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야권 모든 주자에 앞서…안철수 3%p·문재인에 23.2%p차”

한국일보가 6월8일자 3면에 내보낸 창간특집 여론조사 결과 기사제목이다. 한국일보 기사 제목만 놓고 보면 ‘박근혜 대세론’에 더욱 힘이 실릴 수밖에 없다. 한국일보만 그런 게 아니다. 박근혜 전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 입장에서 흡족한 기사 제목은 여러 언론에서 발견된다.

언론은 ‘사실’을 제대로 전한 것일까. 아니면 오류가 담겨 있는 것일까. 특히 ‘과학’으로 포장된 정치 여론조사 보도는 반드시 짚고 넘어갈 대목이다. 정치 여론조사 수치는 국민에게 민감하게 다가올 수밖에 없다.

현재의 민심이 어떤 상황인지 수치를 통해 알 수 있는 수단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제대로 된 여론조사, 오버나 비약이 없는 해석이 필요하다. 한국일보는 한국리서치에 의뢰해 지난 3~4일 전국 성인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진행했다.

여론조사 기법은 유선전화 임의번호걸기(RDD) 방법이다. KT 전화번호부에 등재된 이들만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가 아니라 RDD 방법을 활용할 경우 전화번호부 등재와 무관하게 다양한 이들의 표본을 얻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KT 전화번호부 등재 여론조사는 상대적으로 보수적인 답변을 얻는 경향이 있어 제대로된 민심을 파악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하지만 한국일보의 이번 여론조사에는 휴대전화 표본이 빠져 있다. 19대 총선을 거치면서 집전화+휴대전화 조사가 보편적인 방법으로 사용되고 있지만, 한국일보 조사는 휴대전화를 제외한 유선전화(집전화)만을 대상으로 했다.

휴대전화를 제외할 경우 상대적으로 보수적인 응답이 나오는 경향성이 엿보인다는 점에서 집 전화+휴대전화 여론조사가 실제 바닥 민심에 보다 가깝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한국일보 이번 여론조사는 유선전화(집전화)만을 대상으로 했다.

유선전화 여론조사라고 해서 심각한 오류가 있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여론조사 결과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면 여론에 왜곡된 메시지를 전해줄 수 있다는 점은 주목할 부분이다.

한국일보는 분명히 기사 제목을 통해 “박근혜, 야권 모든 주자에 앞서”라고 뽑았다. 그렇다면 여론조사 결과가 그 기준에 부합해야 한다. 우선 문재인 민주통합당 상임고문과의 대결에서 박근혜 전 위원장은 57.3% 대 34.1%로 23.2%포인트의 지지율 격차를 보였다.

주목할 부분은 표본오차이다. 이번 여론조사의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포인트다. ±3.1%포인트는 1, 2위 후보의 지지율이 6.2%포인트를 넘어설 경우 특정 후보의 ‘우세’로 표현할 수 있다는 얘기다. 특정 후보가 다른 후보를 앞섰다고 표현하려면 당연히 오차범위 이상의 격차가 있어야 한다.

문재인 후보와의 격차인 23.2%는 오차범위를 벗어난 결과라는 점에서 ‘우세’ 또는 ‘앞섰다’라는 표현이 무리는 아니다. 그러나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과의 맞대결 결과는 얘기가 다르다.

한국일보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박근혜 48.2%, 안철수 45.2%로 3.0% 포인트 차이에 불과하다. ±3.1%포인트라는 오차범위를 벗어나려면 최소한 6.2%포인트 차이의 격차가 있어야 하는데 이번 여론조사 결과는 그렇지 않았다는 얘기다.

언론이 해당 여론조사 결과를 전하려면 ‘박근혜-안철수 오차범위 내 접전’이 바른 해석이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쪽에서도 여론조사에 대한 언론의 ‘바른 해석’을 권고하고 있다. 잘못된 여론조사 보도의 경우 ‘제재’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여론조사 보도가 문제가 있을 경우 여론의 왜곡으로 이어져 결국 선거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인터넷선거보도심의위원회는 지난달 11일 <대선관련 잘못된 여론조사보도에 무더기 조치>라는 제목의 자료를 언론에 보냈다.

“인터넷심의위는 제18대 대통령선거 관련 여론조사 결과를 보도하면서 두 입후보예정자간의 차이가 표본오차 한계 이내임에도 불구하고 ‘1위로’, ‘앞섰다’, ‘눌렀다’ 등 단정적인 표현으로 보도한 조선닷컴(chosun.com) 및 이를 매개 또는 인용하여 보도한 20개 인터넷언론사에 대하여 모두 ‘주의’ 조치하였음.”

표본오차 한계 이내의 경우 ‘앞섰다’라는 표현을 써서는 안 되며 이렇게 단정적으로 보도하면 ‘주의’ 조치 등 제재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여론조사 보도의 문제점은 어제 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이번에 예로 든 한국일보 기사만 문제 있는 것도 아니다.

언론이 여론조사 보도의 문제점을 인식하지 못한다면 무엇이 문제인지 깨닫고 다시는 그런 모습을 보이지 않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것이 문제인지 알면서 그렇게 보도한다면 이는 눈을 감고 ‘여론 왜곡’을 부추기는 행위라 비판을 받을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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