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11일 곽노현 서울교육감이 심야의 폭풍 트윗을 날렸다. 이 정권과, 이 정권이 임명한 교과부장관의 오만한 망동에 대한 나비의 울부짖음이었다. 우선 곽교육감의 폭풍트윗들을 한 번 읽어 보자.

"학생인권옹호관처우조례가 시의회를 통과하기 무섭게 교과부가 저더러 재의요구를 하라고 하네요. 100% 재의결이 확실하지만 학생인권옹호관 임명을 최대한 늦춰보자는 거지요. 아님 말고 식의 꽃놀이패를 즐기는 듯한 못된 심보, 어찌할까요?"

"시대의 요구를 꼼수로 덮을 수 있다고 생각하면 치명적 착각이다. 인권의 행진을 명령으로 멈출 수 있다고 생각하면 과대망상이다. 착각과 망상은 뻘짓을 부른다. 학생인권조례를 제소하더니 이제 학생인권옹호관도 안된단다. 정신 차려라." "안타깝다. 애처롭다. 금년도 인권훼방꾼의 불명예는 따논 당상이다. 도대체 뭘 위해 누굴 위해 학생인권옹호관을 저주하고 가로막나? 스스로 뭘 하는지 개념이 없다. 시대정신과 싸우다 맛이 갔다. 교육은 간데없고 정치만 나뒹군다. 통재!"

"학생인권조례를 시비 걸고 학생인권옹호관을 가로막는 게 유엔아동인권조약 비준국의 교과부장관이 할 일인가요? 아이들에게 엎드려뻗쳐 시켜야 국격이 올라간다고 정녕 믿는 건가요? 시대착오적 해외토픽감 조치에 고개를 들 수 없네요."

"교육기본법상 공교육당국과 학교는 학생의 인권을 존중하고 보호할 법적 의무가 있습니다. 서울시교육청이 학생인권옹호관을 두는 건 설령 학생인권조례에 문제가 있다고 해도 문제 삼을 수 없지요. 학생인권옹호관을 시비 걸면 법위반입니다."

"닭의 목을 비틀어도 새벽이 오듯이 학생인권조례의 발목을 잡고 비틀어도 학생인권시대는 옵니다. 아니, 이미 와있습니다. 아이들의 열망속에, 어른들의 각성속에, 시의회의 조례속에 이미 용솟음칩니다. 교과부가 용을 써도 못 막습니다."

이 트윗들을 만약 하나의 트윗으로 요약하라고 하면 "서울시의회가 학생인권을 증진시키는 조례를 통과시키면 교과부는 계속 여기에 대해 재의요청을 한다. 이런 시대를 거스르는 자들 때문에 국격이 떨어진다" 이렇게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학생인권과 관련된 조례가 서울시의회를 통과하기만 하면 교과부 장관이 교육감의 뜻과 무관하게 재의요구를 요청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회에서 3분의 2 이상으로 통과하면 대법원에 제소하는 등 끝까지 발목을 잡는 상황에서 나온 트윗이다. 도대체 이런 일이 어떻게 발생할 수 있었을까?

이건 우리나라의 지방자치, 교육자치가 완전하지 못한 상태에서 생긴 법령의 빈틈을 교과부가 마구 남용하기 때문에 발생한 사태다. 우리나라의 지방자치는 시의회와 시장, 그리고 교육감이 고도의 자율권을 가지고 주민자치를 실행하는 그런 제도가 아니다. 중앙부처의 장관이 지방자치단체의 장을 괴롭힐 수 있는 장치를 마치 고려시대때의 기인제도처럼 슬그머니 남겨 놓은 것이다.

이런 중앙집권적 잔재의 폐단이 드러나지 않았던 까닭은 다만 이명박 정권이 들어서기 전에는 행안부 장관과 교과부 장관이 이 장치를 사용하지 않고 지방자치단체의 결정에 간섭을 자제했기 때문일 뿐이다. 그런데 이명박 정권의 장관들은 이 장치를 이용해서 지방자치단체를 괴롭혀왔다. 특히 2010년 지방선거 참패 이후 많은 자치단체장들을 내어준 것을 이 낡은 제도를 이용해서 벌충하려고 꼼수들을 쓰고 있다.

