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으로 ‘낚시’하는 게 요즘 대세라지만 <후궁: 제왕의 첩>(감독 김대승)은 호객용 미끼로 내건 게 ‘19금 노출 성애 장면’이면서 제목은 왜 그렇게 생뚱맞은 걸까? 두 남자 사이에서 농염하게 어깨를 드러낸 영화 포스터, 마케팅이 먼저 나팔 불어댄 노출 논란, 실제 여부를 의심케 한다는 정사 장면, 그리고 영화 속 실제 주인공으로 흥행 대박을 이끌어낸 화연(조여정)은 후궁도 아니고 첩도 아닌데.

영화 속 설명만 짚어 보자면 화연은 왕의 정비가 죽은 지 한참 후에 제대로 가례도감이 설치되어 제대로 단자 올리는 형식 갖추어 왕비 자리에 올라 한미한 신분이라고 무시 받던 아비 신참판(안석환)을 부원군 자리에 앉혔으니 한갓 첩실인 후궁일 리 없고, 새로 왕이 된 성원대군(김동욱)과 몸은 섞을지언정 신분이 첩자리가 되는 수모를 겪느니 살인도 무릅쓰는 자기 욕망 실현의 주체로 남았으니 후궁이 된 적이 없는데.

<후궁: 제왕의 첩>에 후궁, 그러니까 왕의 첩들이 나오기는 한다. 왕의 이복동생이라 정당한 왕위계승권이 없는 성원대군의 어미인 대비(박지영), 무수리였다가 왕과 하룻밤 정사로 후궁 자리에 오른 금옥(조은지),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노파(이용녀)를 비롯한 밀궁에 갇힌 여인들 등등.

그러니까 <후궁: 제왕의 첩>은 제목부터 내용까지 다 어긋나고 빗나가고 일그러져 있다. 영화 속 배경이 되는 궁궐이며 풍속, 벼슬아치들 품계며 관복 따위로 미루어 보자면 시대는 조선인 듯한데, 그건 남자들만 놓고 볼 때일 뿐이다. 여자들은 상궁이나 무수리는 몰라도 법도에 맞춘 차림새 꼼꼼히 따지던 조선시대 어디에도 들어맞지 않는 복식이며 머리 모양을 하고 왕궁을 누비며 온갖 흉한 일을 도맡아 저지른다.

대비는 남자 관복을 입고, 남자들 관모인 복두 모양으로 머리모양을 뻗쳐낸 차림으로 수렴청청 자리에 올라 호령한다. 화연은 궁에 들기 전이나 들고 나서나 중국 어느 시대인지 삼국시대 어느 나라인지 알 바 아닌 머리모양에 전통적 궁중복색 오방색의 화사함을 무시하고 속옷 제대로 갖춰 입지 않은 칙칙한 옷차림으로 시대미상 코스프레에 여념이 없다. 심지어 왕과 왕비의 성행위 순서와 자세까지 세세하게 법도대로 일러주며 지켜본다고 설정된 시대에 가당키나 한 일인가? 그러니 <후궁: 제왕의 첩>은 역사에 대한 고증이니, 실제니, 재현이니 하는 것과는 애당초 아무 상관이 없이 철저한 허구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다.

오히려 영화에 끌어들여진 과거가 현재를 더 강조하는 장치가 된다. 딸자식 애틋한 마음이야 어찌됐든 멀쩡한 청년 남근을 잘라내면서까지 혼사로 권력과 인연 맺으려는 아비, 자기 고자가 되도록 내버리고 혼자 살아났다고 옛 연인을 압박하다가 그 여인이 자기 핏줄을 낳아 기르고 있다는 정보에 마음 돌리고 죽음을 무릅쓰는 내시가 된 권유(김민준), 자기가 낳은 자식 왕위에 올려 권력 차지하자고 멀쩡한 의붓자식 약 먹여 죽이는 독한 계모 대비, 마음에 품었던 여인을 몸으로까지 품겠다고 이리저리 욕정에 휘둘리다 누릴 것도 제대로 못 누리는 성원대군, 아들만 낳으면 마음은 못 얻어도 권력은 차지하리라는 욕심에 의리도 체면도 없이 까불다 제 무덤을 파는 금옥.

이 모든 것은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해도 그럴 듯하지만 현재 한국사회를 놓고 보면 더 잘 들어맞는 설정들이다. 오랜 가부장문화 남성중심사회에서 오직 아들을 통해 자신의 욕망을 실현하려는 치맛바람과 그런 어미에게 모든 책임을 돌리고 잘 안 되는 모든 것을 원망하는 아들의 애증으로 숨통 틀어 막힌 피비린내 나는 무한경쟁사회. 그러거나 말거나 자기 자리보전만 되면 상관 않는 성인 남성들.

고등학생 아들이 성적 채근하는 엄마를 살해했다거나 엄마를 원망하며 자살했다거나 하는 사건이 때때로 벌어지는 이 사회에서는 서양에서 네다섯 살 남아 성장과정의 통과의례처럼 얘기하는 외디프스 콤플렉스의 부친살해욕망 못지않게 모친에 대한 원망과 증오가 성애장면보다 더 강렬하게 대중적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흥행의 불쏘시개인지도 모른다.

<후궁: 제왕의 첩>이 호객용으로 요란하게 광고했던 성애 장면은 막상 영화를 보면 그다지 자극적이지 않다. 왕과의 정사가 이루어지는 자리는 내실의 이부자리라기보다 성인클럽 밤무대 공연장처럼 높고 환하게 차려져 있고, 상대가 중전이든 금옥이든 화연이든 대놓고 벌거벗은 맨몸으로 보는 사람 눈길 의식해서 퍼포먼스처럼 뒤엉키는 성행위는 아름답지도 음란하지도 않다. 연기자들이 참 열심히도 하는구나 싶은 정도지.

실제 있었음직도 하지 않은 밀궁, 맛이 어떤지 감별하기도 전에 죽어나간다는 비상을 먹고도 꾸역꾸역 살아나는 체력이며 의술, 동맥도 아닌 기도를 찔러 죽이는 놀라운 살인기술 따위의 리얼리티가 떨어질수록 이기적 어미로서의 여성은 잔혹한 존재요, 거기에 휘둘려 자식 노릇 버거운 아들은 히스테리에 판단력 흐릿한 찌질이요, 더 이상 중심을 잡지 못하는 모든 아비는 사내구실 못하는 고자라는 설정만이 오롯이 사실적이고도 구체적 현실로 남는다. 그러니까 이 영화 제목 <후궁: 제왕의 첩>은 제왕처럼 키운 아들을 통해 자기 욕망을 실현하려는 모든 징글징글한 어미들을 다 그 제왕적 존재의 첩이라고 비아냥거리는 냉소로 보인다. 아들을, 아들을 통해 얻게 될 권력과 부귀영화를 욕망하지 말지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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