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대공황에 버금가는 위기의 시대다. 어쩌면 그 이상일 가능성도 있다는 생각을 할 정도다.”

지난 25일,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과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가 공동으로 개최한 토론회에서 정태인 새사연 원장이 꺼낸 말이다. 지난 30여년간 세계를 지배해 온 신자유주의가 종언을 고하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두 싱크탱크는 새로운 ‘정치경제 모델’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포스트 신자유주의’다. 일단 ‘복지국가’에서부터 첫 걸음을 시작하자는 제안이 나왔다.

홍기빈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소장은 먼저 “‘정치경제모델’로 신자유주의를 생각하자고 제안하고 싶다”고 운을 뗐다. 신자유주의가 ‘자연적 질서’가 아니라, 사실은 “인위적인 질서”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이는 곧 어떤 정치적 의지가 그 ‘질서’ 속에 숨겨져 있다는 의미다. 그는 이 같은 질서를 지탱하는 핵심 기제로 ‘금융’을 꼽았다.

그는 “자본시장과 금융시장에 최대한의 자유를 허락하라는 것”이 신자유주의의 산업 조직 방식이었다고 지적했다. 시장은 완전하며, 위험은 관리될 수 있다는 믿음이 한 축이었다. 각 개인들은 대출을 얻어 사들인 부동산과 주식 등의 자산가치가 상승하는 것에서 지위가 상승하는 ‘환상’을 맛 봤다. 체제를 지탱해 온 믿음들이 모두 금융에 의존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2008년 이후 지속되고 있는 위기를 단순한 ‘경기침체’로 봐서는 안 된다는 지적은 그래서 나온다. “신자유주의적 금융자본주의라는 시스템의 지속가능성이 근본부터 무너져 내린 사건”이라는 것이다. ‘자연적 질서’는 작동하지 않았고, 위험을 관리하는 데도 실패했다. 빚을 내 집을 샀던 수 많은 사람들은 하루 아침에 파산선고를 받고 길거리에 나앉았다. 

새사연 정태인 원장도 이 같은 인식에 동의를 표하며 ‘지속가능한 사회국가’를 대안 모델로 제시했다. 핵심은 ‘안으로부터의, 아래로부터의 성장’이다. 내수가 주도하는 ‘소득주도 성장전략’은 그 첫 번째 과제다. 생산성 증가속도에 비해 실질임금 상승세가 꾸준히 둔화하면서, ‘돈이 없어서 소비가 둔화되는 상황’이 지속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정 원장은 이어 ‘위로부터의 성장’을 주도해 온 재벌을 도마에 올렸다. 정부가 다양한 방식으로 재벌의 이익을 보장했지만, 그 성과는 ‘아랫목’까지 전달되지 않았다. 그는 “분배 악화의 정점에 재벌이 있다”며 “재벌을 보는 관점을 ‘이해당사자이론’으로 확장해야 한다”는 대안을 내놨다. ‘이해당사자’에는 주주, 노동자, 하청기업, 지역주민, 소비자가 모두 포함된다.

이에 따르면, 기업은 이해당사자 모두가 이익과 위험을 함께 공유할 때 오히려 높은 성과를 낼 수 있다. 노동자 경영참여제는 그 하나의 사례다. 정 원장은 이해당사자의 세력화, 이윤 공유제도, 사전규제 정책을 조합해 법과 제도를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재벌의 실체를 인정하되, ‘기업집단법’을 제정해 적절하게 이윤과 위험을 나누도록 하는 것도 방법이다.

이들은 한 목소리로 정책들 사이의 ‘상호보완성’을 강조했다. 정책들 간 ‘아귀’가 맞아야 한다는 이야기다. 이를 위해 필요한 건 “총체적인 그림” 속에서 정책 과제들을 펼쳐나가는 일이다. “경제민주화는 재벌개혁 뿐만 아니라 금융, 노동, 산업, 복지, 조세, 재정 등 정치경제모델 전체를 위한 논의여야 한다”는 지적도 같은 맥락이다. 정치적·사회적 합의도 필요하다.

‘포스트 신자유주의’는 어디에서부터 시작해야 할까. 홍 소장은 “최소한의 사회적 합의가 이뤄진 복지국가 논의부터 제대로 시작해도 한 판의 바둑이 된다”고 주장했다. 정 원장은 “순서를 매길 게 아니라 지금 당장 필요한 것부터 요구하기 시작하면 된다”고 말했다. 새누리당도 ‘복지’를 이야기하는 지금은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기회라는 게 이들의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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