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의 독보적 대선주자인 박근혜 의원이 10일 서울 영등포 ‘타임스퀘어 광장’에서 대선 출마 선언식을 갖고 자신의 통치철학을 밝혔다. 그는 지금까지 예민한 쟁점과 사안에 대해 자신의 입장을 드러내지 않아 ‘신중하다’는 평가와 ‘콘텐츠가 없다’는 상반된 평가를 받아왔다. 여론의 관심이 집중된 이날 대선출정식은 박 의원의 특성을 다시 한 번 드러내 보여준 자리였다.

박 의원은 우선 국민을 향한 자신의 헌신을 강조했다. 그는 “저는 오늘, 국민 한 분 한 분의 꿈이 이루어지는 행복한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해, 저의 모든 것을 바치겠다는 각오로 이 자리에 섰다”고 말문을 열었다. 그가 중장년층 이상에서 높은 지지를 받는 요인 중 그의 투철한 ‘애국심’과 ‘사리사욕이 없어 보인다’는 인식이 한 몫 하고 있다. 과거 영남 패권에 대한 향수는 덤이다. 이날도 참석한 지지자들 가운데는 유독 60대 이상의 고연령층이 다수 눈에 띄었다.

박 의원이 국정 청사진으로 수차례 언급하고 강조한 것은 ‘국민의 꿈이 이루어지는 나라’다. 그는 “무엇보다 국정운영의 기조를 국가에서 국민으로, 개인의 삶과 행복 중심으로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과거에는 국가의 발전이 국민의 행복으로 이어졌다”며 “하지만 지금은 국가의 성장과 국민의 삶의 질 향상과의 고리가 끊어졌다”고 말했다. 이는 과거 국가주도형 통치를 해온 박정희 전 대통령과 차별화된 모습을 부각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되나, ‘5·16 군사 정변’이나 ‘개발독재’ 등 논란이 되고 있는 박 전 대통령 통치에 대한 입장은 역시 밝히지 않았다.

그가 국민행복을 위한 3대 핵심과제로 제시한 것은 ‘경제민주화 실현’, ‘일자리 창출’, 그리고 ‘한국형 복지의 확립’이다. 우선 경제민주화에 대해선 “정당한 기업활동은 최대한 보장하고 불필요한 규제는 철폐하여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겠지만, 영향력이 큰 기업일수록 사회적 책임을 다할 수 있도록 하는 데는 과감하고 단호하게 법을 집행하는 정부를 만들겠다”고 밝혔다.

또 일자리 창출을 위해 ‘고용률 중심의 국정운영 체제’를 구축할 것과, “수출과 내수가 동시에 성장을 견인하는 쌍끌이 경제를 만들어 내수 중소기업을 키워나가면서 일자리를 창출하겠다”고 밝혔다. 또 한국형 복지로서 ‘생애주기별 맞춤형 복지제도’ 확립을 내세웠다.

“저는 국민과의 약속을 지켜왔다”…‘원칙·절제’ 통한 신뢰와 ‘침묵’으로 인한 비판, 그 양날의 칼

박 의원은 이날 “저는 그동안 정치를 해오면서, 저에게 손해가 되더라도, 한 번 드린 약속은 반드시 지켜왔다”며 “국민과의 약속을 지키는 일에는, 저의 정치생명을 걸고 싸워 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말했다.

확실히 박 의원이 긍정적으로 평가받는 지점은 ‘신뢰’와 ‘절제’라는 부분이다. 명확한 입장을 좀처럼 밝히지 않기에 어길 말이 별로 없는 것일 수도 있는 것 아니냐는 주장도 있을 수 있으나, 그는 확실히 여타 정치인과는 다른 모습을 보인 바 있다. 박 의원이 지난 2007년 한나라당 대선 경선 결과에 깨끗하게 승복하며 이명박 당시 후보에 대한 지지를 호소하고 다녔던 모습은 국민에게 ‘원칙’을 지키는 모습으로 다가서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그의 특성이 된 ‘침묵’, 특히 예민한 쟁점과 각종 현안에 대해 입장을 밝히지 않는 점은 줄곧 가장 큰 문제로 지적돼왔다. 그런데 박근혜 의원의 침묵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일반 국민의 지지율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이는 ‘정치 혐오’가 만연한 한국의 정치 현실에서 기인한다. 일반 유권자는 정치인의 말을 별로 믿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선 주자로서 밝혀야 할 사안에 대해 입을 열지 않는 태도로 일관하는 것은 그 자체로 상당한 논란을 자초할 수 있다.

박 의원은 이번 대선 출마 선언식과 기자간담회에서도, 늘 그가 비판받아온 ‘구체적 콘텐츠의 부재’, ‘이미지 정치’라는 약점을 되풀이해 보여줬다. ‘구체적으로 어떻게?’라는 것에 대한 답이 부재했다는 의미다. 그가 대선출마 선언식에서는 모처럼 구체적이고 명확한 입장을 밝히지 않을까 기대했던 이들로서는 다시 한 번 실망한 셈이다.

‘불통(不通)’ 이미지 이번에도 역시?

