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유럽에서 2000년대 중반부터 뜨겁게 달아오른 망중립성 논의는 경쟁과 기술혁신에 관한 내용이 핵심을 이루는 것이지만, 미국에서는 관련 법규의 조항 해석 및 연방통신위원회(FCC, Federal Communications Commission)의 규제 권한에 대한 논란 뿐 아니라 정치적 표현의 자유문제까지 연결되어 자못 복잡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미국 통신법(Telecommunications Act, 1996년 개정) 제2편(Title II)은 이른바 보편적 통신사업자(common carrier)에 대한 연방정부의 규제 권한을 정하고 있다. Common carrier의 정확하고 구체적인 정의는 미국 통신법 자체에도 제시된 바 없지만, 여기서 common 이라는 말은 그 서비스를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공중 일반에게 차별 없이 제공해야 하고 임의로 거부해서는 안된다는 뜻에서 ‘contract carrier’와 대비되는 의미를 가지므로 ‘보편적 서비스를 제공해야 하는 통신사업자’(이하 common carrier는 ‘보편적 통신사업자’로 표기)라고 일단 이해할 수 있다. 전통적으로 전화사업자가 여기에 해당한다는 점은 의문이 없다.

그러나 인터넷 접속서비스 제공자도 보편적 통신사업자에 해당하는지에 대하여는 논란이 제기되었고 DSL 기술을 사용하건 케이블모뎀 기술을 사용하건 인터넷 접속서비스는 통신/전송 서비스가 아니라 정보서비스(information service)로 분류되어 적어도 보편적 통신사업자에 적용되는 엄격한 규제 대상은 아니라는 점이 Brand X 사건(2005)에서 확인되었다. 그러나 연방대법원은 이 사건에서 인터넷 접속서비스 제공자에 대하여도 연방통신위원회가 (상대적으로 완화된) 규제 권한을 행사할 수 있음을 동시에 확인하였다. 즉, 정보서비스에 대하여도 연방 통신법 제1편(Title I)에 규정된 매우 폭넓은 ‘부수적 규제 권한’이 연방통신위원회에 있다는 것이다(통신법 154조(i): 연방통신위원회는 본 장의 내용과 어긋나지 않는 한도에서 그 임무를 수행하는 데 필요한 일체의 규칙과 규정을 제정하거나 명령을 내릴 수 있다).

이러한 부수적 규제 권한에 터잡아 연방통신위원회는 2008년 비트토런트 프로그램의 사용을 제한한 컴캐스트 사에 대하여 시정명령을 내렸으나, 컴캐스트 사가 불복하여 제기된 사건에서 연방대법원은 연방통신위원회가 그 부수적 규제 권한을 초과하여 위법하게 규제하였다는 취지로 판결하였다. 요컨대, ‘그 임무를 수행하는 데 필요한 일체의 규칙, 규정, 명령’이라는 표현이 법률에 있다고 해서 그 권한이 무한정 확대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 판결 역시 인터넷 접속서비스(정보서비스) 제공자에 대하여 연방통신위원회가 적절한 한도에서 규제할 권한이 있음을 재확인하였고, 이에 따라 2010년 연방통신위원회는 인터넷 개방성 규칙(Open Internet Rules)이라는 규제 원칙을 제정하여 공포하였다.

인터넷 개방성 규칙에 대해서도 2011년 버라이즌 사 등이 불복하여 현재 재판 절차가 진행 중이지만,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투명성: 초고속인터넷 망서비스 제공자는 자신의 망관리 관행, 접속 속도, 이용 조건 등을 투명하게 공개하여야 한다.
  2. 차단 금지: 유선인터넷 망서비스 제공자는 합법적인 내용, 애플리케이션, 서비스, 무해한 장치를 차단해서는 안 되며, 무선인터넷 망서비스 제공자는 합법적인 웹사이트, 자신의 음성 전화 또는 화상 전화 서비스와 경쟁관계에 있는 애플리케이션을 차단해서는 안 된다.
  3. 불합리한 차별 금지: 유선인터넷 망서비스 제공자는 합법적인 트래픽을 불합리하게 차별해서는 안 된다. 특정 서비스나 웹사이트에 대한 접속 속도를 늦추거나 접속 품질을 떨어뜨리는 것도 불합리한 트래픽 차별이 될 수 있다.

