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통신위원회가 유무선 망에 장애를 유발하지 않았는데도 관련 서비스를 차단할 수 있는 규제를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통신사가 자의적으로 서비스를 차단할 수 있어 방송, 포털 등 망 이용 사업자를 비롯해 이용자들로부터 반발이 예상된다.

26일 미디어오늘이 입수한 ‘인터넷 망에서의 합리적 트래픽 관리 기준(안)’에 따르면, 방통위는 ‘합리적 트래픽 관리의 범위’로 “기술 특성상 망에 장애를 유발할 수 있는 콘텐츠, 애플리케이션, 서비스에 대해 혼잡 또는 장애 소지를 최소화하기 위해 국내외 표준화기구가 제정한 표준을 준수할 것을 사전에 권고하고, 정당한 사유 없이 이에 따르지 않는 콘텐츠 등을 망 혼잡 시 우선 차단”하도록 규정했다.

방통위는 또 “망 혼잡을 유발할 우려가 있는 P2P 트래픽에 대해 특정 조건하에서 제한”하고 “무선의 경우 P2P 외에 망 혼잡을 유발하는 대용량 트래픽도 제한할 수 있다”고 밝혔다. 방통위는 ‘P2P(peer-to-peer) 서비스’가 아니라 ‘P2P 트래픽’이라고 명시해, 파일 공유 서비스 이외에도 컴퓨터 간 이뤄지는 커뮤니케이션 전반에 대해서도 트래픽을 명목으로 제한이 가능하도록 했다.

특히, 방통위는 통신사가 상시적으로 다양한 콘텐츠를 차단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인터넷접속서비스제공사업자의 트래픽 관리방침 공개양식’에 따르면, 트래픽 관리는 ‘망 부하시’와 ‘상시’로 나눠, 유무선에 적용되게 했다. ‘상시 관리’의 경우 불법·유해 콘텐츠, 이용약관 상 제한 서비스, 망 위해 트래픽, 기타 등으로 나눠, 여러 명목으로 콘텐츠를 차단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뒀다.

이 기준안은 작년에 12월 제정돼 올해 1월부터 시행한 ‘망 중립성 및 인터넷 트래픽 관리에 관한 가이드라인’에 대한 세부 사항이 담긴 것이다. 방통위쪽은 지난 15일 망중립성 정책자문위원회에서 이 기준안이 담긴 문건을 배포했다. 망중립성 정책자문위원회는 통신사, 포털, 방송사, 시민단체 등이 소속된 위원회다. 이 기준안은 이르면 올해 하반기 대선 전에는 고시 등을 통해 시행될 것으로 업계에서 알려지고 있다. 

이 같은 안이 알려지자, 통신사를 제외한 나머지 사업자를 비롯해 시민단체들은 격렬하게 반발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 안이 확정될 경우, 통신사가 망을 이용하는 서비스 상당수를 차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례로, 카카오톡, 보이스톡 등 채팅·통화 서비스, 스마트TV 등 방송 서비스, 각종 스포츠 관련 인터넷 중계 서비스, 파일 공유 웹사이트 등이 과다 트래픽을 차지하지 않더라도 ‘망 혼잡’이 우려된다는 이유로 차단될 수 있다.

한 방송사 관계자는 “망 중립성 원칙에 대해 사업자 간 합의가 이뤄지지 않고 있는데, 방통위가 트래픽 지침부터 내놓는 게 말이 되나”며 “본말이 전도된 규제”라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사업자 간 이견이 심하고 반발이 큰 데 통신사쪽에서 방통위를 압박하니까 이런 안이 만들어진 것”이라며 “ICT(정보통신기술) 컨트롤 타워가 되겠다는 방통위의 현실”이라고 꼬집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트래픽을 관리하는 방법이 다양할 수 있는데 ‘혼잡 우려’가 있을 때 콘텐츠, 앱, 서비스를 차단하는 것은 굉장히 황당한 이야기”라며 “통신사가 맘대로 콘텐츠를 차단할 수 있게 통신사를 위한 무소불위 규제를 만드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특정한 서비스의 내용까지 보고 차단하는 것 아니냐”며 “검열이자 표현의 자유 침해 문제”라고도 지적했다.

더군다나 방통위가 논란이 되는 이 기준안을 검토하면서도 공개적인 논의를 꺼리고 있는 것도 지적됐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방통위는 망중립성 자문위원들에게 이 문건을 회의 시간에만 배포하고 반드시 다시 걷어갈 정도로 공론화를 꺼리고 있다”며 “유럽의회 같은 외국에서는 망중립성 논의 초안이 인터넷에 공개될 정도인데, 국내 논의는 밀실에서 진행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대선 전에 공론화 없이 이 안이 확정될 경우, 정치적으로 민감한 콘텐츠를 차단하는데 악용될 수도 있다.

시민단체쪽에서도 이용자들의 피해를 우려하며 공론화를 촉구하고 나섰다. 윤철한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시민권익센터 팀장은 “통신사가 자의적으로 (서비스를) 해석해 마음대로 할 수 있어 소비자 피해가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한편, 방통위측은 이번 기준안에 대해 확정된 게 아니라며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조경식 대변인은 통화에서 “기준안을 밖으로 내보낸 적이 없고 기준안이 확정되지도 않았다”며 “방통위(상임위원)에 보고할 자료인지 주무관, 사무관이 단순히 만든 것인지 확인해 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창희 통신경쟁정책 과장은 기자와 만나 “‘기준안’은 회의 참석자로부터 나온 것 같은데 방통위 입장이 정해진 것은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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