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블TV와 삼성전자가 협력해서 새로운 스마트TV 생태계를 준비하자.” 삼성전자 윤부근 소비자가전 담당 사장의 말이다. 윤 사장의 발언이 주목되는 것은 이 발언의 장소 때문이다. 그는 지난 1일 ‘2012 디지털TV쇼’에 참석해, 케이블 업계 관계자들을 향해 ‘러브콜’을 던졌다.

윤 사장은 “케이블 TV 업체와 삼성전자가 각각 자신의 장단점을 분석하고 협력해서 새로운 시대를 준비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가전사로서는 유료 방송 가입자가 1500만 명에 달하고 있는 케이블쪽의 가입자와 콘텐츠의 장점을, 케이블로서는 스마트TV라는 디바이스를 통해 플랫폼 영향력을 확대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물론 업계 간에 제휴나 협력 모델은 그동안 많았다. 그럼에도 이번 발표가 주목되는 점은 이번 협력 모델이 망 중립성 이슈와도 관련돼 있기 때문이다. 망 중립성 원칙은 ‘망을 소유한 네트워크 사업자가 망을 이용하는 사업자나 이용자를 차별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국내에서 이미 보이스톡 논란 등을 보면 망 사업자인 통신사가 망 이용 사업자들을 차별하고 있다는 논란이 큰 상황이다. 이 상황에서 C(콘텐츠), P(플랫폼), N(네트워크), T(터미널) 사업자 간에 협력 모델이 나온 셈이다.
 

사실 삼성전자가 케이블 업계쪽을 만나 협력 의사를 전한 것은 최근 KT와의 갈등 이후 시도된 것이어서 주목된다. KT는 삼성 스마트 TV가 망 사용 대가를 지불하지 않고 과도한 트래픽을 유발하고 있다며 지난 2월10일 오전9시부터 14일 오후5시30분까지 삼성 스마트 TV의 서비스 접속을 차단했다. 그 결과 KT의 초고속 인터넷 가입자 782만 명 중 삼성 스마트TV의 이용자 약2만4000명이 약 5일간 삼성 스마트TV 서버에 접속할 수 없게 됐다.

방송통신위원회가 판단한 내용만을 보면, 방통위는 삼성쪽 손을 들어준 것이었다. 방통위는 삼성 스마트TV 이용자만을 대상으로 KT가 접속 차단을 한 것에 대해 “전기통신설비 또는 그 밖의 경제적 이익 등을 다른 이용자에 비해 부당하게 차별적으로 제공하여 이용자의 이익을 침해한 것”이라고 밝혔다. 방통위는 또 “(2010년 2월)삼성 스마트TV 출시 후 유료 콘텐츠 구매자는 2700명이고 삼성 스마트TV 서버에서 발생하는 일평균 데이터양도 50기가로서 조사 당시 트래픽 폭증 우려는 없었다”고 밝혀, ‘과다 트래픽’을 주장한 KT와 다른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삼성쪽이 얻은 ‘실익’은 없었다. 방통위는 KT의 위법 행위라고 판단하면서도 KT가 이미 차단을 풀었다는 이유 등으로 KT에 시정명령 및 과징금을 부과하지 않았다. 더군다나 방통위는 이용자 피해가 적었다고 밝히기도 했다. 망을 가진 통신사가 정당한 이유 없이 TV망을 끊고 이용자들에게 피해를 줬는데도 방통위가 제대로 된 규제를 하지 못한 것이다. 오히려 방통위는 망중립성을 고려해 이 같은 판단을 했다고 밝혀, 방통위는 국내에서의 망중립성 논의를 통신사에 편향된 원칙으로 판단했다.

그렇다면 망을 이용하는 이용자 입장에서는 통신사에 휘둘리는 규제 기관에 대한 비판하거나 KT 서비스를 이용하지 않고 다른 통신사로 갈아탈 수 있다. 그렇다면 망을 이용하는 사업자 입장에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이 점에서 삼성쪽이 케이블쪽과 협력하는 것은 망 안정화 측면으로 볼 수 있다. 한 케이블 방송사 관계자는 “사업자가 망을 소유한 KT와 정면으로 부딪히기 힘들다면 다른 사업자의 망을 안정적으로 쓰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며 “케이블과 삼성의 협력 모델은 국내에서 스마트TV가 망중립성 이슈를 피하는 방법”이라고 말했다. 

삼성전자 입장에서는 스마트TV 셋톱박스를 케이블 가입자들에게 전부 배포하면, 케이블쪽에서 삼성쪽에 망 이용 대가를 물릴 수 없는 점도 예측했다. 만약, 디지털 케이블 가입자 370만 명을 비롯해 아날로그 가입자의 절반인 700만 명만 확보해도, 삼성쪽은 약 1000만 명 가입자에 대한 망 이용 비용은 부담하지 않는 셈이다.

하지만 이 같은 협력 모델이 삼성쪽 희망대로 흘러갈지는 미지수다. 최근 통신사들은 보이스톡 논란을 계기로 과다 트래픽에 대한 우려를 전하며 과금을 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방통위도 트래픽 관리 명목으로 서비스 차단을 가능하게 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보이스톡 등 모바일 인터넷 전화보다 스마트TV는 트래픽이 더욱 몰리기 때문에, 과금 액수도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다만, 통신사가 직접적인 과금이 플랫폼 사업자나 제조사와의 제휴를 통해서 이를 해결할 가능성도 있다. 김미송 현대증권 연구원은 최근 보고서에서 “직접적인 과금이 어렵다면 제휴를 통해 해결하는 방법도 좋은 대안이 될 수 있다”며 “플랫폼과 제조사와의 제휴를 통해 수익 기반을 확보하는 전략”이라고 밝혔다. CPNT 사업자 간에 ‘합종연횡’이 벌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KT에 뺨 맞고 케이블을 만난 삼성전자가 KT와 다시 눈이 맞을 수도 있다는 점이다. 국내 망중립성 논쟁이 그만큼 변화무쌍할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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