미국에서 진행되는 논의에서 주목할 점은 두 가지이다.

첫째, 규제나 방임 어느 쪽도 능사는 아니라는 점이다. 미 연방통신위원회는 기술혁신과 경쟁을 확보하기 위하여 중립성을 강제할 필요가 있다는 일견 바람직한 정책 목표를 내세우면서 규제 권한을 의욕적으로 행사하려 시도하지만, 미국 법원은 규제자의 권한 확대를 매우 경계하는 입장을 분명히 밝히는 한편 적절한 수준에서의 규제는 필요하다는 미묘한 균형을 지향하고자 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둘째, 기술의 진전 상황 및 시장의 경쟁 현황에 대한 고려가 필요하다는 점이다. 유선인터넷과 무선인터넷에 대한 규제 전략을 분명히 구분하는 미연방통신위원회의 입장은 바로 이점을 중요하게 고려하는 것이다. 유선망과 무선망은 그 기술 진전상황도 다르고, 경쟁의 실상 또한 다르다. 또한, 무선인터넷 서비스 제공자는 유선인터넷과는 달리 유한한 공적 자원인 주파수 할당을 받는 과정에서 이미 강력한 규제의 대상으로 포섭될 여지도 있다는 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유럽 연합에서의 망중립성 논의는 미국에 특유한 이러한 법 해석 논란이나 규제자의 권한에 대한 논란에서 자유롭다. 유럽연합은 기술혁신과 공평한 경쟁 간의 관계를 주목하며 각 회원국 규제자의 책무에 대한 큰 윤곽을 2007년에 텔레컴즈 패키지(Telecoms Package)라고 알려진 입법지침으로 채택하였다. 그 핵심적 내용으로서 기술 및 서비스 중립성(technology and service neutrality)이 각 회원국 입법이 추구해야 할 목표임을 천명하고, 보다 중립적이고 개방된 인터넷을 보장할 것과 적절한 최소 품질 수준을 정할 규제 권한을 부여하며, 유럽연합 회원국 전기통신서비스 규제자 공동기구(BEREC, Body of European Regulators for Electronic Communications)을 창설하였다.

유럽연합 집행위원회(EU Council)는 2011년 12월 13일에 채택한 유럽에서의 인터넷 개방성 및 망중립성에 관한 집행위원회 의결(Council conclusions on the open internet and net neutrality in Europe)에서 다음과 같은 권고를 하고 있다:

  • 트래픽 관리 문제를 모니터함으로써 망중립성을 저해하지 않는 비례적이고 투명한 트래픽 관리가 필요한 한도에서 허용될 수 있도록 할 것.
  • 인터넷 관련 사업자와 이용자들 상호간에 트래픽 처리비용의 분담 및 재정의 흐름을 분석할 것.

영국의 경우, 통신서비스 규제자(Ofcom)는 2011년 11월 24일 망중립성에 대한 규제 전략(Ofcom’s approach to net neutrality)을 다음과 같이 수립한 바 있다.

  • 투명성 확보: 인터넷망 서비스 제공자는 자신의 서비스 내용, 트래픽 관리 관행 등을 투명하게 공개함으로써 소비자들이 합리적 선택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 기본형 서비스의 개방성 확보: 관리형 서비스(Managed services)와 대비되는 기본형 인터넷 접속서비스(best effort internet access)는 개방성이 확보되어야 기술 혁신의 기틀이 마련될 수 있다.
  • 서비스 품질 저하 방지책 모색: 관리형 서비스에 대한 우대는 허용되지만 이로 인하여 기본형 서비스의 품질이 현저히 저하되는 사태가 허용될 수는 없다.
  • 망사업자가 제공하는 서비스와 대체 관계에 있는 서비스(alternative services)를 제한하는 것은 매우 바람직하지 않다(highly undesirable).
  • 트래픽 관리의 유용성은 인정되지만, 관리나 제약은 트래픽 기반으로 이루어져야지 서비스 기반으로 이루어져서는 안 된다.

