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 대통령후보 경선에서 독주하고 있을 뿐 아니라 안철수 교수를 제외한 야권의 후보들보다 멀찌감치 앞서 달리고 있는 박근혜 의원의 역사관이 ‘역설적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선거일인 12월 19일까지 다섯 달 가까이나 남아 있으니 그가 앞으로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과 자신의 정치적 행적을 합리화하는 논리를 지금보다 더 조리있게 펼치려고 노력하겠지만, 지난 24일의 발언은 그런 시도가 성공할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그는 방송3사가 주최한 새누리당 대선 후보 경선 합동토론회에서 “대통령이 되면 5·16 쿠데타로 규정된 역사교과서를 개정할 것이냐”는 임태희 후보의 질문에 아래와 같은 요지로 대답했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제 발언에 대해 찬성하는 분이 50%가 넘었다. 역사인식을 달리하면 통합할 수 없다고 했는데 임 후보의 말대로 50%가 넘는 국민은 잘못된 국민이니 버리자는 얘기가 되지 않나? 역사학자나 국민이 해야 할 것을 현 정치인들이 미래는 놔두고 하면 통합이 되겠나? 우리 정치가 시대적 사명에 충실하기도 바쁘다. 지금 어떤 정치를 하고 정성껏 국민의 삶을 보살피고 나라를 발전시키나 하는 것도 (훗날 역사의) 도마에 오른다. 우리도 곧 역사의 평가에 오른다.

한 매체의 여론조사에서, 5·16 쿠데타를 ‘구국의 혁명’이라고 주장하는 박근혜 후보의 견해에 동조하는 응답자가 50%를 넘었다고 나온 결과는 그대로 인정하기로 하자. 그러나 그가 지난 16일 비슷한 발언을 한 직후에 리얼미터가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그에 대한 지지율이 13일의 41.2%에서 16일 39.5%, 17일 36.7%로 급속히 떨어진 현상은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그 무렵 박 후보가 정치적으로 다른 실수를 하지 않았다면 말이다.

이 글의 앞머리에 ‘박근혜 의원의 역사관이 역설적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고 적은 까닭은 이렇다. 그는 2007년 7월에 열린 한나라당 대선후보 검증토론회에서 ‘5·16은 구국의 혁명, 유신은 역사가 판단할 일’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한국일보 2012년 7월 18일자 기사(‘최선의’ 문구 직접 골라···과거사 정면 돌파 의지)에 따르면, 박 후보는 ‘5·16은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되어 있던 발표문안을 ‘불가피한 최선의 선택’이라고 직접 바꿨다고 한다. 그가 말하는 ‘구국의 혁명’은 4월 혁명 뒤 민주적 총선거의 결실로 구성된 장면 정부를 박정희 소장이 이끄는 군인들이 총칼로 뒤엎은 사건을 가리킨다. 대한민국 헌법 ‘전문’에는 ‘불의에 항거한 4·19 민주이념을 계승하고’라고 명시되어 있다. 박정희 일파가 나라의 주인인 국민의 뜻을 묻지도 않고 불법으로 정부를 전복한 것은 누가 보아도 쿠데타임이 분명하다.

박근혜 후보가 ‘5·16은 구국의 혁명이 아니라 헌정을 유린한 군사쿠데타’라고 명백히 선언하는 순간 그는 대통령선거에 나설 자격을 잃고 말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쿠데타로 정권을 탈취한 사람의 맏딸로서 1974년 8월 하순부터 1979년 10월 말까지 청와대의 ‘퍼스트레이디’라는 공식 직함을 가지고 아버지와 함께 권력을 행사했기 때문이다.

<박근혜 자서전-절망은 나를 단련시키고 희망은 나를 움직인다>를 보면 그의 아버지는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는 애국자’였던 것 같다. 그는 자서전 153쪽에 이렇게 썼다.

나의 눈에 비친 아버지는 당신의 조국, 대한민국 이외의 사심은 결코 없었다. 아니, 그보다 그분의 마음과 머릿속에서 결코 떠날 줄 모르는 ‘조국의 근대화’라는 일념은 다른 무엇도 들어갈 틈을 주지 않았다.

과연 그랬던가? 일본 육군사관학교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 ‘천황 폐하에게 충성’을 맹세하면서 일본군 장교로 근무하다가 8·15 이후에는 국방경비대 장교로서 남로당에 가입한 뒤, ‘여수·순천 반란 사건’에 가담한 ‘군대 내부 동료들’의 명단을 정보기관에 알리고 극형을 면한 사람의 가슴 속에 ‘조국’ 말고 자리를 잡을 실체가 달리 없었단 말인가?
 
