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렵게 성사된 인터뷰였다. 지난달 27일, 그가 민주통합당 ‘쌍용자동차특별대책위원회(쌍용차특위)’의 위원장으로 임명됐다고 발표됐다. 그는 ‘위원회 구성이 아직 안 됐다’며 인터뷰를 미뤘다. 9일, 쌍용차특위 출범 기자회견이 열렸다. 그는 “저는 국회의원도 아니고 아무것도 아니”라며 “이학영 간사에게 요청을 하면 어떻겠냐”고 했다. ‘그래도 위원장님이 말씀을 해주시는 게 좋지 않겠냐’는 설득에 마지못해 수락한 인터뷰였다.

10일 오전, 막상 얼굴을 맞댄 그는 할 말이 많은 듯 했다. 첫 질문을 꺼내자마자 긴 답변이 이어졌다. 그는 꽤 긴 시간을 자신이 여기까지 오게 된 ‘경로’를 설명하는데 할애했다. 그는 2008년 촛불시위 당시 민주노총 위원장이었다. 그에게는 수배령이 떨어졌다. 이랜드 매장 점거투쟁과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총파업을 ‘주도’한 혐의였다. 그는 2008년 12월 검거돼 구속 수감됐다. 최근 밝혀진 바에 따르면 그는 ‘민간인 사찰’의 피해자이기도 했다.

이듬해 3월,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받고 출소했지만, 그는 민주노총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그의 수배 생활을 도왔던 한 여성 조합원이 그의 ‘최측근’으로부터 성폭행을 당한 사건이 벌어졌던 탓이다. 통합진보당 정진후 후보의 공천을 두고 최근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기도 했던 ‘민주노총 성폭행 사건’이었다. ‘도의적 책임’을 지고 옥중에서 사퇴서를 쓴 그는 출소 이후 “모든 화살을 제가 안고 백의종군 하겠다”고 한껏 몸을 낮췄다.

‘시련’의 시기를 거친 끝에 그는 다시 공장 노동자가 됐다. 인천시에서 송영길 시장의 ‘노동특별보좌관’으로 발탁되기도 했다. 민주당 입당은 자연스러웠다. 총선을 한 달여 앞둔 3월 초의 일이었다. 민주노총 위원장 출신으로는 처음이었다. 그는 “정권을 교체해야한다는 국민들의 열망에 노동자의 힘을 보태야 하는 것은 역사적 숙명”이라는 이유를 들었다. 속 모르는 노동자들은 ‘배신자’라고 비난했고, 보수언론은 ‘노동 철새’라는 비아냥을 늘어 놨다.

‘쌍용차특위 위원장’은 그가 총선 이후 민주당에서 맡은 첫 직함이다. 이 위원장은 “(쌍용차 문제를) 단편적으로 보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단순히 ‘정리해고자가 힘들어서 자살하니까 관심 갖자’”는 게 아니라는 이야기였다. 그는 “쌍용차 문제를 푸는 과정을 통해서 새로운 모델을 만들어 내자”는 포부를 밝혔다. 이를 위해 정책적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게 그의 판단이다. 노사 양측 모두에게 ‘출구’를 만들어 줘야 한다는 뜻으로 읽힌다.

19대 국회에서 가장 먼저 할 일로 이 위원장은 ‘쌍용차특위’를 국회로 확장하는 일을 꼽았다. 과거 쌍용차 매각 과정의 문제를 짚어내는 청문회나 진상조사도 구상중이다. 이 과정에서 민주당도 “사과할 건 사과해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그는 일단 당 내에서 쌍용차특위에 대한 관심이 높다고 전했다. 지도부의 ‘진정성’도 있으니, “풀어갈 일만 남았다”는 게 그의 판단이다. 관건은 노동자들의 마음을 얻어내는 일이 아닐까.

이 위원장은 “쌍용차 안에서도 제가 특위위원장 맡은 것에 대해서 반발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담담한 듯 말을 꺼냈다. 그는 다만 “노동자의 양심을 갖고 시작하는 만큼 제 양심을 믿어줬으면 좋겠다”고 말할 뿐이었다. 

