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작 과정에서 MBC 경영진들이 인터뷰를 거절하고 타 방송의 영상 자료 활용조차 거절당하는 등 우여곡절을 겪었던 KBS <추적 60분>의 ‘170일 만의 복귀, MBC파업 무엇을 남겼나’편이 25일 밤 전파를 탔다.

추적 60분은 조합원 6명 해고, 징계 92명, 손해배상청구액 195억원이라는 상징적인 숫자를 나열하면서 "그동안 MBC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라며 방송을 시작했다.

방송의 첫 화면은 지난 18일 오전 8시 MBC 노동조합이 조합원 총회를 열어 업무 복귀를 결정하고 다음날 조합원들이 출근하는 풍경. 장재성 MBC 엔지니어는 <추적 60분>과 인터뷰에서 "착잡하죠, 흥도 안 나고"라는 심경을 밝혔고, 최현중 MBC PD도 "들어가면 일을 집중해서 할 수 있을지가 지금 걱정이에요"라고 말했다. 지난 1987년 입사하고 파업에 참가했다가 대기발령 명단에 오른 임대근 기자는 지난 18일 업무에 복귀하는 동료 기자들을 보면서 눈물을 글썽이기도 했다. 파업을 중단하고 업무에 복귀했지만 여전히 해결되지 못한 MBC 모습을 여실히 보여줬다.

업무에 복귀하자 마자 첫날 조직개편과 인사발령 조치로156명 중 파업 참가자 54명이 인사발령 대상이 돼 기존 업무와 상관 없는 부서로 전보 조치 당한 당황하는 조합원들의 모습도 그려졌다.

정찬형 라디오 PD는 "원래 라디오 피디였는데 사회공헌실로 발령이 났는데 사회공헌실 사무실이 지금 어디에 있는지 알아보고 있다"면서 이번 인사 발령에 당황해하는 모습을 보였다.

KBS는 MBC 파업 과정 중 희생된 조합원들의 모습을 생생히 그렸지만 대부분 내용은 경영진과 노조의 입장을 나열하는 형식에 그쳐 아쉬웠다는 평도 많다. 지난 1월 파업에 돌입한 이후부터 7월 업무 복귀까지 내용을 총망라해 보여주면서 갈등을 빚었던 사안에 대해 경영진과 노조의 입장을 충실히 전하는 데 중점을 뒀기 때문이다. 

170일 동안 방송사와 주요 언론들이 다루지 않았던 MBC 파업의 문제를 지상파 방송을 통해 정면으로 드러내긴 했으나 새로운 팩트를 제시하거나 공정방송의 과제 및 전망 등을 심도 있게 다루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추적 60분은 MBC 파업의 쟁점을 ‘방송의 공정성’, ‘도덕성 논란’으로 키워드를 정해 경영진과 노조의 입장을 반영했다.

정영하 노조 위원장이 추적 60분과 인터뷰에서 "다루지 않는 뉴스, 보수언론은 다루는데 아니면 물타기하는 뉴스, 나도 보도했다 정도로 넘어가는 뉴스, 단신 처리하는 뉴스 이건 수도 없이 많고요"라고 발언하면 이어 이진숙 기획홍보본부장이 "공정성에 대한 열망, 갈구 이런 것들을 이해는 합니다. 다만 이런 것들이 사실에 근거한 공정성에 대한 열망이면 괜찮겠는데 이건 이런 게 공정한 것이야 라고 미리 방향을 정해놓고 보는 것은 아닌가"라고 말한 발언을 전하는 식이다.

내용 뿐 아니라 형식 역시 경영진과 노조의 입장에 대해 기계적 균형을 맞추려는 듯한 인상을 낳았다. 추적 60분은 파업을 지지하는 시민 2명, 파업을 비판하는 시민 2명의 인터뷰를 실었고 김재철 사장의 퇴진을 주장하는 박지원 민주통합당 원내대표와 MBC 파업은 노사 문제라는 이한구 새누리당 원내대표의 발언도 소개했다.