특히 교육자치법은 미완의 자치와 낡은 중앙통제의 불편한 조합이 아주 심각하다. 교육자치법 제 28조를 살펴보자.

제28조(시·도의회 등의 의결에 대한 재의와 제소) ①교육감은 교육·학예에 관한 시·도의회의 의결이 법령에 위반되거나 공익을 현저히 저해한다고 판단될 때에는 그 의결사항을 이송받은 날부터 20일 이내에 이유를 붙여 재의를 요구할 수 있다. ②제1항의 규정에 따른 재의요구가 있을 때에는 재의요구를 받은 시·도의회는 재의에 붙이고 시·도의회 재적의원 과반수의 출석과 시·도의회 출석의원 3분의 2이상의 찬성으로 전과 같은 의결을 하면 그 의결사항은 확정된다. <개정 2010.2.26>③제2항의 규정에 따라 재의결된 사항이 법령에 위반된다고 판단될 때에는 교육감은 재의결된 날부터 20일 이내에 대법원에 제소할 수 있다.

도대체 왜 이런 단서들을 남겨 놓은 것일까? 원래는 시도의회의 다수당의 전횡과 정치논리가 교육의 전문성을 훼손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다. 이는 최고 상위법인 헌법 31조 4항(④ 교육의 자주성·전문성·정치적 중립성 및 대학의 자율성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보장된다.)과 직결된다. 따라서 시도의 대의기구인 의회라 하더라도 교육에 관한 문제는 정당들의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함부로 좌지우지 말라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 이상한 꼬리가 붙는다.

①항에는 "....교육감이 교육과학기술부장관으로부터 재의요구를 하도록 요청받은 경우에는 시·도의회에 재의를 요구하여야 한다".라는 꼬리가 ④항에는 교육과학기술부장관은 재의결된 사항이 법령에 위반된다고 판단됨에도 해당교육감이 소를 제기하지 않은 때에는 해당교육감에게 제소를 지시하거나 직접 제소할 수 있다라는 꼬리가 붙었다. 이렇게 되면서 교과부장관도 시도의회의 조례에 간섭할 수 있는 근거가 생겼다.

이 꼬리도 사실은 교육감 뿐 아니라 교과부 장관 역시 국가수준에서 "교육의 자주성과 전문성"을 지킬 권리와 의무가 있기 때문에 붙은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 법에서 장관의 권한이 너무 강하다. 사실 "장관은....재의를 요청하여야 한다."로 끝나는 것이 교육자치 정신에 맞다. 그런데 이 법에는 교육감은 요청받으면 반드시 재의를 요구하게 되어 있다. 그러니 말만 요청이지 사실상 명령이다. 게다가 재의요구의 사유로 공익을 저해하는 경우 뿐 아니라 "조례가 법령을 위반할 경우"까지 포함시켜 놓고 있다. 법령에는 법률과 명령이 들어가는데, 교과부장관은 명령을 제정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지고 있다. 그러니 교과부장관은 자기 마음에 안 드는 조례가 어느 시도에서 제정되면, 그 조례가 위반이 되겠끔 명령을 개정한 뒤 법령위반을 이유로 들어가며 재의를 강제로 요구할 수 있는 것이다.

이주호 장관은 실제로 이런 행위를 했다. 학생인권조례가 마음에 들지 않자 실제로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을 개정한 뒤 학생인권조례가 법령위반이라며 대법원에 제소했다. 말로는 인권조례를 무력화하려는 것이 아니라고는 했고, 실제 개정된 시행령이 인권조례를 무효화 할수도 없었지만, 정작 보도는 인권조례 무력화되었다고 퍼뜨렸다. 그 결과 일선학교에서는 인권조례에 따르는 권리를 요구하는 학생들과 무력화되었으니 원래대로 돌아간거라고 주장하는 수구적인 교사들간의 혼란이 일어났다.