그가 지금껏 지녀온 ‘불통(不通)’의 이미지는 이날 자리에서도 엿보였다. 이날 박 의원이 대선 출마를 선언하기 직전 영등포 ‘타임스퀘어 광장’에서 한국대학생연합 소속 학생들이 '반값등록금을 실현하라'며 시위를 벌였으며 박 의원의 지지자들이 이에 거세게 항의해 잠시 충돌을 빚었다. 이와 관련, 기자간담회에서 반값등록금 정책에 대한 그의 입장을 묻는 질문이 나왔으나 박 의원은 답하지 않았다. 기자가 재차 이에 대해 묻자 “일자리도 일자리지만 사회가 공정하고 반칙이 허용되지 않는 공정한 사회를 정부부터 솔선수범해서 만들어가겠다는 것”이라며 동문서답을 하기도 했다.

또 청년들을 끌어안을 계획에 대해 “젊은 층은 우리나라의 미래인데 자신의 꿈을 키워가고 그런 기회를 잃는다는 게 개인적으로 불행한 일이지만 국가적으로도 손해이고 시급히 해결해야 할 문제”라며 원론적인 답변을 하는 데 그쳤다.

 


그는 자신의 ‘불통’ 이미지에 대한 지적에 “(제가 국민 여러분과 불통이라면) 지난 선거 때 어려운 사정이 있었는데 그렇게 지지를 해주셨겠나”라고 일축했다. 이어 “최근 불통이라는 말이 나오는데 당내 룰과 관련해 그런 말이 많이 나왔다고 생각한다”며 “불통과 소신은 엄격히 구분돼야 한다. 자신이 바라는 바대로 이뤄지지 않았다고 해서 상대방을 비난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날을 세우기도 했다.

한편 전날 새누리당의 대표적 비박근혜계 대선주자였던 이재오· 정몽준 의원이 불출마 선언을 한 것에 대해선 “사실은 주위에서 이런저런 조언을 할 수는 있겠지만 자신이 판단할 수밖에 없는 중요한 결심이라고 생각한다”며 본인들의 결정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또 그가 최근 대선 주요공약으로 내세우고 있는 ‘경제민주화’ 관련, 재벌의 소유구조 개선에 대한 언급을 하지 않았다는 지적에 “각계각층의 의견을 수렴해 방향을 잡아나가야 할 것”이라면서, 다만 “자본에 거품이 끼는 자기가 투자한 이상으로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불합리한 면이 있다”며 “이런 것은 좀 바로잡아 나가야 하지 않겠나”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기존의 순환출자는 기업의 판단에 맡기더라도 신규 순환출자 부분에 대해서는 우리가 규제를 검토 해야할 것”이라고 밝혀 재벌 소유구조 개선의 적극적 의지를 피력하지는 않았다.

한편 대북정책에 대해선 다소 유연한 입장을 보였다. 그는 “정치 상황이 변해도 인도적 지원 등은 꾸준하게 이어지도록 하자”며 “이렇게 신뢰가 굳어져 나갈 때 남북 간의 경협이나 북한 인프라 구축 문제로 이어나갈 수 있다”고 밝혔다. 또 “핵을 빼놓고도 협력할 일이 많다”며 “핵 문제 때문에 모든 게 스톱돼선 안될 것”이라고 말했다.

또 한반도 평화 정착을 위한 방안으로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를 수립하겠다고 했다. 박 의원은 “안보는 확실하게 다지면서, 북핵문제 진전을 위한 노력을 강화해 나갈 것이며, 새로운 안보 환경에 효율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통합적인 외교안보 콘트롤 타워도 구축하겠다”고 밝혔다.


정수장학회·MBC 파업 문제 “내가 관여할 일 아니다”

그는 여론의 관심을 모으고 있는 ‘정수장학회’나 MBC 장기파업 문제에 대해서도 “자신이 관여할 일이 아니다”라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정수장학회 환원 문제에 대해선 다소 언성을 높여 “정수장학회는 지난 노무현 정부 시절에 이것을 바로잡아야 한다면서 정권이 5년 내내 모든 힘을 기울인 일” 이라며 “만약에 거기서 (저의) 어떤 잘못이 있다면 그 정부에서 해결이 났을 것”이라고 날을 세웠다. 이어 “정수장학회의 이사장을 했었지만 오랜 전에 이사장을 그만뒀고 엄연히 공익기관”이라며 “아무 관계도 없는 사람이 들어가서 이사장 관두라고 말하는 것이 법치국가에서 말이 안되는 얘기”라고 일축했다.

MBC의 공영방송 투쟁과 관련해선 “참 안타까운 일이고 국민들이 이것 때문에 많이 불편하게 계셨고 빨리 해결되길 바란다”며 “이것은 노사 간에 빨리 해결하는 수밖에 없는데 (국회가) 개원했으니까 어떻게 할 건지 상임위에서 논의가 있겠죠”라고 말했다. 대선까지 장기화될 가능성이 높은 공영방송 파업 문제에 개입할 의지가 없음을 재확인한 것이다.

이날 박근혜 의원의 대선 출마 선언을 기점으로 여야는 본격적인 대선 레이스 경쟁에 돌입하게 됐다. 여야는 현재 `필승후보'를 선출하기 위한 치열한 내부 경쟁에 돌입했다. 새누리당은 `원 샷 경선'을 통해 8월20일, 민주통합당은 `지역별 순회경선'을 통해 9월23일 대선후보를 각각 선출하는 일정표를 제시해 놓은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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