다음은 지난 10일 인터뷰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인터뷰는 인천시 남동구에 위치한 그의 직장에서 진행됐다. 그는 ‘히터공장’에서 기술고문으로 일하고 있다.

-먼저 특위 출범 배경을 설명해 달라.

“문성근 전 대표대행이 한 번 좀 맡아서 하시겠냐고 제안을 했다. 의원이 아니고 당직도 없고 아무 것도 없는 상황에서 맡는 게 쉽지 않았다. 그래도 어떤 역할이든 할 수 있으면 좋겠다, 하겠다고 그랬다. 그런데 (그 소식을 듣고) 민주노총에서 민주당에 항의를 하더라. 민주당이 난감해 하길래 그럼 안 한다고 했다. 그랬더니 이용섭 정책위의장이나 이런 분들이 ‘이석행 위원장만한 전문가가 민주당에 누가 있냐’면서 설득을 다시 하시더라. 당이 그런 입장이라면 하겠다고 해서 이렇게 하게 됐다. 대신 국회의원을 위원으로 최소한 10명 이상 꾸려 달라고 요구했다. 나중에 정책을 입안하거나 입법청원을 하려면 최소 10명 이상이 되어야 한다. 나중에는 추가로 몇 분들이 자기도 하겠다고 나섰다. 최민희 당선자도 그렇고, 어제는 기자회견 끝나고 나서 이목희 당선자한테도 같이 하겠다고 연락이 왔다.”

-지난 3월 초에 민주당에 입당한 것을 두고 주위에서 말이 많았다. ‘정치 신인’이기도 한데, 당에서 위원장직을 맡긴 이유가 뭐라고 보나.

“지난 선거과정에서도 그랬고 민주당이 그동안 노동정책이 없는 당으로 알려졌다. 입당하기 전에 민주당에서 러브콜도 있었다. 지난 (2008년) 촛불 때 감옥 갔다 나와서, 자연인 이석행, 또 개인 노동자로서 삶을 살아가야 겠다고 생각했다. 사실 어떤 규격화된 틀의 삶이 너무 힘들었다. 현장의 대중들을 만나거나 이런 건 행복했는데, 민주노총이라는 데가 사실 어떻게 보면 규격화된 삶을 요구하는 곳이기도 하다. 그래서 감옥에서 더 이상 그런 운동을 하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나와서 민주노총에서 당연직으로 되어 있는 지도위원도 거부하고 여기(공장) 와서 일하기 시작했다.

그러는 중에 인천에서 송영길 시장이 야권단일후보로 당선되는 과정에 참여를 하게 됐다. (당선된 후에) 송 시장이 저한테 ‘시장 만들었으면 좀 도와줘야 하는 거 아니냐’면서 여러 가지 직을 제안했다. 그렇지만 또 다시 그런 규격화된 삶을 살기 보다는 좀 자유롭게 살고 싶었다. 또 노동자로 다시 돌아온 게 난 너무 행복하다고 생각을 해서 다 거부했다. 그러다가 결국은 무보수, 무활동비를 원칙으로 하고 회사에 그대로 근무하는 것을 조건으로 특별보좌관을 맡게 됐다.

어떤 사람들은 민주노총 위원장 하고 나서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냐고 하는데, 저는 개인의 노동자일 뿐이다. 민주노총 위원장 할 때는 위원장이었지만, 돌아와서는 난 노동자다. 뭘 못하나. 특보 맡아서 GM대우 비정규직 4년 동안 싸웠던 문제 푸는데 기여도 했다. 이 지역 건설노동자 문제도 복잡했다. 또 인천메트로 8년 된 해고자들도 다 복직시키고, 시청 비정규직도 정규직으로 전환시켰다. 그렇게 하면서 나는 너무 행복했다. 그러던 차에 송 시장이 ‘그러지 말고 좀 더 크게 해보시라’고 권유를 하더라. 그렇게 정치를 시작하게 됐다.

