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D수첩 작가 6명 전원 해고에 대한 반발이 심상치 않다. 특히 수십 년 일한 일터에서 본인에 대한 통보도 없이 하루 아침에 "분위기 쇄신 차원"이라며 전격 해고한 것은 방송작가의 자존심마저도 짓밟은 폭거라는 비난이 나오고 있다. 이번 사태를 수수방관할 경우 이 같은 사태가 방송계에서 재현될 수 있다는 위기의식도 강해 오히려 방송작가들이 똘똘 뭉쳐 MBC를 '공공의 적'으로 규정하고 싸우는 형국이 되고 있다.

30일 여의도 MBC 사옥 앞에서 열린 PD수첩 보이콧 작가 결의대회 현장에서 만난 방송 작가들은 방송사 소속을 떠나 연대의 뜻을 밝혔다. 이번 해고 사태가 단순한 고용관계에서 비롯된 문제가 아니라 방송작가를 무시한 처사이면서 시사교양프로그램 작가 길들이기 뿐 아니라 언론과 표현의 자유에 대한 심각한 훼손이라고 받아들이고 있다는 반증이다.

이날 보이콧 서명 운동에 이름을 올린 작가는 778명이다. MBC, KBS, SBS, EBS 시사교양작가 뿐만 아니라 외주제작자사, 케이블, 지방사 소속 작가들까지 포함된 숫자다. 한국방송작가협회에 따르면 현직에서 일하는 시사교양작가 대부분이 서명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이번 사태를 두고 작가들의 분노가 어느 정도인지를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드라마 작가들도 이번 해고 사태에 대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이날 결의대회에서는 송지나, 노희경, 김영현, 김은숙, 최완규, 진수완, 김인영, 배유미, 장항준, 김은희 작가들이 보낸 문자와 메일 메시지를 공개했다.

<대장금> <뿌리 깊은 나무> 등 히트 작가인 김영현씨는 "그나마의 계약도 무시하고, 최소한의 동료의식도 내팽개친 MBC의 이번 행태는 전 방송작가들의 연대를 불러오게 될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알기 바란다"며 MBC를 비난했다.

<라이터를 켜라> 감독이면서 드라마 <싸인> 작가로 참여했던 장항준씨는 "김재철 사장님, 아무리 생각해봐도 MBC에서 해고되어야 할 사람은 오직 당신 뿐"이라며 이번 사태에 대한 격앙된 입장을 전했다.

드라마, 예능, 라디오, 번역 등 전 부문의 작가들도 동참 여부를 놓고 논의 중이어서 시사교양작가들의 연대를 넘어 향후 MBC에 대한 대대적인 보이콧 운동으로 전개될 것인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이번에 해고된 정재홍 작가는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이 싸움은 방송작가 전체와 MBC 경영진과의 싸움으로 확산될 것"이라며 "절대로 한두번 기자회견을 하고 그만두는 싸움이 아니다. 초유의 싸움에 직면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결의대회에서도 방송작가들은 이번 사태가 일방적인 해고에 따른 작가들의 '자존심'을 무너뜨린 상징적인 사건으로 받아들이며 분노의 목소리를 전했다.

SBS구성작가협의회 박진아 회장은 "서명을 받으러 가면서 느낀 것은 이런 일에 마음을 모으고 있다는 것"이라며 "언제든지 같은 논리로 행해질 수 있다는 것을 누구든지 알고 있다"고 말했다.

박 회장은 "이번 작가들의 대규모 보이콧이 어떤 의미인지 PD수첩 사태를 일으킨 주인공들은 잘 알아야 할 것이다. 절대 물러서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EBS구성작가협의회 임정아 회장은 "성명서 지지해달라는 문자를 보냈는데 왜 이제서야 왔느냐, 애타게 기다렸다는 반응이 많았다"며 "작가들은 컨베이어벨트에서 찍어내는 대체인력이 아니라는 것은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정재홍 작가는 마이크를 잡고 한동안 말을 잊지 못하다가 "제가 서 있는 뒷 쪽이 17년 동안 의 제 일터였다. 참담하다"면서 "제 개인의 문제라면 깨끗이 그만두겠지만 이번 사태는 방송 작가를 인정치 않는 폭거이자 시사보도프로그램의 정신을 짓밟은 폭거"라고 비난했다.