박정희라는 인물이 지배하던 18년 동안 대한민국은 외형적으로 경제 성장을 이룬 것은 사실이지만 정치·사회·문화적으로는 칠흑 같은 암흑을 벗어나지 못했다. 5·16 쿠데타로 권력을 잡은 그는 1972년 10월 ‘대통령 특별선언’이라는 것을 통해 껍질뿐이던 헌정질서조차 무너뜨리고 ‘종신집권’의 길로 치닫다가 비명횡사했다. 박근혜 후보가 칭송하는 ‘아버지의 조국’은 바로 그런 나라였다. 그가 일인독재를 지탱하는 대가로 얼마나 많은 청년·학생과 민주인사들이 고문을 당하고 감옥에 갇히고 목숨을 잃기까지 했는지 박 후보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렇게 명백한 사실을 장차 어느 시절에 ‘역사의 판단’에 맡기자는 말인가?

박근혜 후보가 말하는 ‘역사’가 드러내는 치명적 결함은 역사와 국민이 완전히 동떨어져 있거나 상극적인 실체라고 보는 점이다. 한 국가와 민족의 역사는 ‘사람들’이 만드는 것이다. 그 사람들은 국민이기도 하고 민중이기도 하다. 박정희 정권 18년 동안 수많은 사람들은 ‘한 사람의 독재’에 맞서 싸웠다. 유신체제를 만들어 종신집권의 도구로 삼은 것은 한 사람의 독재자였지만, 그 체제를 극복하고 민주주의를 되살리기 위해 피와 땀을 흘린 역사의 주체는 국민이었다.

박근혜 의원은 올해 2월 13일 한나라당이 새누리당으로 이름을 바꾼 뒤 그 당을 이끌면서 ‘민생’을 전보다 더 자주 강조하기 시작했다. 최근 그의 ‘어록’에서 단연 두드러지는 어휘는 민생이다. “민생 챙길 일도 많은데 계속 역사논쟁을 하느냐?” “국민생활이 참으로 어렵기 때문에 무엇보다도 민생을 잘 보살피는 것을 최우선 가치로 생각한다.”

민생은 역사와 현실을 넘어 추상적 세계에 머무는 것이 아니다. 박근혜 후보가 재래시장을 찾아가서 악수를 하는 아저씨와 아주머니의 고달픈 삶도 민생이지만 친일 잔재를 청산하는 데 온 힘을 쏟는 운동가들, 1천 번이 넘게 매주 일본대사관 앞에서 항의 집회를 열어온 ‘위안부 할머니들’의 삶도 민생이다. 대학을 나오고도 일자리가 없어 거리를 헤매는 청년들도 ‘4대강 죽이기’에 반대하는 실천가들도 민생의 동일선상에 있다. ‘낙하산 사장 퇴진’과 ‘공정방송 회복’을 요구하면서 170일 동안 파업을 벌이다 회사로 돌아가자마자 인사 보복을 당하고 있는 MBC 노조원들도 민생의 한가운데 서 있는 사람들이다. 1천일이 넘도록 정리해고가 해결되지 않아 22명의 해고노동자와 가족이 고통 속에 세상을 등지게 한 쌍용자동차 사건을 박근혜 후보는 중대한 민생문제라고 밝힌 적이 있는가? 

박근혜 의원은 지난 10일 오전 영등포 타임스퀘어광장에서 대통령 후보 출마를 선언하면서 ‘내 꿈이 이루어지는 나라’라는 슬로건을 내세웠다. 그 꿈은 누가 꾸는 것일까? 박정희 정권 시기에 노동현장과 언론사들에서 강제해직 당 한 뒤 30년이 훨씬 넘어 일흔 살 안팎의 노인이 된 사람들이 아직도 열망하고 있는 ‘진정한 민주정부 수립’도 그 꿈에 포함되는가? 박근혜 후보는 ‘출정식’ 전날 밤 자신의 트위터에 이런 글을 띄웠다고 한다.

“누구든 자신의 미래를 꿈꿀 수 있고 잠재력과 끼를 맘껏 발휘할 수 있는 나라를 저는 꿈꾼다.”

대한민국의 모든 국민이라면 누구나 그런 나라가 이루어지기를 꿈꿀 것이다. 그러나 그릇된 역사와 정치를 바로 잡지 못하는 정치세력이 주장하는 ‘내 꿈이 이루어지는 나라’는 백일몽으로 그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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