그런데 ‘혼자만 가는 게 이석행답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서 서명을 받기 시작했고, 당원도 1500명 데리고 갔다. 그렇게 해서 민주당에 갔더니, 정치인들이 약속을 안 지키더라. (웃음) 나한테 국회의원이라고 하는 자리는 아직 때가 아니구나 생각해서 바로 그냥 선거운동에 열심히 참여했다. 그 과정에서 쌍용차 문제가 떠올랐다. 쌍용차는 내가 처음부터 쭉 봐왔던 사람이다.”

-출범이 너무 늦은 것 아닌가. 왜 이렇게 늦었나.

“민주당에 그동안 ‘노동’이 없었다. 어제 비대위 회의에서도 인정 하시더라. 이용득 위원장님도 전문가시지만, 투쟁이나 그런 과정을 겪은 사람 중에 양대 노총을 통틀어서 저만큼 많이 겪은 사람이 없다. 금속(노조)에 있을 때도 부당노동행위 특별위원장을 맡아서 투쟁하는 사업장 (다녔다). 가장 많이 겪고 경험한 사람이 자타공인 이석행이라고 생각한다. 당에다가 어제 그런 얘기를 했다. 대선에서 승리를 하려면 노동정책이 있어야 하는데, 허울 좋은 일자리 창출만 얘기하지 말라고. 나한테 대안과 복안이 있다, 만들어 내겠다(고 얘기했다). 국회의원에 뜻이 있어서 (민주당에) 간 것도 있지만, 그런 정책들을 만들어 내고 싶고 하고 싶다. 그 과정에 우선 스타트가 쌍용차하고 전북고속인 거고.”

-어떻게 문제를 풀어야 한다고 보나.

“다른 사람들은 그냥 회사가 어느 날 정리해고를 해서 사람들이 죽어간다고 단순하게 이 문제를 본다. 어제 비대위 회의 가서도 그런 보고를 했는데, 쌍용차를 그렇게 보면 안 된다. 쌍용차는 국가가 미래나 그 이후 쌍용차의 전망을 보지 않고 매각을 한 거다. 분명하게 국가의 책임이 있는 거다. 그런 관점으로 봐야 된다. 두 번째, 나는 이걸 노동문제로만 보지 않는다. 인권문제로도 봐야 되고 한국사회의 흐름의 문제로 봐야지 이걸 단순히 ‘정리해고자가 힘들어서 자살하니까 관심 갖자’, 이렇게 단편적으로 보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 문제를 푸는 방법에 있어서도 나는 민주당도 그동안 민주노총 방식을 탈피하지 못했다고 본다. 사용자를 압박만 하는 거다. 대안이나 대책을 마련해주지 않고. 그렇게 이 문제를 접근해선 안 된다. 이 사람들을 쌍용에 막 받으라고 한다고 받을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우선 이분들한테 양질의 일자리를 우리가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

2000년대 초에 대우자동차가 GM으로 넘어갈 때, 한 달 동안 미국에 가서 반대투쟁을 한 적이 있다. 그 때 GM을 상대로 UAW(미국자동차노동조합)가 47일간 파업을 하고, 그 결과물로 나온 합의서를 보게 됐다. 그 합의서에 보면, GM에서 해고된 사람들을 전부 ‘준공무원’으로 채용을 한다. 육체적으로 할 수 있는 직군에다 채용해서 GM에서 주던 급여의 90%를 준다. (급여의) 50%는 주정부하고 중앙정부가 주고, 40%는 GM이 내는 거다. 그러면서 순차적으로 GM에 라인이 활성화되면 다시 복직 시킨다. 그걸 아주 인상적으로 봤다. 그런 것도 필요하다고 나는 보는 거다. 이 사람들한테는 우선 일자리가 필요하다. 그리고 미래 희망과 비전이 필요하다. 그런 차원에서 우리가 쌍용 문제를 접근하고 풀어가야 한다.”

-지난달 초, 22번째 사망자가 발생했다. 2009년 당시 약속했던 복직은 이뤄지지 않고 있는데 쌍용차가 최근 신규채용 공고를 냈다.

“저는 회사가 그러면 안 된다. 대단히 잘못하고 있다. 우선 휴직자부터라도 들여보내놓고 신규채용을 해야 된다. 이건 약 올리는 거고 사람들 더 죽으라는 거다. 살인적인 행위다. 여기에 대해서 분명하게 국회 열리면 청문회를 하던 뭘 하든 (문제를) 끌어내서 제기 해야 된다고 본다.”