지방자치단체의 조례를 무력화하기 위해 중앙정부의 장관이 어거지로 시행령을 개정한 사례가 세계 어느나라에 또 있을지 참으로 궁금하다. 더군다나 중앙정부가 지방자치정부의 조례들 중 하필이면 학생 인권, 교권과 관련된 부분만 콕콕 찝어서 무력화시키려고 나오는 사례가 전 세계적으로 또 있을까 싶다. 있다면 독재국가나 공산국가의 국가원수가 국회에서 민주적이고 인권적인 법률을 제정하지 못하게 하는 책동 정도나 있을까?

물론 재의 요구권이 교과부 장관에게만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중앙정부의 장관에게 시도의회 조례에 대한 재의요구권이 남아 있는 것은 지방자치단체를 통제하고 길들이라고 있는 것이 아니다. 지방자치단체가 지역 이기주의에 매몰되어 자칫 국가 공동체의 이익을 훼손하거나 헌법정신을 벗어날 경우 이를 바로잡기 위해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시도의회가 "타 지역 학생들이 이 지역 학교에서 수학하고자 할 경우에는 이주 여부와 관계 없이 반드시 전입 고사를 쳐서 평균 우 이상의 학업성취도를 입증하여야 한다. 또한 해마다 실시하는 학업성취도 검사에서 평균 미 이하의 학생들은 이주여부와 관계 없이 이 지역 학교에서 수학할수 없다" 이 따위 조례를 만들었다면 교과부 장관은 재의를 요청해야 한다. 그리고 교육감이 일제고사 평균점수를 높이기 위해 이런 조례를 공표하였다면 이때는 교과부 장관이 나서서 교육감의 뜻을 거슬러가면서라도 강력하게 재의 요청을 해야 한다. 이런 조례는 반 헌법적이고 반 인권적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대한민국 헌법에 따르면 대한민국 정부의 존재 목적은 국민의 인권을 수호하기 위해서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학생들의 인권을 증진시키자고 만들어진 조례를, 헌법정신을 더 세세하고 효과적으로 구현하기 위해 만들어진 조례를, 그것도 국제법적 지위를 가진 협약에 근거한 조례를, 단지 자기 마음에 안든다는 이유로, 혹은 자기들과 친한 수구적인 단체, 교장들의 이익과 어긋난다는 이유로, 매우 사소한 법령상의 문제를(그것도 명확히 확인되지도 않은)들어 재의를 요구하고, 법원에 제소한다면 이는 교과부 장관에게 부과된 권한과 책무를 한참 넘어선 횡포다. 아니 넘어선 것이 아니라 정면으로 거스르는 횡포다. 이는 직권남용이며, 헌법을 거스른다는 의미에서 거의 반란이라고 할 수 있다.

국가는 오른쪽으로 편향된 이념집단과 광적인 속성을 가진 종교집단, 특정한 이익집단의 전유물이 아니다. 교육과학기술부 장관과 관료들은 이를 명심해야 한다. 그들은 이 세상을 자신들이 마음대로 통제할 수 있는 기계로 여길지도 모르겠지만, 실제 이 세상은 복잡계이다. 그러니 복잡계 현상에 대한 가장 직관적인 비유로 사용되고 있는 "브라질 나비의 날개짓이 북경에 토네이도를 일으킨다"는 비유를 심각하게 되새겨야 한다.

서울시교육청과 대한민국 정부의 거리는 브라질과 북경의 거리보다 훨씬 가깝고, 곽노현 교육감의 날개짓은 브라질의 나비의 날개짓 보다 훨씬 강렬하다. 그러니 그 결과는 토네이도보다도 훨씬 강력한 태풍이 될 것이다. 그 태풍은 바로 시대정신이다. 그들은 지금 시대정신을 거스르고 있다. 그들을 침몰시킬 바람은 곽노현 개인의 바람이 아니라 정의와 인권이라는 이 시대의 바람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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