다만, 추적 60분은 "MBC 파업에 외신도 주목했다'며 미국 CNN, 미국 시카고트리뷴, 일본 교토통신 등이 MBC 파업 사실을 전한 뉴스를 인용 보도했다.

이미 보도된 내용이긴 하지만 지상파 방송 처음으로 의미 있는 자료도 공개됐다.

지난 5월 17일 시용기자 채용 입장을 묻기 위해 항의하는 과정에서 권재홍 보도본부장이 신체적 접촉을 당했다고 했다가 말을 바꾼 '뉴스 사유화' 문제에 대해 추적 60분은 관련 화면으로 권 본부장이 현장에서 유유히 빠져나가는 장면을 담은 MBC 기자회 제공의 영상을 방송에 내보냈다. 또한 인터넷에서 수백만 명이 다운을 받았던 <제대로뉴스데스크>도 KBS 프로그램에 방송이 나가는 역설적인 상황도 연출됐다. 추적 60분은 <제대로뉴스데스크> 보도 내용을 인용해 김재철 사장의 법인카드 사용 남용 의혹, 아파트 투기 의혹 등을 언급했다.

방송은 지난 2008년 4월로 거슬러 올라가 광우병 파동 당시 정운천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이 PD수첩 제작진들을 형사 고소한 뒤 제작진이 검찰 출두를 거부하자 담당 피디와 작가를 긴급 체포하는 장면도 전파를 탔다.

이춘근 전 PD수첩 PD는 추적60분과 인터뷰에서 "21세기에 언론사에서 정부 정책을 비판했는데 수갑 차고 체포되어 가는 곳이 21세기의 대한민국인가? 도대체 뭐가 잘못된 것일까?"라고 토로하기도 했다.

지난 2010년 '4대강 수심 6미터'를 제작한 최승호 전 PD수첩 PD도 추적60분과 인터뷰에서 이 보도로 MBC와 PD수첩 제작진의 갈등이 표면화되기 시작됐다면서 "프로그램을 만들었을 때도 그 프로그램을 갑자기 방송되기 전날, 김 사장이 그 프로그램을 들고 와라 내가 보고 난 뒤에 방송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또한 추적60분은 김재철 사장의 전임 엄기영 사장이 임기를 채우지 못한 채 방송문화진흥회의 압력을 받고 사퇴한 것을 두고도 "광우병 보도를 두고 퇴진 압력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며 결국 엄 사장의 후임인 김 사장이 정권의 입맛에 맞는 인사라는 비판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고 우회적으로 지적했다.

추적60분 강희중 CP는 방송 마지막에 "결국 우리 사회의 공정성에 대한 큰 시각차만 존재한다는 것만 확인할 수 있었다"면서 "KBS를 비롯해서 다른 언론사들에서도 유사한 진통을 겪었다. 정치권력이 바뀌면 계속 반복되는 한국 공영방송의 구조적 문제 중 하나인 것 같다. 노사를 넘어서서 왜 이런 문제가 반복되는지 고민해야할 때"라고 말했다.

한편, 이날 방송에서 사측의 입장은 대부분 이진숙 기획홍보본부장의 발언을 다른 방송사에서 빌려 따오는데 그쳤다. MBC 경영진이 추적 60분의 공식 인터뷰를 거절했기 때문이다. 타 방송사 화면도 쓰지 못하게 되면서 이진숙 기획홍보본부장이 TV 조선과 채널A, tvN과 가진 인터뷰 내용은 사진과 함께 음성을 대역해 원고를 읽는 형식으로 대체됐다.

추적60분 제작진은 "MBC의 입장을 듣기 위해 여러차레 인터뷰를 요청했다. 일부 진전된 논의가 오갔지만 최종적으로 공식적인 인터뷰에 응하지 않기로 밝혀왔다"며 유감의 뜻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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