-쌍용차가 약속을 지키지 않고 있는 이유가 뭘까.

“사용자를 만나보지는 않았다. 추측컨대, 사용자들이 현재 정리해고나 휴직되어 있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시각 자체가 불순하다고 느낀다. 그런데 그런 식으로 한다면 기업은 존재가치가 없다. 기업은 이윤이 발생하면 사회에 환원도 시켜야 하고, 사회에 기업이 기여해야 할 역할이 있는 거다. 그걸 저버리고 계속 그렇게 가버린다면 쌍용차는 존재할 이유가 없다. 그런 노무관리 방식은 1950~60년대, 유신 때나 하는 방법이다.”

-쌍용차 문제의 핵심이 뭐라고 보나.

“쌍용자동차문제의 핵심은 ‘공존공생’하려고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2009년도에 (정리해고) 사건 터질 때가 감옥에 있을 때였는데, 당시 옥중편지를 썼다. 저는 그때도 노동조합도 양보하자고 했다. 그리고 이 문제는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고도 했다. 정리해고를 하지 말고 교대제를, 무급휴직제로 해서 순환보직을 하자(는 이야기였다). 일방적인 구조조정이 아니라. 네 개조로 나눠서 세 개조가 일하고 한 개조가 휴직을 하면 세 개 조에서 급여의 일부를 내고 고용보험에서 일정정도 보태는 거다. 휴직을 해서 한 달을 쉬더라도 급여에 타격이 없도록 하면 정리해고 안 하더라도 (공장이) 돌아갈 수 있었다. 그런데 그 당시에 경영진들은 정리해고를 강행했다. 정부는, 정부가 특히 더 앞장섰다. 국가와 기업이 뭔가 본보기를 삼아서 그렇게 (강행)했던 거라고 본다. 얼마든지 상생할 수 있었다. 그래서 그런 각도에서 본다.”

-애초 상하이차로 매각될 당시에도 ‘먹튀’ 논란이 있었는데도 정부가 강행했다. 이유가 뭘까.

“저는 당시 노동조합도 책임이 크다고 본다. 처음에 노조가 해외매각 반대를 하다가, 어느 날 노동조합에서 해외매각도 수용하겠다고 했다. 제가 민주노총 사무총장 할 때다. 그 때 쌍용차에 가서 강의를 하면서, 노동력이 풍부한 나라로 쌍용차가 매각되면 쌍용차는 존재의 가치가 없어진다고 얘기했다. 상하이로 넘어가는 순간, 기술력만 갖고 가서 쌍용차를 중국에서 생산하고 여기는 판매기지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고 얘기했다. 집행부에 있는 사람들이 항의하고 그랬다 저한테. ‘협박하지 말라’고. 제가 그때 3년 안에 쌍용자동차에서 그런 일이 안 벌어지면 내가 손에 장을 지지겠다고 그랬다. 그랬더니 딱 3년 만에 (‘먹튀’가) 벌어진 거다. 당시에 산자부(산업자원부)부 장관도 찾아가서 안 된다고 했지만, 노조도 선택하고 국가도 선택하고 그래서 다 그렇게 갔다.”
 
-민주당의 책임을 언급하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당시 매각을 승인했던 게 참여정부 아닌가. 민주당이 ‘반성’을 하지 않는다는 비판도 있는데, 어떻게 보나.

“어제 저도 그 얘기를 하고 싶었는데…. 아직까지 민주당 때도 안 묻고 뿌리도 없는 입장이어서 저도 어제 그 얘기가 여기까지 올라왔는데 사실은 말을 안 했다. (그렇지만) 분명하게 노무현 정부에 매각의 책임은 있다고 본다. 그 지점에 대해서도 6월 국회가 열리고 민주당 지도부가 꾸려지면 (국회 내에) 특위나 이런 걸 꾸리는 과정에서 사과할 건 사과해야 한다고 본다. 그리고 현 정부의 책임도 분명하게 얘기하는 것이 맞다. 청문회를 통해서 밝힌 건 밝히고, 그러기 전에 매각 과정에서의 민주당의 (역할에 대해서도) 문제를 제기할 거다.”

