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을 쓰고 있는 와중에 통합진보당의 당원명부를 압수하려는 검찰과 통합진보당 당원들이 대치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구당권파, 신당권파를 막론하고 비분강개하고, 침통해하며, 착잡한 저마다의 심정으로 통합진보당 당사와 서버 회사로 달려갔으나 압도적인 경찰의 힘에 의해 줄줄이 끌려나왔다.

진보정당의 존재 자체를 공안의 위협요소로 보는 반민주적 ‘공안’검찰은 지난 20여 일간 논란의 중심에 서 있는 통합진보당의 상황을 지켜보다가 대대적인 공격을 해왔다. 2010년이던가, 당시 교사, 공무원 등의 당원명부를 입수한다며 당을 압수수색하기 위해 공격해왔을 때와 다른 것이 있다면 이번에는 여론이 좀더, 아니 훨씬 좋지 않다는 것이다. 진보정당을 흔들기 위해 해대는 공격에 속수무책의 상황이 된 것이다. 상황이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비례선거 이전부터 예고된 통진당 갈등 사태

나는 이번 통진당 사태가 벌어지자 이전 민노당 시절 소위 ‘자주파’와 당내에서 이런저런 일을 겪었다는 이유로 여러 인터뷰를 하게 되었다. 인터뷰를 하기 전에 매우 곤혹스러웠는데 그 이유는 당시에 내가 겪었던 문제에 대해서는 당사자가 모두 함께 잘 마무리를 하였는데 새삼스럽게 들출 필요가 없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하지만 통진당 내 상황이 전개되는 것을 보면서 결국 터질 것이 터지고야 말았다는 생각에 인터뷰에 응하게 되었다.

사실 이번 비례대표 선거 이전에 나는 통진당 내부 곳곳에서 벌어지는 잡음을 들을 수 있었다. 이것은 굳이 비밀스럽게 들은 것도 아니라 통진당 게시판에 모두 생중계된 것이다. 특히 지역구 후보선출과 관련해서 많은 갈등을 보았는데 그 내용을 보니 이것은 같은 당의 당원에게 하는 행동이라고는 보기 힘든 심각한 것들이었다.

문제는 그런 일의 대부분이 당권파가 자리 잡고 있는 서울과 경기도의 지역들이라는 사실이다. 위장전입의 정황, 당비대납의 의혹, 도저히 투표를 할 수 없는 사람이 투표했다는 대리투표의 정황, 선관위와 특정 선본이 합작하여 상대선본을 무너뜨리는 편파선거 등등 너무나도 심각했다.

실제로 그 편파경선 과정에서 고배를 마신 분들과 통화를 하게 됐다. 그들의 말은 이것이다. “인간에게 너무도 큰 실망을 해서 이 일(진보정당)을 계속 해야 할지 말지 자신이 없다”는 것이다. 내가 만일 민노당의 경험이 없었다면 이 말이 무슨 말인지 몰랐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들의 말을 충분히 이해한다. 그런 일을 겪으면 누구나 다 진보정당 운동에 회의를 하게 된다.

당권파, 항변이 아니라 스스로를 돌아봐야

지금 당권파는 단지 ‘비례선거 진상조사보고서’의 문구와 내용을 해석하고 방어하는데 바쁠 뿐이다. 왜 당권파를 제외한 모든 세력이 나서서 이들을 비판하는지 그 광범위한 배경을 모른다. 물론, 단지 당권파뿐만 아니라 전국적으로 이런 일은 벌어졌을 수 있다는 점에서 당권파가 항변을 하는 것도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이번 사태를 단지 비례투표에 있어서 몇 가지 실수나 사소한 부정 정도로 치부하고 가는 당권파의 행태를 참으로 이해할 수 없다. 게다가 이번 사태를 무슨 음모로 몰아가는 것도 참 문제다. 본인들이 유시민 전 대표에게 당권이든 대권이든 하면 지원하겠다고 제안한 것이 엊그제인데 오늘 유시민 전 대표와 갈등하는 것이 누군가의 음모라면 도대체 이렇게 어설프고 황당한 음모는 무엇이며, 그 음모의 한 축을 담당하거나 꼭두각시가 돼버린 것이 확실한 유시민 전 대표에게 당권-대권을 제안했던 당권파의 황당함은 또 무엇이라는 말인가. 도무지 설명을 할 길이 없다.

당권파로 표현되는 그들이 어떻게 운동을 해왔는지 어설프게나마 이해하고 있다. 실제로 나는 트위터에 “통합진보당 전국운영위에서 항의하던 사람들, 중앙위에서 단상을 향해 돌격하던 사람들의 상당수가 학생, 비정규노동자라는 사실은 많은 걸 고민하게 한다. 누가 소위 통진당 당권파만큼 이들에게 다가갔던가 하는 물음인 것이다”라는 글을 올리기도 하였다. 그만큼 애정을 가지고 있다는 점만 알아줬으면 한다.

애초부터 통진당이라는 이 어설픈 ‘권력을 위한 합체정당’이 얼마나 갈 것인지 의문을 가졌지만, 그래도 내부에서 최소한 민주적인 룰만은 지키고 패권주의는 다시 나타나지 않기를 바랐다. 그러나 사태는 정 반대다. 당권파는 한순간에 비당권파가 된 억울함을 잠시 덮어두고 본인들이 어떤 일을 했는지 다시 점검해보기 바란다. 그리고 비당권파로서 겸허하게 다시 시작해보기를 권해본다. 당신들이 생각하는 명예는 언제든지 다시 회복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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