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대선에 나가기 위한 발판을 마련하려는 ‘쇼’다.” “그것이 ‘쇼’라도 꾸준히 진보행보를 하는 모습은 평가해야 한다.”

정동영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은 어느 순간부터 여의도 정가에서 가장 진보적인 행보를 하는 정치인이었다. 그의 이런 행보를 보며 의문의 시선을 보내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특히 정치담당 기자들 사이에서는 후한 평가를 받지는 못했다.

정치권에서도 ‘이미지 정치’에 강하다는 평가를 받는 그이기에 잇따른 진보 행보를 이미지 메이킹 차원으로 바라봤기 때문이다. ‘희망버스’ 현장, 쌍용자동차 투쟁 현장, 강정마을 등 사회적으로 굵직한 진보 의제가 불거진 곳에는 어김없이 그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때로는 아스팔트에서 밤을 세워가며 사회적 약자와 어깨동무하고 함께 구호를 외치며 그들과 하나가 되고자 애를 썼다. 희망버스를 타고 한진중공업을 찾았을 때 현장 노동자들의 반응은 냉랭했다. 한두 번 오다 말겠지라는 인식이 강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꾸준한 실천을 이어갔고, 점차 현장 노동자들도 그의 진정성을 인정하는 분위기였다. 정동영 상임고문은 자신에게 드리워진 이미지를 조금씩 깨나가며 진보의제를 사회 쟁점으로 부각하는 데 힘을 쏟았다.

그러나 그를 향한 의문의 시선이 완전히 해소된 것은 아니었다. 진보 행보의 종착역은 결국 2012 대통령선거 도전이 될 것이란 시선이었다. 사실 2007년 대선 실패 이후 ‘정동영계’로 분류되던 이들은 많이 떨어져 나갔다.

민주당 탈당 이후 2009년 4월 29일 전주 덕진 재보선에 무소속으로 나설 때 또 측근들이 떨어져 나갔다. 정동영 상임고문이 대통령에 대한 꿈을 버리지 못해 무리수를 두고 있다는 비판도 적지 않았다.

대선을 6개월도 남기지 않은 최근까지 정동영 상임고문의 행보를 놓고 논란이 무성했다. 마지막까지 곁을 지켰던 측근들이 “이번에는 내려놓으셔야 한다”고 고언을 남겼다는 얘기도 있었다. 실제로 정동영 상임고문을 곁에서 보좌했던 핵심 측근은 “이번에 다시 대선에 나서겠다고 한다면 그동안의 진보 행보가 모두 대선을 위한 쇼라는 것을 드러내는 것”이라면서 대선에 출마하지 않는 것이 ‘정치인 정동영’의 미래를 생각할 수 있는 선택이라고 진단했다.

그러나 정동영 상임고문이 결국 대선에 출마할 것이며, 사실상 캠프를 꾸렸다는 분석도 이어졌다. 하지만 정동영 상임고문은 ‘대선 불출마’를 선택했다. 진보의제의 상징적인 공간으로 떠오르고 있는 서울 대한문 앞에서 9일 오전 기자회견을 열고 대선 불출마 뜻을 밝혔다.

정동영 상임고문은 “저는 오늘 이번 대선에 출마하지 않을 것임을 말씀드린다. 제가 가고자 하는 새로운 길은 그동안 추구해왔던 가치와 정책을 실현 시킬 수 있도록 정권교체를 이루는데 저를 바치는 것”이라고 말했다.

정동영 상임고문에게 대선 도전 의지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19대 총선에서 서울 강남 한복판인 강남을에 출마해 ‘한미 FTA’ 문제의 대척점에 서 있었던 김종훈 전 통상교섭본부장과 맞대결을 펼친 것은 그의 또 다른 승부수였다.

만약 강남 한복판에서 살아온다면 그는 정치 재도약의 전환점을 마련할 수도 있었다. 민주당 간판으로 서울 강남을에 출마해 40%가 넘는 득표율을 기록했지만 결국 새누리당(옛 한나라당) 벽을 넘어서지는 못했다.

현역 국회의원으로서 진보의제 전파에 나설 수 있는 기회가 차단된 셈이다. 현실적으로 정동영 상임고문이 대선에 출마한다고 해도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의 벽도 통과하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문재인 상임고문은 물론 김두관 경남도지사, 손학규 상임고문, 정세균 상임고문 등 만만찮은 경쟁자가 즐비하기 때문이다. 대선 출마를 해놓고 참담한 예선 성적표를 내놓는다면 출마하지 않은 것만 못한 상황이 될 수도 있다.

정치인에게 ‘권력 의지’는 나쁜 게 아니다. 정동영 상임고문은 2002년, 2007년 대선 출마를 선언했고, 2012년 역시 대선출마 선언의 직전까지 갔다 ‘불출마’를 선택했다. 2007년 대선에서 이명박 현 대통령의 대척점에 섰던 대선후보가 바로 정동영 상임고문이다.

정동영 상임고문은 이번 불출마 선택으로 재기의 발판이 마련될지도 모른다. 그를 향해 쏟아졌던 의문의 시선을 해소하면서 ‘진보 쇼’는 결국 진정성이 담긴 선택이었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기 때문이다.

정동영 상임고문은 2013년 체제에서도 계속 ‘진보 의제’를 꾸준히 이끄는 중량급 정치인으로 남는다면 2017년 대선에는 그에게 다시 기회가 찾아올지도 모른다.

정동영 상임고문은 “저는 지난 3년간 진보적 민주당의 노선을 만들어내고 실천하는데 온 힘을 다했다. 이 노선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대선에서 민주당이 승리해야 한다. 이것이 지금 국민으로부터 저에게 내려진 역사적 사명이며 새로운 길의 완성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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