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똘이장군’이라는 만화영화가 있었다. 1978년 제작됐으니, 지금 40대 이상이라면 거의 다 기억하지 않을까. 만화영화가 귀했던 당시만 해도 꽤 인기가 있었는데 내용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반공 만화영화’다. 북한군은 늑대로 묘사됐고, 북한 최고책임자는 사람의 탈을 쓴 돼지로 묘사됐다.

그 시절 어린 순진한 어린아이들에게 북쪽은 그렇게 묘사됐다. 인터넷은 구경도 못하던 시절이니 방송에 그렇게 나오면 실제로도 그런 줄만 알던 시절이다. ‘빨갱이’라는 한마디로 권력에 대한 비판을 차단할 수 있었던 것은 냉전 이데올로기가 사회 전반을 휩쓸었기 때문이다.

지금 30대 후반, 40대 이상 세대에게 ‘똘이장군’은 “과거 그런 만화영화가 있었지” 정도의 추억으로 남아 있다. 세상은 바뀌었고, SNS와 인터넷으로 정보를 공유하는 시대가 돼 버렸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 들어 남북관계가 경색됐지만 기억을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개성과 금강산은 물론 평양도 돈만 내면 관광할 수 있었던 시대에 살았다.

요즘 시대에 ‘똘이장군’ 시대에나 통할 ‘반공 여론몰이’는 비웃음으로 다가올 수 있다. 하지만 아직도 과거 냉전 향수를 벗어나지 못한 이들이 있다. 일반인도 아니고 언론이 그런 모습을 보인다면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문화일보는 5월 29일자 1면에 <‘主出 보좌진’도 대거 국회입성 우려>라는 제목의 기사를 머리기사로 전했다. ‘主出’은 말그대로 한글로는 주출이다. 전국단위 종합일간지 1면 머리기사 제목으로 뽑힌 ‘주출’이라는 의미는 무엇일까. 생소한 단어였다. 다른 언론도 쓰는 단어일까.

전국단위 종합일간지 최근 한 달 간 기사를 검색해봤다. ‘주출’로 검색하자 13건의 기사가 검색됐는데 12건은 문화일보, 1건은 국민일보였다. ‘주출’이라는 신조어의 저작권은 문화일보에 있는 것일까. 도대체 주출이라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문화일보는 1면 머리기사 제목의 ‘주출’이라는 단어 밑에 ‘진보당 주사파 출신 의원’이라고 설명해 놓았다. 문화일보가 말하는 주출은 ‘주사파 출신’인가 보다. 청소년과 눈높이를 맞추려는 것인지, 젊은이들이 즐겨 쓰는 뜻도 이해하기 어려운 ‘줄임말’을 전국단위 종합일간지 1면 머리기사 제목으로 뽑았다.

주출은 그렇다 치고 <‘主出 보좌진’도 대거 국회입성 우려>라는 1면 머리기사 제목은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기사의 첫 문장은 이런 내용이다.

“19대 국회 임기 시작이 하루 앞으로 닥친 가운데 통합진보당(진보당) 내 종북 성향의 의원과 보좌진 등 ‘주출(主出·주사파 출신) 그룹’이 많게는 50여 명이나 공무원 신분으로 국회에 진출할 가능성이 있어 시민 사회의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진보당 내 ‘주출’ 의원들은 이석기, 김재연 비례대표 당선자를 포함해 지역구 당선자 4명 등 모두 6명이다. 국회의원 1인이 최대 9명(인턴 2명 포함)의 보좌진을 임명할 수 있는 것을 감안하면 최대 50여 명이 국회에 입성할 수 있다.…문제는 정무직 공무원 신분인 국회 보좌관은 국회의원과 같이 2급 비밀취급인가증을 발급 받아 군사기밀에 접근할 수 있는 등 합법적인 활동을 할 수 있다는 점이다.”

북한군은 늑대로 알던 시절의 냉전 향수를 자극하는 내용이다.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경선 논란 이후 ‘색깔론 광풍’이 부는 상황에서 문화일보가 ‘주출’이라는 신조어를 꺼내 들어 공포 몰이에 나섰다. 그러나 명색이 1면 머리기사 아닌가. 그렇다면 적어도 팩트에 대해 살펴본 뒤 주장을 펼쳐야 하지 않겠나.

문화일보가 분류한 6명은 통합진보당 당권파를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통합진보당 당권파 의원들은 모두 주사파 출신이고 그들이 뽑은 최대 의원 1명 당 9명에 이르는 보좌진은 모두 주사파 출신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문화일보가 보좌진 한 명씩 ‘사상 검증’이라도 해보았는가. 도대체 무엇을 근거로 그러한 주장을 펼칠 수 있는가. 그냥 대충 6명이 당권파니 다 주사파 출신일 것이고, 1명의 의원 당 9명의 보좌진을 구성할 수 있으니 6 곱하기 9는 54명, 뭐 이런 식의 셈법인가.

기사가 장난인가. 적어도 때려 맞추는 것과 신문 기사는 달라야 하지 않겠나. 그것도 신문의 얼굴인 1면 머리기사라면 뚜렷한 근거를 대야 하지 않겠나. 문화일보 기사는 ‘색깔론 몰이’에 편승한 카더라 기사라는 지적을 받아도 할 말이 없다.

더욱 문제는 과거 주사파로 분류된 인물이라고 해서 그것 자체가 국회의원이나 의원 보좌관을 하는 데 엄청난 결격사유가 되는 것처럼 몰아가는 모습이다. 정말로 그것이 소신이라면 문화일보가 우려할 이들은 통합진보당에만 있지 않다.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의 조국통일위원회(조통위) 간부로 활동하는 등 종북 학생운동의 배후였다.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1989년, 1991년 두 차례 징역형을 선고 받았다. 1991년에는 당시 떠들썩했던 박성희·성용승 밀입북 사건 배후로 1년 8개월을 복역했다.”

어느 언론의 주장일까. 누구에 대한 얘기일까. 이러한 내용을 지면에 내보낸 언론은 다름 아닌 문화일보다. 문화일보 4월 4일자 이용식 논설실장 칼럼에 담긴 내용이다. 그 주인공은 바로 새누리당 하태경 의원(19대 총선 당선자)에 대한 얘기다.

문화일보 스스로 ‘종북 학생운동의 배후’라고 지목했던 하태경 새누리당 의원, 문화일보 논리대로라면 하태경 의원도 주사파 출신 의원 아닌가. 하태경 의원실 보좌진도 ‘주출 보좌진’ 아닌가. 과거 주사파로 분류됐던 이들을 솎아내자는 얘기가 아니다. ‘주출 보좌진’ 운운하는 것은 냉전 향수를 자극할 수 있을지 모르나 속을 들여다보면 논리는 완전 허당이라는 얘기다. 논리의 근거도 일관성도 모호한 주장이기에 그렇다.

마지막으로 문화일보 기사에 담긴 ‘주출’이라는 신조어에 대해 설명하고자 한다. 신문에서 아무리 찾아도 쉽게 찾을 수 없었던 ‘주출’이라는 단어가 실은 존재하는 단어였다. 문화일보 기사와는 한자가 다르다. 국어사전에 담긴 ‘주출(做出)’의 의미는 ‘없는 사실을 꾸며 만듦’이라는 의미다. 문화일보가 명심해야 할 단어 아닌가.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