영국은 무선 통신망 서비스 시장의 경쟁이 비교적 활발하다고 판단되어 규제자가 현재로서는 개입을 자제하고 있는 실정이며, 시장 상황을 면밀히 관찰하여 개입의 필요를 판단한다는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한국의 방송통신위원회도 외국 여러 사례에 결코 뒤지지 않을 내용을 담은 망중립성 및 인터넷 트래픽 관리에 관한 가이드라인을 2011년 12월 26일에 이미 채택한 바 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 이용자 권리를 명시적으로 선언: 무해하고 적법한 기기나 서비스를 이용할 권리와 트래픽 관리에 관한 정보를 제공받을 권리가  이용자에게 있음을 분명히 선언.
  • 투명성: 트래픽 관리 내용을 투명하게 공개해야 할 의무를 망사업자에게 부과
  • 합리적 트래픽 관리: 차별적 대우를 금지하되 합리적 트래픽 관리는 일정한 경우에 허용됨을 규정
  • 관리형 서비스 인정: 그러나 기본형 서비스의 품질이 적정 수준으로 유지되는 한도에서 관리형 서비스가 허용됨을 명시

그러나, 문제는 방통위 자신이 이러한 가이드라인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거나, 이해하고도 그것을 제대로 집행할 의지를 보이지 않는다는 비판의 빌미를 스스로 제공하는 데 있다.

첫째, 미국과 유럽의 규제자들이 공히 ‘투명성’ 확보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고 방통위 역시 투명성을 전면에 내세우고는 있으나, 트래픽 처리 원가나 망설비 구축비용이나 지금껏 망사업자들이 취한 이득의 규모를 투명하게 파악하여 합리적 논의의 기초를 마련하려는 시도는 별반 없다. 또한 매우 막연하게 “mVoIP는 제한할 수 있다”는 정도의 지극히 불투명한 약관 조항만으로는 소비자가 도저히 합리적 선택을 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약관 조항을 묵인하고 있다는 점도 지적되어야 한다. 또한 망사업자가 어떤 방식으로 트래픽 관리를 하는지에 대한 정보는 거의 제공되지 않는 실정임에도 이에 대하여 방통위는 방관으로 일관하고 있다.

둘째, 유선인터넷 망서비스 시장과 무선 인터넷 망서비스 시장은 경쟁 상황도 다르고 기술 진전 현황도 다르므로 일률적으로 접근하기 곤란한 측면이 많다. 이런 점을 세밀히 고려하지 않은 채 일률적 규제 전략을 구사하려는 것이 아닌지 의문이 들기도 한다.

셋째, 기본형(best effort) 서비스와 관리형 서비스를 구분하여 규제하겠다는 원칙 자체는 폭넓은 지지를 받을 수 있을지 몰라도, 기본형 서비스의 최소 품질 수준에 대하여 합의를 도출하려는 노력을 방통위가 과연 기울여 왔는지는 의문이다. 무엇보다도, 방통위는 최근에 카카오톡, 스카이프 등의 서비스 제공자들에 대하여 이들이 음성통신 서비스를 제공하는 측면이 있다는 이유로 전기통신사업법상의 ‘기간통신사업자’로 분류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

기간통신사업자는 방통위의 허가를 요한다. 입법 연혁을 보거나 전기통신사업법의 조항 자체를 살펴보거나, 그동안 전기통신사업법이 집행되어온 실상을 관찰하더라도 이 법이 말하는 기간통신사업자는 미국 통신법의 보편적 통신사업자에 상응하는 것이라는 점은 쉽게 알 수 있다. 전세계 어떤 규제자도 스카이프, 페이스타임, 바이버 등의 애플리케이션 제공자를 전통적인 보편적 통신사업자인 전화 회사와 같은 규제 대상으로 파악하여 “허가를 득하여 사업하라”는 식의 요구를 하지는 않는다. 이들 서비스/애플리케이션 제공자는 허가 사업자인 기간통신사업자가 차별해서는 안 되는 대체 서비스(alternative services) 제공자이지, 이들이 대체 서비스(음성통화)를 제공한다고 해서 허가가 필요한 기간통신사업자로 되는 것은 아니다. 방통위의 이러한 무모하고 무지한 움직임은 국내에서의 망중립성 논의 토양의 척박함과 미개함을 드러내는 것이어서 씁쓸하다.

(미디어오늘은 슬로우뉴스와 기사 제휴를 맺고 있습니다. 원문 주소는 http://slownews.kr/3854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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