 붙은 천문학적 규모의 태블릿 PC와 소프트웨어 구매사업을 만지작 거리고 있다. 불길한 전조가 아닐 수 없다.

그 밖에도 많다. 학교폭력이 심각하다는 보도가 나오자 일진경보제 등을 내세워서 학교를 경찰과 검찰의 사냥터로 만들었다. 진보교육감과 가장 거리가 먼 지역에서 학교폭력과 자살 사건이 빈발하는데도 엉뚱하게 학생인권조례탓을 하며 교육혁신에 딴지를 걸었다. 사교육 없는 학교 만들기란 명목으로 그 동안 적어도 중학교에서는 사라졌던 야간 자율학습과 보충수업을 초등학교까지 보편화 시켰다.

장차 대통령이 되고자 하는 후보들은 교육뿐 아니라 다른 모든 영역에서 임기 첫해부터 새로운 일을 하기보다는 이명박 정권이 저지른 일 뒤처리 하기 바쁠 운명임을 알아야 한다.  엄청난 공공부채, 뿌리부터 갉아먹은 경제위기, 그리고 온통 콘크리트와 흙탕물로 바꾸어 놓은 4대강, 전 국토 곳곳에서 고혈을 빨아먹는 민자 사회간접자본, 원점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 남북관계와 동북아 외교 등 이루 나열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문제들이 산적해 있다.

어쩌면 차기 대통령은 아마 청사진은 펼쳐보지도 못한 채 청소만 하다 임기가 끝날 수도 있다. 이럴 때 진정 나라를 생각하고 국민을 생각하는 정치인이라면 화려한 청사진을 보여줄 것이 아니라 청소를 어떻게 할 것인가를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 물론 미래 설계도에 비해 청소계획서는 폼도 나지 않고, 인기 끌기도 어렵다. 한국인들은 과거를 빨리 잊고 미래를 꿈꾸기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떤 미래도 과거의 완전한 청산 없이는 도달하기 어렵다. 따라서 철저한 청소계획 없는 청사진은 모두 선거 때 보여주기 위한 신기루에 불과하다.

그러니 장차 대통령이 되고자 하는 주자들이라면 교육의 청사진을 보여주지 말라. 그대들 말고도 교육의 청사진을 보여준 사람들은 항상 넘칠 정도로 많았다. 그 대신 지금 정부가 저질러 놓은 이 교육재앙을 어떻게 수습할 것인지 청소와 복구 계획을 보여 달라. 새로운 교육정책을 말하기 전에 먼저 이주호 장관의 후유증을 어떻게 극복하고 회복시킬 것인지를 말하라. 그것이 바로 백년지대계라는 교육에 대한 진정성을 가늠하는 리트머스지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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