-최근 쌍용차의 일부 차종을 인도에서 직접 생산하겠다고 해서 마힌드라의 ‘먹튀’ 논란이 다시 재연되고 있다. 

“쌍용차의 기술은 벤츠의 기술을 리모델링한 거다. 그렇기 때문에 설비나 시설이 안 돼서  못 하는 건 있지만 현재 쌍용차가 갖고 있는 기술력은 대단하다고 본다. 현대나 기아에 뒤지지 않는다. 세계적으로 완성차 기술력을 갖고 있는 곳도 많지 않다. 상하이차 때도 그렇지 않았나. 여기에다가 설비투자 하겠다고 해놓고 중국에 공장지어서 중국에서 거꾸로 부품을 역수출해서 한국에서 조립했다. 마힌드라도 마찬가지라고 본다. 앞으로 자동차 산업이 아주 폭발적으로 늘어날 수 있는 데가 인도인데, 뭐 하러 여기서 만들어서 가서 팔겠나. 기술력 가져가서 거기에 공장지어서 거기서 팔지. (상하이차와) 같은 전철을 밟을 가능성이 높다. 그런 걸 막아야 한다.”

-어떻게 이 문제를 풀어가야 할까. 어떻게 활동할 계획인가.

“일단은 의원들 중심으로 위원을 꾸린 이유도 ‘쌍용자동차특별대책위’를 국회 안에 만들기 위해서다. 이걸 만드는 것이 저한테는 제1 목표다. 두 번째 목표는 무급휴직자들은 3년이 넘었기 때문에 다 복직하게 만드는 거고, 정리해고자는 (복직)순위가 좀 밀린다 하더라도 새로운 일자리를 갖고 희망을 가질 수 있는 정책을 만들어야 한다는 구상을 갖고 있다. 또 청문회도 열고 진상조사도 하고, 그런 것까지 다 포괄해서 할 계획이다. 공식적인 집회나 이런데 가서 마이크 잡고 연설하지는 않을 거다. 위원들 데리고 (공장에) 우르르 몰려가는 것도 안 할 거다. 개별적으로 노사 양측을 찾아가서 만나기는 하겠지만 (특위가 나서서) 공개적으로 압박하는 건 큰 도움이 안 된다고 본다. ‘실사구시’의 원칙으로 정책 대안을 만들 생각이다.”

-쌍용차와 비슷한 ‘먹튀’ 사례가 많았다. 쌍용차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이야기일 텐데.

“지나간 걸 어떻게 다 할 수는 없다고 본다. 다만 쌍용차 문제를 푸는 과정을 통해서 새로운 모델을 만들어 내자는 이야기다. 시민사회나 경영계나 노동계까지를 포함해서 담론화시켜내고 그걸 받아서 정책으로 만들어야 한다.

더 큰 문제는 뭐냐면 (예를 들어) 조선경기에 지금 완전히 먹구름이 끼고 있다. 배 선주들이 대부분 유럽 사람들이다. 그런데 유럽에 경제위기가 오니까 대우조선 같은 경우 배를 다 만들어 놓고도 작년 연말까지 인도해야 할 배를 (선주가) 유예시켜달라고 해서 안 가져 간 배가 1조2천억 원어치다. 1조2천억이 현금으로 들어와야 하는데, 그 돈을 못 받고 있다. STX도 1조4천억이다. 한 번 회오리바람이 일어날 것 같다. 경제를 전망하고 대비해야 한다. 자동차 산업도 3년 안에 또 (위기가) 온다. 미리미리 준비해야 한다. 그걸 누가 하나. 정당이 해야 한다. 민주당이 앞으로 그런 부분들에 대해서 정책토론회를 할 수 있게 계속 얘기를 하겠다. 경제를 전망하고, 그 과정에서 닥쳐올 광풍에 대해서 자본은 어떻게 해야 하고 노동자는 어떻게 해야 하고 하는 부분들을 사회적 대타협을 통해서 미리 만들어서 준비하는 게 중요하다. 그 전도사가 되려고 한다. 지금은 노동조합도 임금인상에만 관심이 있고 그런 것에는 관심이 없다. 이번에 쌍용 문제를 사회적 담론을 만들고 문제를 풀어가는 과정에서 하나의 모델을 만들어 놓으면 그게 앞으로 쌓여서 큰 틀에서 (비슷한 사례에도 적용될 수 있다).”