정재홍 작가에 따르면 현재 MBC는 정식으로 이들에게 해고 통보조차 하지 않은 상황이다. PD수첩 작가들은 MBC PD로부터 PD수첩팀이 작가를 구한다는 얘기를 듣고 배연규 PD수첩팀장에 확인을 부탁하자 '(해고에)재론의 여지가 없다'는 답변을 들었다. PD수첩 작가들은 해고 당사자로서 국장을 만나고 싶다고 했지만 '작가에게 할 얘기가 없다'는 얘기만 들었을 뿐이다. 그나마 해고 사유를 밝히라는 요구에 해고도 아니고 계약해지도 아닌 작가를 교체한 것이며 공식적인 이유는 "분위기 쇄신 차원"이라는 납득할 수 없는 답변만 늘어놨다.


 

정 작가는 "일반 사기업도 아니고 사회적 약자를 대변한다는 공영방송에서 시간도 안 주고 당장 나가라고 하느냐며 재고해달라고 했지만 더 이상 할말이 없다고 하더라"라고 울분을 토했다.

이승준 PD수첩 PD도 이번 해고 사태는 MBC 경영진들이 제작자율성을 침해해 결국 공정방송을 훼손한 사건으로 규정했다.

이 PD는 "6명의 작가는 그동안 PD들과 동고동락한 동료"라며 "이번 문제는 또한 프로그램 완성도와 직결된 문제다. 일선 PD들의 의견도 듣지 않고 제작자율성 원칙을 침해한 것이다. 즉각 해고 조치를 철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옥영 전 한국방송작가협회 이사장은 "아이러니컬하게도 이런 방식으로 작가들의 능력을 인정한 것이다. PD수첩을 무력화하는데 전원교체라는 일이 발생한 것은 작가들이 얼마나 기여해왔는지를 말해준다"며 "이번 문제는 작가들의 노동권과 생존권 문제이기도 하지만 본질적으로 언론의 자유, 공정방송, 우리사회 정의의 문제"라고 지적했다.

김 이사장은 "19세기 광부들이 카나리아를 탄광 속에 데려가는 이유는 일산화탄소에 민감하기 때문인데, 바로 시사교양 작가들이 방송의 카나리아"라면서 "MBC가 카나리아의 목을 조르고 있는데 (우리 사회에)일산화탄소가 얼나 있는지를 파악하는 것이 우선이다. 그들은 카나리아가 아니라 앵무새를 원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최승호 전 PD수첩 PD도 결의대회 현장에 함께하면서 훌륭한 작가들이 없으면 TV저널리즘은 불가능하다며 이번 해고 사태는 이성적인 잣대로 판단할 수 없는 사안이라고 비판했다.

PD수첩 작가 해고 사태가 방송계 전체 싸움으로 확전되고 MBC 파업 이후 공정방송 싸움으로 이번 문제가 부각될지도 관심사다.

한국PD연합회는 "지금 MBC 김재철씨는 시민사회로부터 전방위 사퇴압력을 받고 있다. 결국 ‘PD수첩 작가 전원 축출’은, 궁지에 몰린 쥐가 된 김재철이 살아남기 위해 빼든 마지막 꼼수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면서 " ‘PD 부당징계에 이은 작가 전원 해고’라는 이번 만행은, 언론의 사명과 자유를 짓밟은 쇠말뚝 테러로 대한민국 언론방송역사에 영원히 기록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전국 민주시민연합은 공동성명을 통해 "그들의 해고는 PD수첩을 아예 없애겠다는 시도로밖에 해석할 수 없다"면서 "작가적 양심과 시대의 양심을 지켜내기 위해 노력해온 작가들의 해고는 부당하고 부당하다. MBC는 작가들의 해고를 즉각 철회하고, PD 수첩을 정상화시켜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국방송작가협회 박영주 상임이사는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당연히 있을 수 없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며 "프리랜서 작가라고 하지만 이런 식으로 하면 안되는 일이다. 작가들은 정말 세상의 등불이 되고자 하는 사람들인데 함부로 꺼뜨리는 위험한 생각을 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2500여명의 회원을 가지고 있는 한국방송작가협회는 이번 사태에 대한 규탄 성명을 준비 중이며 드라마 등 각 부문 작가들과 협의해 이번 싸움의 동참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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