-회의는 어떻게 진행할 계획인가.

“일단 다음 주에 모일 계획이다. 위원들 일정을 봐서 3분의2가 참석할 수 있는 날짜라면 나는 언제든지 참석 하겠다고 얘기했다. 거기에 대해서는 이학영 간사님도 같은 의견이다. 그래서 다음 주에 회의가 열리면 본격적으로 위원들에게 역할을 다 드리려고 한다.”

-개인적으로 어떤 걸 해보고 싶다고 이야기하는 위원들도 있나.

“들어봐야 한다. 아직까지는 참여하고 싶다는 의견들만 있다. 그래도 (이 정도면) 상당한 호응이 있다고 본다. 의외로 많다. 그래서 어깨가 더 무겁다.”

-당에서 지원은 많이 해주나.

“어제 박지원 원내대표께서 의외로 이 문제를 우리가 풀지 못하면 수권정당으로서의 모습이 아니라고 말씀하시고 사무총장한테 지시해서 이석행 위원장이 요청하는 대로 다 들어드리라고 하시더라. 정치인들을 믿을 수는 없는데, 어쨌든 공식회의에서 비대위원장 겸 원내대표가 그렇게 하는 걸로 봐서 진정성은 있다고 본다. 풀어갈 일만 남았다. 해야죠. 이게 제 운명이라고 생각한다.”

-노동자들의 마음을 얻어가는 과정도 필요할 것 같다.

“쌍용차 안에서도 제가 특위위원장 맡은 것에 대해서 반발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민주노총의 조직적 방침에 반해서 간 사람한테 (위원장직을 맡겼다고) 민주당으로 항의가 심하게 왔다는 얘기도 들었고. 그런데 그렇게 보지 않았으면 좋겠다. 저는 천상 노동자다. 어제 최고위 갈 때도 이렇게 하고 (작업복 입고) 갔다. 빨리 해야 한다. 국회 개원하기 전에 가닥을 다 잡아놓고 국회가 개원하면 바로바로 진행할 수 있도록 하는 게 목표다.”

-쌍용차 노동자들에게 한마디 한다면.

“어떠한 경우에도 쌍용차 동지들이, 노동자들이 목숨만은 안 끊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오죽하겠냐만, 목숨은 안 끊었으면 좋겠다. 제가 대동중공업에서 해고된 게 1992년이니까. 저도 해고자 생활을 쭉 해온 사람들 중에 하나다. 한국사회에서 해고자로서의 삶이 얼마나 힘들고 팍팍한지에 대해서 너무나 잘 안다. (그렇더라도) 목숨을 끊겠다는 마지막 그 결심을 하는 힘으로 어떤 경우라도 살았으면 좋겠다.

늦게라도 민주당이 시작했고, 127석을 가진 정당에서 나선 만큼 (기대를 해 달라). 그동안에 해왔던 것처럼 관례적으로 한 번씩 가서 격려하고 집회에 같이 참여해서 촛불 들고 같이 울어주는 그런 수준의 특별대책위원회가 아니다. 노동자들의 명예회복, 생계문제, 또 비전과 희망을 갖게 하는 것도 중요하고 빨리 일터로 돌아가게 만드는 건 더 중요하고 시급하다. 그런 (문제의식의) 바탕 위에서 활동할 계획이니까 조금만 기다려 달라.

시민사회단체나 민주노총이나 또 지역에 있는 많은 분들이 색안경을 끼고 안 봤으면 좋겠다. 같이 힘을 모아줬으면 좋겠다. 저는 국회의원도 아니고 아무 것도 아니다. 민주노총 현직 위원장도 아니고 지도위원도 아니다. 다만 노동자의 양심을 갖고 시작하는 만큼 제 양심을 믿어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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